예수님께 시선을 고정 시키십시오. (요6:1-5)

Galilee나이가 차서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게 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게되는 것은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입니다. 젊을 때는 사랑하는 아내의 눈을 들여다 보는것 처럼 황홀한 일이 있을 까 생각했는데 아이를 낳고 그 아이의 때 없는 까만 눈동자를 들여다 보니 나를 아빠로 믿어서인지 걱정하나 없는 순수한 그 눈빛에 심장이 흐물흐물해지고 아직 가누지도 못하는 고갯짓으로 나와 열심히 눈을 맞춰주는 모습에 감동하고 또 감동하게 되는것을 경험했습니다.

인간은 불완전 하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의 숨결로 지어진 영적인 존재 입니다. 그런 영적인 존재들사이의 눈맟춤이라는것이 얼마나 신비한 일인지 저는 제 자식들과 눈을 맞추며 깨달았습니다. 신지하다 그 말외에는 표현할 길이 없었습니다.

오늘 살펴볼 본문 에서는 이와 같이 우리 주님과 주님을 좇아가는 그의 자녀들사이의 눈길의 교환과 서로간에 교감이 되어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로 이 장면 이전에 우리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을 때 유대인들에게 철저하게 무시당하시고 심지어는 배척까지 당한 그 직후 어떻게 이런 변화들이 일어알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오늘의 이 교감의 시작이 우리 주님께서 이 자리에 주님을 만나고자 모인 5000명을 먹이시는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생각 한다면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의문을 가지고 본문을 보시면 제일 먼저 우리 주님께서 갈릴리로 가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갈릴리, 유대땅에서는 이방땅인 사마리아 땅을 지나 한참을 가야 도달 할 수 있는 이방땅의 끝에서야 시작되는 유대의 버려진 땅이 갈릴리 입니다. 이 땅은 유대의 영향보다 이방의 영향이 컸을 수 도 있는 로마와의 교역도 활발했던 사용하는 언어도 헬라어와 라틴어까지 다양한 언어가 사용되던 정통 유대의 기준으로는 너무나 동 떨어진 그런 땅 이었습니다.

그런 땅에 우리 주님이 건너 가신 것 입니다.

척박한 땅, 버려진 땅, 타락한 땅 그런 땅에 주님이 들어 가신 것입니다. 그러자 그런 땅에 버려진 땅이나 마찬가지인 그런 땅에 주님이 들어 가시자 예루살렘에서와는 반대로 사람들이 주님께로 나아 오기 시작 합니다.

요한 복음 6장 2절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이 말씀을 유심히 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온 이 큰무리의 사람들은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이런 이적을 어디에서 보았겠습니까? 예루살렘에서 보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같이 유대인의 명절을 지키려 예루살렘에 갔다가 주님의 이적을 보고 그리고 주님을 따라온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는 예수님을 박해하는 유대인들의 기세에 눌려 말은 못했지만 주님을 알아본 것입니다.

원어에서는 보다라는 말로 θεωρέω-띠오레오 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보다라는 뜻이되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유심히 보는것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에서 Theory-띠어리(이론)이라는 영어가 발생합니다. 유심히 보고 관찰해서 이론을 유출할 때까지 보는정도를 뜻하는 단어라고 보시면 맞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한 마디도 예루살렘에서는 못하고 조용히 있었지만 예수님의 사역을 이렇게 유심히 보고 예수님이 보통사람이 아니고 선지자 이거나 메시아 이거나가 아닐까? 깨달음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이들이 예수님을 따라서 자기가 떠나온 고향 땅이 아니라 갈릴리 땅으로 바다를 건너서 주님을 쫓아오기 시작 한 것입니다.

자 생각 해 보십시오. 생판 모르는 한 남자를 좇아 이방땅을 지나 또 바다처럼 거대한 호수를 지나 높은 산언덕을 오르는 오천의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 자체가 이미 기적이 아닙니까?

과연 이 오천의 사람들이 바라본 주님은 어떤 모습의 주님이었길래 예루살렘의 좋은 옷 입고 성경을 줄줄 외는 사람들과는 전혀 다르게 모든것 다 팽개치고 따라올 수 있었던 것 일까요?

분명히 이들이 본 주님의 모습은 이들의 영혼을 뜨겁게 할 만큼 그래서 그 험한길을 따라 주님을 좇아 올 만큼의 능력의 모습 영광의 모습을 보았었을 것 입니다.

