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무조건 절대로 주님을 기다리십시오. (요6:16-21)

Jesus-helping-hand

세상을 살다보면 모든지 자기 맘대로 이뤄지는것 같은 때가 있습니다. 잘 나갈 때가 있습니다. 나의 의지는 강철과 같이 강하고 내 의지 앞에 굽혀지지 않는것은 없는것 같은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종종 그럴때가 영적으로는 인생의 암흑같은 시기일 수 있다는 것 우리는 명심 해야 할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모든것이 되간다고 느낄 때 나의 욕망을 향한 의지가 강철 보다 강할 때 우리 가운데는 우리 주님을 모실 공간이 없습니다. 우리 주님을 잊어 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님의 제자들이 그랬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하고 우리 주님이 메시아이심을 확싱 하게 된 제자들 자신들이 정말 기가막힌 선택을 했다, 이제 메시아 옆에서 세상을 호령하는 일만 남았구나 생각 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이 놀랍지 않은것은 유대민족이 모두 다 이런 생각과 믿음을 메시아에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본문을 보면 제자들이 주님보다 앞서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지만 사도 요한의 본문은 다른 공관 복음들과는 서술에 있어 많이 다릅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마태복음에서는 주님께서 바다를 먼저 건너가게 하셨다는 묘사가 나오는데 요한 복음에서는 그런 묘사가 전혀 생략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4:22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요한복음 6:16-17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많이 다르지 않습니까? 왜 이런 차이가 생겨 난 것일까요? 성경이 서로서로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까? 아니요 요한은 다만 사실묘사에 집중한 마태와 다르게 자신이 보고 느낄 때 이 사건에서 자신이 보기에 훨씬 중요한 점들, 핵심들을 서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마태와 다르게 주님께서 분명히 명하신 사실이 있는데 왜 요한은 그 사실을 쓰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깜짝 놀랄 일이지만 요한에게는 이 사건에서 주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던 먼저가라는 명령이 핵심이 아니라고 보고 있는것 같습니다. 만약에 요한이 주님의 그런 분부가 중요했다고 생각 한다면 그 일을 쓰지 않았을 리가 없으니까 말입니다. 오히려 요한은 제자들은 사실 심적으로는 주님의 그런 명령과 상관없이 이미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는 것을 쓰고 싶었는 지 모르겠습니다.

마태 복음에서 주님께서 제자들을 먼저 내려가게 하신 이유는 주님을 왕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을 내려보내실 때 제자들까지 내려 보내시는 것이 사람들을 해산시키는 데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러셨을 것이다 라고 많은 주석 학자들은 주장합니다.

하지만 요한 복음에서의 제자들은 자진해서 가버나움을 향해 산을 내려가고 있는것으로 보입니다. 가버나움이 어떤 곳입니까? 이 땅 갈릴리 지역에서는 가장 번화한 도시이고 이국의 문화가 넘치는 곳이고 화려한 곳입니다.

제자들은 이제 메시아의 제자가 된 자신들이 당장 활약할 곳 자신들이 주인공이 될 바로 그곳 가버나움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생각 할 만한 것이 마태와 마가 복음에서는 주님이 폭풍가운데 바다를 걸어오셔서 같이 배를 타시고 도착하신 곳이 가버나움이 아니라 게네사렛이라고 적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 복음에서만 가버나움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사도요한이 이렇게 적고 있는 이유가 분명히 있고 그것은 바로 제자들이 주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해서 산을 내려가고 바다를 건넌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보인다는 것입니다.

순종을 해서 가는 모습이라기 보다는 자발적으로 산을 달려 내려 가고 보트에 타서 바다를 건너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 때 날이 저물고 깜깜해 졌다고 말입니다.

헬라어로 밤을 뜻하는 σκοτία-스코티아는 밤을 뜻하기도 하지만 흑암을 뜻하기도 하고 영적인 죽음을 은유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요한이 보는 제자들은 이 때 주님과 상관없이 흥분 상태로 바다로 나아가던 이 제자들의 영적인 상태는 기고만장 기세등등한 이들의 모습과는 다르게 깜깜한 죽음과 같은 상태 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상태로 바다를 건너다 광풍에 휩싸이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깜깜하니 주님을 모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이미 광풍이 이는 갈릴리 바다처럼 이리 저리 뛰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마음은 주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아니라 자신들의 스승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라는 사실이 자신들에게 세상 권력과 부와 명예를 가져다 줄 마치 로또와 같이 느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이럴 때가 있지 않습니까? 마치 내가 로또 맞은것처럼 그렇게 원하던 완벽한 행복을 손에 넣은듯 내가 원하던 완전한 지위를 얻은듯 생각되고 행동 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지난 겨울의 촛불시위가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 됩니다.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정말로 이일로 새로운 세상 더 나은 세상 희망이 넘치는 세상이 올것이라 생각하고 촛불을 들고 정권교체와 대통령 탄핵을 이뤄내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습니까? 광풍 가운데 위태롭게 흔들리는 조각배같은 상황이 되어 버리지 않았습니까? 국가 경쟁력은 세계 11위에서 27위로 떨어졌고 그런 사실이 신경도 쓰이지 않을 정도로 전쟁의 위험은 높아 졌습니다.

