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요6:11-15)

loaves-fish우리는 정말 좋은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손만 뻗치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 수 있고 누구와도 연결이 되있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특별한 경험을 통해서나 얻을 수 있었던 여러가지 지식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퍼펙트한 스테이크를 굽는법이 알고 싶으십니까? 21세기 최고의 요리사 고든램지가 완벽한 스테이크를 완벽하게 굽는법을 육분안에 가르쳐 드립니다. 너무 빨라서 잘 모르시겠다구요? 고든 램지의 완벽한 스테이크 만드는 법을 십육분에 걸쳐 해설해 주는 유투버 씨즐의 클립을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또 아이비리그에서 가르치는 수업도 성의만 있으면 온라인으로 다 접할 수 있고 세계적인 정치인들의 트윗을 쫓아가다보면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도 있습니다. 또 어려운 철학적 개념들도 누구나 알기 쉽게 가르쳐 주는 기회들을 너무나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모두는 무엇이 옳은 생각인지 쉽게 알고 그 가치도 인정하고 삽니다. 이제는 인종 차별이 왜 잘못 되었고 평화를 사랑하는 것이 왜 좋은 일이며 또 시간이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이며 중력면이 어떻게 휘어지고 별들을 끌어당기는지도 굳이 대학에 가서 물리를 전공하지 않아도 압니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예전과는 비교도 될 수 없는 정보와 지식에 노출되어 사는 이 시대가 그러나 과연 더 도덕적이되고 정의로와 졌는가에 대한 대답은 긍정적이기 보다는 부정적입니다.

심지어는 북한 괴뢰도 자기들의 핵 개발의 정당성을 국가가 주권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그럴듯 하게 포장을 하니까 말입니다. 문제는 이 들이 말하는 국가 주권이 이들이 핵을 개발해서 남의 나라 영공위로 미사일을 쏘아 올리고 미국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협박하고 서울을 박살을 낸다고 협박을 해서야만 지켜지냐는것인데 말이지요. 게다가 이 괴뢰 정권이 직 간접으로 죽인 수만명 수십만의 사람들에 관한 인권에 대해서는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 기이한 현상을 보면 더 그렇습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서도 정의라는 이름으로 얼머나 큰 도덕적인 문제들을 가져오는 지 동성애 문제만 살펴봐도 알 수 있습니다. 성 소수자의 인권을 존중하자는 이야기는 좋은 이야기 입니다. 죄인도 존중 받아야 하는 인권은 당연히 존중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동성애가 군대에서도 허용되어야 하고 결혼으로도 인정을 받아야 하는 인간의 권리가 되는것은 성소수자들의 인권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과는 아주 다른 이야기 입니다.

특히나 하나님을 믿는 우리 입장에서 보면 이들은 정의란 명분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고자 하는 간교한 모략을 쓰고 있는 악한 자들입니다.

이들의 말은 반은 맏고 이들이 원하는 그 목적지는 아주 틀립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종착역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아주 그럴듯한 자기 확신이 생길 정도의 세련된, 인간적인 정의를 자신의 욕심에 부여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인 요한 복음 6장 11절로 15절에서는 두가지 큰 사건이 나옵니다.

먼저는 주님께서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500명을 먹이시는 기적이 나오고 그 후에 이들이 주님을 힘으로 왕 삼으려 하자 주님께서 산으로 피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너무나 우리가 잘 알고 있고 또 그 의미가 큰 사건입니다. 우리 주님의 능력이 발휘된 기적이며 또 그 스케일이 큰 그리고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기적과 비견될 정도의 기적입니다.

이 기적을 요한사도가 서술하고 있는 관점을 보면 구약의 모세의 인도를 받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여정과 여러 가지가 겹치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셔서 유대인들과 갈등을 겪으시고 예루살렘을 떠나 갈릴리 바다를 건너 갈릴리의 산지로 가시고 이 때 주님을 유심히 살피던 유대인들이 주님을 좇아 갈릴리 바다를 건너고 산을 오르고 그 위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겪는 모습은 마치 유대인들을 애굽땅에서 끌어내 홍해 바다를 건너 시내산에 오르고 또 광야를 건널 때 만나로 유대인들을 먹인 사건과 오버랩이 되는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광야를 건너다 만나를 먹고 하나님께 불평 불만을 터트리며 범죄를 저지른 유대인들의 모습과 일면 비슷한 모습이 오늘의 본문에 등장하는 유대인들의 모습에서도 나타나고 있어서 이를 한 번 살펴 보기 원합니다.