이스라엘의 성경교사들도 못 본 우리 주님의 영광의 모습을 이들은 어떻게 볼 수 있었습니까? 바로 주님의 사역을 하나님께서 역사 하심을 유심히 바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 속에 기적을 본 신기함을 넘어서 그 역사 이면에 계시며 섭리하시는 하나님이 보일 때 까지 유심히 보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이렇게 하나님께 이끌리어 먼길을 온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허락된 기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자녀들을 우리 주님께서는 어떻게 맞아 주셨습니까?  요한복음 6장 5절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주님께로 나아오는 그 인파들을 주님께서 눈을 들어 바라 보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눈을 맞춰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병이어의 기적이 시작 되었습니다. 주님을 쳐다보다 주님을 따라 나서고 바다를 건너고 산을 올라 주님을 만난 하나님의 백성들과 우리 주님께서 바라봐 주시는 그 사랑의 눈 맞춤이 이 기적의 이면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유심히 바라보십시오 주님의 역사하심을 특히 유심히 바라 보십시오. 그 이면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강력을 만나게 되실 것입니다.

요 근래 나라가 어렵고 전쟁의 위기와 핵공격의 협박에 또 지도자들의 유약함과 리더쉽의 부재에 얼마나 마음이 어려웠습니까?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역사 하십니다. 우리의 교회가 약하여 지고 믿음이 어지러워지고 또 세상을 막을 수 없는 그 현실앞에 얼마나 절망이 깊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경고를 연설한 트럼프 대통령을 통해 또 그의 충직한 장군 매티스 장군의 일갈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안도와 위로를 받았습니까?

또 이런 사실이 얼마나 큰 의외의 사건 이었습니까? 저는 수많은 전문가들이 미국이 한국을 버릴 수 밖에 없을 지도 모른다고 이야기 할 때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위기의 뒤에서 아직도 한국의 백성들을 위해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한 고비는 넘긴것 같지만 이제 부터가 시작입니다. 이제부터야 말로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뜻을 구할 때 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따라 사마리아 땅을 지나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서 높은산 언덕을 따라 올라 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고난도 마지 않는 다면 우리 주님께서 분명 우리를 따듯한 눈길로 보아주시고 우리를 보리떡과 물고기로 먹여 주실 것이기 때문 입니다.

 

 

6: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John 6:1 Μετὰ ταῦτα ἀπῆλθεν ὁ Ἰησοῦς πέραν τῆς θαλάσσης τῆς Γαλιλαίας τῆς Τιβεριάδος. (Joh 6:1 BGT)

예수님의 사역지는 역사적 증거가 있는 실제의 장소와 시간을 배경으로 한다.

  • 예수님께서 유대인들과 논쟁하신후 갈릴리로 가신다
  • 갈릴리.
  • 유대인들에겐 미개한 땅
    • 이방인의 땅 밖의 땅 끝과 같은 곳
    • 그곳으로 가신 예수님

Geo_NewTestament

6: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John 6:2 ἠκολούθει δὲ αὐτῷ ὄχλος πολύς, ὅτι ἐθεώρουν τὰ σημεῖα ἃ ἐποίει ἐπὶ τῶν ἀσθενούντων. (Joh 6:2 BGT)

큰무리 – ὄχλος πολύς 가 예수님을 따름

  • 유대인들이 배척한 주님을 갈릴리 사람들은 따르기 시작
    • 그들은 예수의 이적을 유심히 보았기 때문, 분석했기 떄문 – ἐθεώρουν
    • 그들은 배고픈 자들이었고 약한 자들이었기 때문

 

6:3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John 6:3 ἀνῆλθεν δὲ εἰς τὸ ὄρος Ἰησοῦς καὶ ἐκεῖ ἐκάθητο μετὰ τῶν μαθητῶν αὐτοῦ. (Joh 6:3 BGT)

예수님은 언제나 제자들과 함꼐셨음

  • 산위에 앉으심

 

6:4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John 6:4 ἦν δὲ ἐγγὺς τὸ πάσχα, ἡ ἑορτὴ τῶν Ἰουδαίων. (Joh 6:4 BGT)

유대인의 명절 – πάσχα 유월절 – pass over

  • 유대인들이 구원 받은 날
  • 잔치 날
  • 먹는 날

 

6: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John 6:5 Ἐπάρας οὖν τοὺς ὀφθαλμοὺς ὁ Ἰησοῦς καὶ θεασάμενος ὅτι πολὺς ὄχλος ἔρχεται πρὸς αὐτὸν λέγει πρὸς Φίλιππον· πόθεν ἀγοράσωμεν ἄρτους ἵνα φάγωσιν οὗτοι;

보시고!

  • 백성들은 증거를 행하시는 예수님을 분석하고, 유심히 보고
  • 예수님은 자신을 향해 나아오는 백성들을 보시고
  • 먹이시길 원하심
  • 왜 빌립에게 물으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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