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처절한 눈높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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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의 성경 해석 전통중에는 미드라쉬라는 것이 있습니다.

미드라쉬는 탐구하다 조사하다의 의미를 가진 말로 성경이 지닌 참 뜻을 탐구하기위해 성경을 설화적인 구성의 이야기로 풀어 매우 상징적이며 그리고 비유적인 이야기로 설명하는 문학적 방법론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런식의 해석을 모아논 문학작품집을 가리켜 미드라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미드라쉬를 들어 보자면  성경 본문  창세기 3:6-7 을 보면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보니, 먹음직스럽기도 하고 보기에도 좋았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을 슬기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였다. 여자가 그 열매를 따서,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니, 그도 그것을 먹었다. 그러자 두 사람의 눈이 밝아져서, 자기들이 벗은 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앞으로 치마를 엮어서, 몸을 가렸다.”

이 본문을 미드라쉬 본문으로 보면 “그리고 그들은 벌거벗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가지고 있던 단 하나의 계명조차 그들에게서 벗겨졌다. 그들은 무화과[트에나] 잎사귀들을 엮었다. 랍비 시몬 벤 요하이는 말했다. “이 잎사귀는 세상에 슬픔[토아나]을 들여온 잎사귀이다.” 랍비 이츠학은 말했다. “너희는 일을 망쳤다. 실로 꿰매어 놓으라!” 라고 하는 것입니다.

벌거벗었다는 성경의 표현을 마지막 계명마저 벗어졌다로 무화과 잎 즉 히브리어로 트에나는 슬픔 즉 히브리어로 토아나로 해석해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장면을 세상의 슬픔을 지고가는 아담과 하와의 심경의 상징으로 해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참 창의적이고 또 일면 깊은 부분도 있는 해석입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유대인들의 상징문학 타령인가 하면 바로 이런 상징적 해석 은유적 해석 그리고 다층적 해석으로 성경을 조명하던 사람들이 오늘의 본문에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바로 유대인들 그중에서도 회당에 거하는 유대인 랍비들을 말합니다.

이 유대인 랍비들이 성경즉 토라-모세오경을 공부하는 것은 경이로운 수준의 공부입니다. 본문을 다 외우고 그 본문의 뜻을 육단계로 나누어 그 각자의 진짜뜻을 밝혀 내고자 탈무드와 미드라쉬등을 이용해 성경내부에서 또 외부에서 성경의 뜻을 조명하는 또 다른 이야기들을 만들어 낼 정도의 공부를 합니다.

그러니까 이들에게 상징과 은유는 이들이 성경을 읽는데 있어 없어서는 안되는 가장 중요한 해석의 도구요 방법인 것입니다.

그런 사실을 알고서 오늘의 본문 요한 복음 6:49절에서 59절까지를 읽으면 우리 주님께 대드는 이 유대인들이 얼마나 악독하고 또 얼마나 우리 주님을 까니보고 있었는 지 알 수 있습니다.

6장52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이르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 대목은 우리 주님께서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떡이라 비유하시고 이 떡을 먹으면 영생을 누릴것이다 말씀하신것을 듣고 유대인들이 주님을 비웃으며 한 말입니다.

어떻게 성경에는 나오지도 않았는데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비웃었는지 알 수 가 있느냐고요? 생각 해 보시면 미드라쉬의 전통을 뼈속 깊이 가지고 있는 회당의 우대인들이 주님께서 말씀 하시는 말씀의 상징을 이해하지 못해서 문자적으로 어떻게 이 자가 자기 살을 우리에게 줄 수 있겠냐고 따졌겠습니까?

과연 그들이 예수님께서 자신의 말씀이 진리이며 그 진리가 곧 우리를 영생에 이르게 할 것이라 말씀 하시는 것을 이해를 하지 못해서 이 회당에 모여 살다시피 하는 유대인들이 주님의 말씀을 이렇게 무자비한 자신의 살덩이를 나눠주고 하는 질 떨어지는 수준의 이야기로 전락을 시켰겠냐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이들은 오히려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정확히 이해하고 주님께서 자신을 메시아로 밝히시는 것과 자신들이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영생을 말씀 하시는 너무나도 새로운 가르침을 주시고 계신 것을 정말로 잘 알았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진리를 선포하고 계시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주님의 가르치심에 동의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것도 지독하게…

그러니까 이들이 주님의 말씀을 비유가 아니라 문자적으로 받은것은 진리의 말씀을 살덩이를 나누 주고 어쩌고 하고 받은 이들의 저급한 표현은 절대로 너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자신들의 결단의 표현인 것이고 또 이제 처음보는 무명의 랍비를 무시하는 자세인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의 뜻을 몰라서 그런것이 아니라 고의로 악랄하게 비꼬는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어떻게 말씀 하십니까? 우리 주님께서는 그럼에도 절대로 이들을 포기 하시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더욱 더 말씀의 깊이를 더해 말씀 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이 말씀은 우리 모두가 잘 아는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희생 그 위에서 흘리시는 보혈의 공로 그리고 그 흘리신 피와 희생을 총해 우리의 죄가 사하여진다는 것을 믿는 바로 그 믿음을 통하지 않으면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것을 살과 피를 동원해 비유하고 상징하시는 말씀 이십니다.

