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는 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Operation Noble Eagle

이십년전에 미국에 와서 놀란 것 들 중 하나가 장애인을 태우기위해서 몸체가 낮아지는 버스였습니다. 운전석 옆의 바퀴가 어떤 구조인지 모르지만 버스자체가 주저 앉듯이 낮아지면서 장애우를 태우는 장면을 보고 놀라고 또 더 놀랐던 것은 그 과정이 꽤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 그걸 다 기다리면서 아무런 불평이 없는 사람들을 보고 놀랐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는길이 지루한데도 모두가 다 장애우의 승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버스 기사는 내려서 장애우가 버스에 타는것을 돕기도 하고 승객들은 진지하게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가 늦는다고 짜증을 내거나 하는 것은 상상도 못할 분위기 였습니다.

또 놀랐던것은 제가 미국에 오는 해 911 사태가 있었습니다. 그 때 누가 봐도 불에 타고 있던 건물이 너무 위태롭게 보였는데 그 불타는 건물 안으로 아직 갖혀 있는 사람들을 구하러 뛰어 들어가던 소방관 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들어가고 얼마 안 있어 건물이 붕괴되었고 그 때 들어간 모든 소방수들은 다 사망하는 일을 보았을 때 입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저는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 남을 구하려 한 그 소방수들을 향해 한 없는 존경심이 생기는 것을 어쩔 수 없었습니다. 대단하다 엄청나다 그리고 너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경외감 이라는 것이 이런것이구나 알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그 분들 생각을 하면 이 사람들 분명히 이번에 들어가면 자기가 살 기 힘들것을 잘 알고도 사람을 구하려 들어간 그 사람들 생각을 하면 너무 감사하고 이 악한 세상에 희망과 소망을 준 그 분들을 향해 아직도 전율이 흐르는것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리고 또 놀랐던 일은 도로에 엠불런스가 나타나면 모든차들이 길가에 차를 대고 앰불런스가 지나가도록 길을 내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를 위반하다 걸리면 엄청난 벌금을 문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수많은 차들이 엠불런스를 위해 홍해가 갈라지듯이 좍 갈라지며 길을 내주는 광경은 장관입니다.

이것들이 무엇을 뜻합니까? 장애우가 버스에 타는것도 중요하지만 내 갈길을 제 때에 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장애우를 태우느라 오분 십분 늦어져도 전혀 불만이 없는 사람들. 그리고 그러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사회 그것이 뜻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불타는 건물 비행기 충돌 테러로 불타고 있는 곧 무너질 건물에 아무리 소방수들이지만 사람 구하러 들어 가야 한다고 강요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또 안들어 간다고 해서 최선을 다해 이미 많은 사람들을 구한 소방수들을 욕할 사람들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불타는 빌딩으로 들어가는 소방수들. 과연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자동차가 길위를 달릴 때는 따라야 할 법규가 있습니다. 이 법규를 따르지 않으면 위험한 일들이 생기고 사고도 날 수 있습니다. 길 위의 안전 수칙 첫번째는 급작스럽게 속도를 늦추거나 가속을 하거나 하는것과 급히 방향을 바꾸는 일들은 위험하다 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길위에서 엠불런스 사이렌 소리를 들으면 이런 상식과는 정 반대로 차들이 길가를 향해 움직이고 속도를 늦추고 노견에 정차하는 일들을 합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오늘의 본문은 요한 복음 7장 14절로 24절까지 입니다.