6장11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빵과 물고기를 나눠주실 때 유대인들이 원하는 만큼 나눠 주시도록 하신것을 볼 수 가 있습니다.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 이들이 자신들이 먹고도 감당 못 할 만큼의 빵과 물고기를 받아 결국 먹고남은 부스러기가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차게 됩니다.

하나님의 넘치게 부어주시는 은혜가 강하게 드러나는 장면이지만 반대로 생각 해 보면 우리 주님을 보고 무엇인가 다른 분, 메시아일지도 모르는 분이라고 생각해 주님을 먼길 힘든 길을 마다 않고 따라온 사람들이지만 이들안에 있는 욕심 아니면 필요이상을 구하는 습성을 볼 수 있는 장면 이기도 합니다.

그저 감사할 것은 이런 인간들의 내면을 미리 아시고 제자들에게 남은 부스러기를 버리지 않아도 되도록 거두라고 예비하신 주님의 배려입니다. 주님이 아니시면 우리는 받은 은혜 다 흘려서 헛되게 버릴 인간들일 것이라는 증거가 여기에 잘 나온것 같아서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도 드는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이렇게 큰 기적을 겪고 나니 영안이 띄여 예수님이 바로 메시아이심을 확신하게 됩니다. 6장 14절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여기서 사용한 보다에 쓰인 단어는 ὁράω – 호라오 라는 단어로 영적인 바라봄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그러니 이 유대인들 하나님의 기적을 겪고 영적인 눈이 띄여 예수님을 메시아로 확신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기적을 겪고 나니 진리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겪은 기적의 능력의 근원이 하나님이심과 이를 행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특별한 분임을 알게 되고 확신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 까지는 너무 좋습니다. 마치 부흥회에서 은혜 받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외치게 되는것과 비슷하게 지금 고작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오천이 배불리 먹는 기적을 격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신성을 알아보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며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이후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복에 겨운 생활을 하다 하나님 없이도 선과 악을 판단하려고 선악과를 따먹은 하와의 죄나 광야에서 만나를 배부르게 먹고도 음식 투정을 하다 모세에 대해서 하나님께 대해서 불평과 불만을 터뜨린 유대인들이 나와 같이 지금 이 엄청난 기적을 겪고 진리를 바라보는 영안이 뜨여진 유대 백성들에게도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6장 15절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기적을 겪고 영안이 띄인 그들이 한 행동은 실망스럽게도 예수님을 힘으로 왕으로 세우려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가지만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메시아를 자신의 뜻대로 좌지 우지하려고 힘을 사용해서 붙잡으려 했다는 것이 아주 충격적입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배부르게 먹은 그 현실이 좋았던 것입니다. 그런식으로 자기들의 욕심을 주님께서 계속해서 채워 주시길 원한 것입니다. 그러자면 예수님께서 왕이 되셔야 했습니다. 자기들 생각에 말입니다.

진리를 보고 겪어 영안이 뜨여 지자 마자 이들이 한 행동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악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보면 칼빈이 인간의 전적인 타락을 주장한 것에 깊이 공감하게 됩니다. 영안이 뜨이고 진리이신 주님을 보자마자 자신들의 육신의 소욕을 따라 에수님을 힘으로 붙잡아 자신들의 원을 게속해서 들어주시게 만들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꼐서 그들을 떠나 산으로 가시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욕심을 누르지 못하님 이들은 주님께 더 큰 가르침과 치유와 천국 소망에대한 설파를 들을 기회도 놓쳐 버렸습니다. 산넘고 물건너 주님을 따라왔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다만 다행인 것은 이들이 욕심으로 먹다 남긴 그 부스러기들 하나님꼐서 사용하시려고 다 거두셨으니 이들이 비록 여기에선 실수 했어도 하나님께서 종국에는 거두셨을 것으로 믿습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배울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인간은 진리를 깨달았거나 깨닫지 못했거나 다 실패의 여지가 큰 존재라는 것입니다. 기적을 겪고 영안이 띄여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고 하더라고 그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따라갈 수 없다면 우리는 이들 주님을 힘으로 끌고가려는 이 유대인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가 막힌 진리를 우리가 알고 있고 설파해도 우리가 하나님의 방법대로 실천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인권이라는 생각 좋습니다. 성경도 인간이 하나님의 이미지대로 지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존귀한 존재로 지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거룩한 모습대로 지어진 때문에 거룩을 지켜야 하고 거룩을 회복해야 함을 수도 없이 강조 합니다. 복음도 회개로 부터 시작 합니다.

그러니 인권 이야기 하면서 동성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께 가증한 일일지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혹시 기독교인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시면 돌이키십시오, 오병이어의 기적을 겪은 그 사람들 곁을 예수님께서는 떠나실 수 밖에 없으셨음을 기억 하시면서요.