그런데 이런 진리의 말씀이 더욱 힘을 얻게 되는것은 역설적으로 주님의 말씀을 폄훼하고 대적하는 유대인들을 보고 그 후에 선포하시는 말씀 이시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유대인들로 인해 주님께서 희생의 피를 흘리시게 될 것을 미리 아시는 주님께서는 이들 유대인들의 주님을 향한 몽니부림에서 자신의 희생을 뜻하는 자신이 흘리실 피 즉 희생과 그 희생을 통해 생명에 이르도록 이끄는 믿음 즉 주님의 피를 마시는 상징적 행동을 말씀 하심으로 첫째 자신의 죽음과 희생을 예언 하시고 둘째 하지만 이런 죽음과 희생의 상징을 믿음을 통한 영생과 연결하심으로 주님의 죽음뒤에 따라올 부활과 믿음과 영원한 생명의 관계성을 설파 하십니다 그리고 세째 이모든것이 이뤄지는 주의 만찬의 원형의 근거를 여기에서 시작 하시는 것입니다.

어려운 말하기 좋아하는 회당의 유대인들이 너무나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그들의 눈높이에서 말씀을 전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도 이들이 지금은 주님을 전혀 몰라보고 몽니를 부리지만 그리고 그 끝이 주님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악독함이지만 지금 그들이 주님을 모를 때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예언을 선포하심으로 주님의 이 예언이 성취된 후에 이 말씀을 기억할, 혹시 있을 지 모르는 깨닫는 회당의 유대인들을 구원에 이끄시려고 그들을 향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을 죽일것이 분명한 자들이 구원을 받을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정말로 온 힘을 다하여서 그들의 눈 높이에서 진리를 설파해 주시고 예언을 선포해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고 나니 이 유대인들과 전혀 다른 듣는 귀가 순박하고 단순한 주님의 제자들이 6장60절에서 이 말씀이 어렵다고 난리를 부리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자신의 제자들이 말씀이 어려워 힘들더라도 또 그래서 상처받을 지 모르더라도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영원히 사그러질 영혼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이뻐하는 제자들을 위해서만 말씀 하시지 않고 이 유대인들을 위해 그것도 지금이 아니라 자신의 예언이 이뤄진 그 후를 바라 보시고 진리를 설파 하시고 예언하시는 사랑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결과가 결국 사도 바울로 대표되는 유대인 크리스챤들로 열매맺게 되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어려운 말도 잘 알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속속들이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지적이면서도 하나님을 사모하는 유대인 크리스챤들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지금은 주님께서 어렵게 말씀을 하셔서 말씀이 어렵다고 난리를 부리지만 자신의 제자들을 얼마나 애뜻하게 사랑하시고 그들이 알아듣고 깨달을 때 까지 데리고 다니시고 야단도 치시고 칭찬도 해주시고 사랑해 주셔서 구원에 이르도록 이끌어 주십니까?

결국 우리도 이런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며 주님을 믿는 믿음이 자라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이 커서 대단해서 주님을 더욱 믿게 된다기 보다는 주님께서 우리가 알게 모르게 우리의 눈높이에서 우리를 한 걸음 한 걸음 믿음으로 이끄시기에 우리의 구원이 보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죽일 원수들도 이렇게 사랑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이 얼마나 크실 것인가는 우리가 둔하고 어리석어 상상이 불가능한 것이지 그 크기가 크고도 크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자녀들을 사랑 하십니다. 자신을 찌를 자들까지도 사랑 하셔서 그들에게 진리를 전하신 주님 그 사랑의 크심을 헤아려 보길 원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상징으로가 아니라 실제로 행하신 주님의 사랑 그 크신 사랑이 성경 여기에도 저기에도 다 증거 합니다.

사실 우리도 지금은 주님의 자녀이지만 우리 모두 주님을 찌른 자들이요 대적하는 원수들 이었습니다.  그런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해 주신 우리 주님, 사랑의 주님 그 주님의 사랑을 꼭 붇드시고 절대로 놓치지 마시고 주님과 함께 가시는 모든 분들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6: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6:50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6: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6:52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이르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6: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6: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6: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6: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6:58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6:59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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