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계시지 않으신 주님

Ancient Harbors of the Sea of Galilee

(요 6:22)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서 있던 무리가 배 한 척 외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

(요 6:23)     (그러나 디베랴에서 배들이 주께서 축사하신 후 여럿이 떡 먹던 그 곳에 가까이 왔더라)

(요 6:24)     무리가 거기에 예수도 안 계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요 6:25)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언제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요 6: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가끔 그런 경험 있으신가요?

분명히 그사람이 저 곳에 있을꺼야라고 찾아간 곳에 아무리 찾아봐도 찾던 사람이 없어서 이곳 저곳을 돌아 다니다 이젠 찾는걸 포기할 무렵에 의외의 장소에서 내 눈앞에서 찾던 분을 찾았을 때. 그 때는 이렇게 묻곤 합니다. 아니 선생님 언제 여기 오셨습니까??

오늘의 본문에서는 그런 상황이 나오고 있습니다.

무심코 보면 넘어가기 쉬운 상황이지만 요한복음 6장 24절에 보면 무리들이 예수님을 찾아 가버나움에 간 장면이 나오고 25절에는 바다 건너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묘사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기는 가버나움으로 갔는데 바다 건너편에서 만났다고 묘사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만나서는 언제 이곳에 오셨냐고 합니다. 놀랐다는 이야기이고 주님을 찾으러 간 가버나움엔 주님이 안계셨다는 것입니다.

가버나움은 촌동네 갈릴리의 가장 번화한 도시였습니다. 갈릴리가 예루살렘에서 보면 촌이었지만 로마의 지배를 받으면서 부터는 로마와의 교역이 활발한 번화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니 밤새 주님이 기도하시던 산에 같이 머물런 군중이 생각하기에 밤새 불빛이 반짝거리던 가버나움이야 말로 주님께서 향하신 곳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버나움에는 주님이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이후에 주님께서는 가버남움에 오셔서 종교 지도자들과 회당에서 논쟁을 하시고 또 가장 많은 사역을 주님께서 하신 도시가 가버나움이 되지만 주님께서 하나님앞에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감사함으로 드리시고 오천명을 먹이시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발현하신 후에 가장 먼저 가신곳은 종교 지도자와 상인이 넘쳐나는 가버나움이 아니셨습니다.

그곳은 요한 복음에서는 생략 되었지만 마태 복음에서는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 가버나움과는 반대편에 위치한 게네사렛 땅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주님은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이적을 행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밤새 기도하시며 자신이 지나야 할 사역의 길을 깊이 생각 하셨을 것입니다. 그 길에는 당연히 주님께서 가장 많이 사역하실 가버나움에서의 사역의 계획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럼에도 게네사렛을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그 곳에 있는 주님의 손길이 필요한 수 많은 병자들을 생각 하시고 온전치 못한 사람들을 생각 하신 것입니다.

마태 14:35-36) 그 곳 사람들이 예수이신 줄을 알고 그 근방에 두루 통지하여 모든 병든 자를 예수께 데리고 와서 다만 예수의 옷자락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얻으니라.

반면 밤새 주님께서 기도하시던 그 산에서 주님을 기다리며 머물던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유대인들은 밤새 가버나움의 불빛을 바라보며 그 곳에서 주님께서 정치적으로 또 랍비로서 첫 걸음을 떼시는 것 그리고 그 때 어떻게 해서든 주님곁에 있고자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들을 만나시자 이들이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라며 야단을 치시는 것입니다.

왜 너희들의 생각은 반짝이는것 화려한 것 그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는가 하는 말씀이신 것입니다. 오천을 먹인 그 기사의 뒤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그저 눈앞의 빵에만 집중하는냐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오해는 마십시오 빵을 주신 분도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배고픔을 헤아려 주신 분도 주님이시지만 우리가 배불리 먹는 그 이상의 것이 이 사건에 있는것, 그 기사가 주님과 하나님을 증거 하고 있는것을 왜 깨닫지 못하는가 하는 일갈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기에 최선이고 최상인 것들이 있습니다. 자식들이 학교를 어떻게 갔으면 좋겠고 우리가 어떤 집에 살았으면 좋겠고 또 우리가 어떤 여행을 했으면 좋겠으며 적어도 결혼 이십주년에는 이런 선물은 받아야 한다까지 다양한 최선과 최상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의 그런 최선과 최상에 우리 주님이 계실까? 그 것들이 나쁜 것들이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좋은 것들입니다 바람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화려한 가버나움이 아니라 병자들이 넘쳐나는 게네사렛에 계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배 타고 가버나움에 갔다가 다시 바다 건너로 와서 주님을 만나게 되는것이 아닙니까?

목사들중에 그런분들 많습니다. 한 때는 잘 나가고 강남과 북창동의 룸살롱을 누비며 왕자처럼 지내다 회심하신 목사님도 계시고 교수 자리도 내려 놓고 목회의 길에 들어선 목사님도 보았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그런 인생의 전환을 하였냐고 우와 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진즉에 부르신 길 멀게 돌아왔다고 부끄러워 하시는 경우 많이 많이 보았습니다.