그리고 우리가 또 평화와 동포애를 이야기 하면서 북한을 지원하자고 하는게 동포를 사랑하는것 너무나 좋습니다. 하나님도 기뻐하실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동포애만 강조하고 북한괴뢰에게 핍박받고 박해받고 죽어가는 우리의 형제 자매를 위한 말과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동포들 살리기 위해 지원을 해 주자 하는 것도 하나님께거 기뻐하실 생각 입니다. 그러나 그 대와 시기는 신중해야 하고 지혜로와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의 동포를 정말로 사랑한다면 북한의 괴뢰가 속히 무너지기를 간구하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 정권의 악함과 잔인함은 하나님께도 혐오스런 것 입니다. 이들의 악함과 도덕적인 타락은 극에 달해 있습니다. 이런 정권 가만히 두면 안됩니다.

하지만 이런 정권을 무너 뜨리는 일도 우리의 욕심대로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대로 행 해야 할 것 입니다. 기도하며 이 위기의 시기를 바라보다 보면 분명히 하나님께서 우리가 우리 교회들이 이 시기에 어떻게 북괴가 무너지고 그 당의 백성들을 구원해 내는데 사용하시고자 하는지 분명한 콜링을 얻을것이라 믿습니다.

 

6: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6:11 ἔλαβεν οὖν τοὺς ἄρτους ὁ Ἰησοῦς καὶ εὐχαριστήσας διέδωκεν τοῖς ἀνακειμένοις ὁμοίως καὶ ἐκ τῶν ὀψαρίων ὅσον ἤθελον.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  ὅσον ἤθελον.

  • 주님을 따라온 자들에게 원대로 주시는 주님.
  • 주님께 기대하는 만큼 얻게되는 진실- 당신의 믿음이 크고 안 크고간에 주님께 바라는 만큼 얻게 되는 것.

 

6: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6:12 ὡς δὲ ἐνεπλήσθησαν, λέγει τοῖς μαθηταῖς αὐτοῦ· συναγάγετε τὰ περισσεύσαντα κλάσματα, ἵνα μή τι ἀπόληται.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 그 들이 배부른 만큼 남겨 버리는것이 없게 하시는 주님
  • 그들의 원이 채워짐
  • 우리들의 놓친것도 챙겨 주시는 주님

 

6: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6:13 συνήγαγον οὖν καὶ ἐγέμισαν δώδεκα κοφίνους κλασμάτων ἐκ τῶν πέντε ἄρτων τῶν κριθίνων ἃ ἐπερίσσευσαν τοῖς βεβρωκόσιν.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 나은 조각이 열두 광주리
    • 좋은 뜻? 하나님의 넘치는 역사?
    • 나쁜 뜻? 그들이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 이상을 바람?
    • 좋은 뜻?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이 남은것들이 버려지지 않게 하시고 거둬서 사용하심

 

6:14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6:14 Οἱ οὖν ἄνθρωποι ἰδόντες ὃ ἐποίησεν σημεῖον ἔλεγον ὅτι οὗτός ἐστιν ἀληθῶς ὁ προφήτης ὁ ἐρχόμενος εἰς τὸν κόσμον.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 주님의 사역부터 유심히 살펴보게 된 인간들의 영안이 열리고 – ἰδόντες 의 원형이 보다라는 뜻의 오라오는 영적으로 본다는 뜻이 있음
    • 그러나 위에서 보듯 자기의 필요보다 넘치게 바라는 이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 하게 됨
    • 영안으로 진실을 보더라도 속을 수 있는 인간의 한계.

 

6: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6:15 Ἰησοῦς οὖν γνοὺς ὅτι μέλλουσιν ἔρχεσθαι καὶ ἁρπάζειν αὐτὸν ἵνα ποιήσωσιν βασιλέα, ἀνεχώρησεν πάλιν εἰς τὸ ὄρος αὐτὸς μόνος.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 그러나 이런 인간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주님
    • 그들을 탓하시지 않으심 –
      • 인간의 한계를 불쌍히 여기심
      • 또 주님의 세상에 오신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이들의 무지를 내 버려 두심?
    • 인간들의 마지박 원을 들어 주시지 않음
      • 인간들의 마지막 원 –
        • 강력한 권력의 자신들을 대표 할 왕
      • 하나님은 자신들의 원으로 움직이시는 존재가 아님’
      •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으로 운행하심
    • 오히려 산으로 가심
      • 인간들에게 희망을 걸지 않으심
      • 제자들을 가르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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