우리가 촛불을 키고 달려온 결과가 이것이라면 너무나 허무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수없이 적폐를 처단해도 나라가 나아지는것이 없습니다. 청년실업은 더욱 심해졌고 정규직 전환을 약속 받았던 임시직 국회 청소아주머니들은 아직도 임시직입니다. 기업들은 베트남으로 미국으로 공장을 옯기고 있습니다. 이제 삼성은 한국 기업이라기 보다는 실리콘벨리의 거대 기업중 하나인지도 모르게 되었습니다. 현대도 그렇습니다. 현대차들은 이제 켈리포니아의 디자인 연구소에서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 디자인 합니다. 조립도 생산도 미국에서 멕시코에서 여기서 저기에서 합니다.

그 때 우리가 다른 선택을 했었더라면 지금의 이런 위기를 겪지 않았을것은 저에게는 분명해 보입니다.

똑같이 그 때 흥분해서 산을 내려오던 제자들이 배에타서라도 주님을 기다렸다 길을 떠났다면 그들이 절대 이런 풍랑으로 놀라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밤하늘에 뜬 별을 헤며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며 갈릴리 밤 바다를 누리며 건넜을 것입니다. 쓰데없는 가버나움에 대한 환상도 잊어 버렸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의 꿈을 꾸었을 것입니다. 치유의 역사의 감동을 두고두고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가장 잘 나갈 때 내가 가장 옳다고 느껴질 때 절대로 주님을 기다리십시오, 어제나 절대로 주님을 기다리시고 주님과 함께만 움직이십시오. 오직 그 길 이외의 길로 우리에게 허락 된 적이 없으며 그 길외에 우리의 생명을 보전할 길이 없으며 그 길 이외에 우리에게 영생을 허락 해 줄 길이 없습니다.

오직 우리 주님을 언제나 절대로 무조건 기다리십시오. 그것이 오늘의 본문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입니다.

 

6:16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Ὡς δὲ ὀψία ἐγένετο κατέβησαν οἱ μαθηταὶ αὐτοῦ ἐπὶ τὴν θάλασσαν (Joh 6:16 BGT)

(마 14:22)○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Q: 왜 마태사도와는 다르게 요한 사도는 주님께서 명하셔서 제자들이 산을 내려가고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게 된 것을 적지 않으셨을까?

A: 마태사도와는 다르게 요한 사도는 이 사건에서 중요한것은 제자들이 겉으로 주님의 명령을 순종한것이 아니기 때문.

  •     사도 요한에게 중요한 키워드, 저물매, 가버나움, 어두웠고…예수는 아직 오지 아니하셨더니…
  • 마태와 마가는 게네사렛에 도달했다고 쓰는데 요한은 왜 가버나움??
    • 중간에 주님이 타셔서 이끄셔서 게네사렛, 원래 제자들이 가고 싶던곳은 가버나움 – 도시로!
  • 요한은 제자들이 주님을 온전히 순종한것으로 보지 않은것이 아닐까??

 

6:17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καὶ ἐμβάντες εἰς πλοῖον ἤρχοντο πέραν τῆς θαλάσσης εἰς Καφαρναούμ. καὶ σκοτία ἤδη ἐγεγόνει καὶ οὔπω ἐληλύθει πρὸς αὐτοὺς ὁ Ἰησοῦς,

(Joh 6:17 BGT)

  • 주님이 안계신데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다 그것도 깜깜한데..

 

6:18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ἥ τε θάλασσα ἀνέμου μεγάλου πνέοντος διεγείρετο. (Joh 6:18 BGT)

 

6:19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ἐληλακότες οὖν ὡς σταδίους εἴκοσι πέντε ἢ τριάκοντα θεωροῦσιν τὸν Ἰησοῦν περιπατοῦντα ἐπὶ τῆς θαλάσσης καὶ ἐγγὺς τοῦ πλοίου γινόμενον, καὶ ἐφοβήθησαν. (Joh 6:19 BGT)

 

6:20 이르시되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대

ὁ δὲ λέγει αὐτοῖς· ἐγώ εἰμι· μὴ φοβεῖσθε. (Joh 6:20 BGT)

 

6:21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ἤθελον οὖν λαβεῖν αὐτὸν εἰς τὸ πλοῖον, καὶ εὐθέως ἐγένετο τὸ πλοῖον ἐπὶ τῆς γῆς εἰς ἣν ὑπῆγον. (Joh 6:21 BGT)

 

언제나 무조건 절대로 주님을 기다리십시오. (요6:16-21)”의 2개의 생각

  1. 단순 상황이라는 무지함으로 바라봤던 눈을 영적으로 성경을 바라보고 묵상해야함과 주님의 관점으로 바라봐야함을 알게 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내 뜻대로
    앞서 가버리는 오만이 영적인 어두운 가운데 생기는 것을 늘 주의하며 다시 믿음의 길 걸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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