가버나움에 우리 주님이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의 마음이 가버나움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먼저 주님의 마음은 게네사렛에 가셔서 병든자 연약한 자들을 치유하셨음을 기억 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가버나움같아 지는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가버나움 같잖게 화려한 도시 아닙니까? 도시로 치자면 글쎄 서울쯤 되지 않겠습니까? 뉴욕도 아니고 동경도 아니고 상하이나 비슷한 그 정도의 도시. 세계에서도 알아 주는 듯 하지만 막상 자랑 하자면 그 정도는 안 되는 곳. 그래서 돈 만 가지고도 자랑이 먹히는 곳, 학력만 가지고도 목에 힘을 줄 수 있는 곳.

우리 마음이 그런곳에 현혹되어 있다면 되겠습니까? 우리 믿느자들을 현혹하는 같잖은 인간 세상의 화려함들이 있습니다. 돈이 있고 학력도 지위도 있습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그런것이 다 있었던 가버나움에 주님께서 먼저 가시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우리 주님께서는 정말 연약한 자들에게 가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주님 앞에서 연약해 지지 않으면 주님께서 가버나움에 가셔야 함에도 발길을 돌려 우리에게 찾아 오시길 기대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게네사렛은 가버나움에 가는 길목에 거쳐서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길을 거꾸로 돌려서 가야 합니다. 갈길이 두 배로 늘어나는 어려운 발걸음을 해야 하는 곳입니다. 그런 길을 주님께서는 가셨습니다. 주님께는 연약한 자들이 모여 있는 게네사렛이야 말로 꼭 가야 하는 곳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안에 연약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연약한 마음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주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 간구의 마음이 우리 맘속에 반짝이는 불빛으로 우리를 현혹하는 가버나움의 불빛을 이기지 못한다면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 힘든 발걸음을 옮기시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1

Τῇ ἐπαύριον ὁ ὄχλος ὁ ἑστηκὼς πέραν τῆς θαλάσσης εἶδον ὅτι πλοιάριον ἄλλο οὐκ ἦν ἐκεῖ εἰ μὴ ἓν καὶ ὅτι οὐ συνεισῆλθεν τοῖς μαθηταῖς αὐτοῦ ὁ Ἰησοῦς εἰς τὸ πλοῖον ἀλλὰ μόνοι οἱ μαθηταὶ αὐτοῦ ἀπῆλθον ·

주님께서 어디로 가신지 모르는 군중들

  • 배한척이 없고
  • 주님께서 제자들과 같이 배를 타지 않으 셨고
  • 자기들이 있던 산에도 없으셨음

 

ἄλλα ἦλθεν πλοιάρια ἐκ Τιβεριάδος ἐγγὺς τοῦ τόπου ὅπου ἔφαγον τὸν ἄρτον εὐχαριστήσαντος τοῦ κυρίου

티베리우스에서 온 배를 타고가는 군중들

 

ὅτε οὖν εἶδεν ὁ ὄχλος ὅτι Ἰησοῦς οὐκ ἔστιν ἐκεῖ οὐδὲ οἱ μαθηταὶ αὐτοῦ , ἐνέβησαν αὐτοὶ εἰς τὰ πλοιάρια καὶ ἦλθον εἰς Καφαρναοὺμ ζητοῦντες τὸν Ἰησοῦν. κα ερόντες ατν πέραν τς θαλάσσης επον ατ · αββί , πότε δε γέγονας ;

랍비여 언제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 이상한 질문
    • 예수를 찾으러 간 곳에서 예수를 만나 랍비어 언제 여기에 오셨나이까?
    • 아마도 만나지 못하고 시간이 지난후에 주님을 만나 드린 질문일 것.
      • 게네사렛에서 병자를 고치시고 가버나움으로 오신 주님-마태복음 14장
      • 가버나움에서는 회당에서 곧 지도자들과 논쟁하실 주님
    • 시간상 예수님은 게네사렛에 들렀다 오시고 예수님을 찾던 주님들은 가버나움에 먼저 가서 기다리다가 주님을 찾아 가다 주님을 뵙고 놀라며 랍비여 언제 오셨나이까? 물은것이 맞을 것

 

Ἀπεκρίθη αὐτοῖς ὁ Ἰησοῦς καὶ εἶπεν · ἀμὴν ἀμὴν λέγω ὑμῖν , ζητεῖτε με οὐχ ὅτι εἴδετε σημεῖα , ἀλλ ̓ ὅτι ἐφάγετε ἐκ τῶν ἄρτων καὶ ἐχορτάσθητε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 제자들과 같이 이들이 가버나움으로 온 이유가 주님이 메시아 되심을 잘못 이해하고
  • 자신들에게 유익이 있을것으로 생각해서 쫓아옴을 이르심
  • 구원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무지한 군중들을 꾸짖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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