본문에서 다루는 주된 사건은 우리 주님께서 유대인들의 축제를 맞아 이스라엘로 올라가셔서 성전에서 말씀을 가르치시다 유대인들 특히 유대인 지도자들과 논쟁이 붙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의 지도자들과 논쟁을 하는 많은 다른 장면들과 비슷한 듯 하지만 오늘의 본문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아마  7장 17절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7장17절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하나님의 뜻이 우리와 멀리만 있는것이 아니고 우리도 알 수 있는것 우리도 행할 수 있는것이라는 아주 희망적인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언제나 계시로만 알려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의지로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선한 의지만 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에 아버지의 형상대로 지어진 우리안에 태초에 주셨을 선한의지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만 한다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는 정말 감사하신 말씀이 있기 때문에 오늘의 본문이 매우 특별해 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을 깊이 묵상해 보면 이 말씀은 다른 구절과 떨어져서 혼자만 있어도 능력이 넘치는 강력한 말씀이지만 이 말씀을 오늘 주님이 처한 상황과 비교해서 우리의 삶에 적용하면 더 능력이 넘치는 말씀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오늘의 논쟁의 중심에는 안식일 논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안식일에 주님께서 한 사람을 온전히 고치신 요한 복음 5장18절의 사건이 아직껏 주님을 괴롭히고 있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하는데 사람을 치유하는 행위는 거룩한 안식일에 일을 한 것이니 안식일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준 율법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주님께서 병자를 안식일에 치유하신 것이 과연 안식일을 어긴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행한 것이냐?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느라 안식일에 병자를 치유했다면 그것이 안식일을 어기는 것일 수 있느냐? 반문 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들은-여기서는 요한복음 5장18절에 나타난대로 주님을 죽이고자 모의를 계속하던 유대인 지도자들-나를 죽이고자 작당을 하면서 그것은 율법을 분명히 어기는것이 아니냐? 그러면서 어떻게 나에게 율법을 어긴다고 할 수 있는냐 하시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주님의 결정적인 반론은 이것입니다. 너희들이 안식일에 태너난지 팔일만에 할례를 받아야 하는 율법을 지키기 위해 그 날이 안식일과 겹칠때는 아이들에게 안식일인데도 할례를 주지 않느냐? 그렇다면 이것이 율법을 어기는 것이냐 아니냐? 물어 보시는것입니다.

당연히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아이들에게 할례를 주는것은 안식일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첫째 태어난 지 팔일만에 할례를 시켜야 한다는 율법을 지키는 일이었기 때문이었고 두번째는 그 할례의 율법을 하나님과 직접 소통하던 위대한 선지자 모세가 준 율법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길 안식일에 할례를 행하는 것 좋은데 사실 이 할례는 모세로부터 온것이 아니라 엄밀하게 따지자면 우리 조상들 아브라함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냐 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온 관습으로 행하는 할례를 안식일에 행하면서 어떻게 병자를 고치는 나를 악하다고 하느냐? 하시는 것입니다.

이 논쟁은 크게보면 안식일로 대표되는 율법을 대표하는 유대인들과 병자를 치유하신 은혜의 하나님의 뜻을 대표하시는 우리 주님과의 대립이고 그렇기 때문에 마치 율법과 하나님의 뜻이 충돌하는것 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정말로 말씀 하시고 싶으셨던 것은 할례의 관습을 행하는 것이 안식일을 범하지 않는 것 처럼 안식일에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더욱 더 안식일을 그리고 율법을 훼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결국 율법도 치유도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중요한것은 정말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것인가 하는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것을 규칙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법조문 들이대듯이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지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안식일을 훼방하거나 율법을 깨거나 하는것이 아니라는 말씀이신 것입니다.

평소에는 절대로 멈추면 안되는 고속도로의 차들도 엠불런스가 지나갈때는 속도를 줄이고 차를 돌려 노견에 정차하고 엠불런스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는것이 정상이듯이 또 그런다고 교통법규가 깨지는 것이 아니듯 말입니다. 그 순간이 지나가면 모든차가 정상운행하고 오히려 그럴 때 급정거를 하거나 급선회를 하는차들이 법규를 어기는것이듯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대립하는 우리들이 선택해야만 하는 큰 가치들이 있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면 이 중에 어떤것을 택해야 할 지 우리는 알 수 있도록 지어졌다는 것이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 인 것입니다. 어떤 것만이 더 큰 가치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 때 그 때 하나님의 뜻을 따라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단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소방관들이 불타는 빌딩 곧 무너지려는 빌딩안에 사람들이 갇혀있어도 들어가지 않아도 뭐라고 할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저 생명 살리자고 당신 죽으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 911 사태때 소방관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라도 빌딩안에 갇혀있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다시 빌딩안으로 들어가는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는것이 살아남는것보다 이들에게는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 이들이 생각했으리라 저는 믿습니다.

때로는 상충하는 것 같은 여러 가치중에 하나를 택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중요한것은 나의 이익도 아니고 남의 시선도 아닙니다. 내가 나를 지으시고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것 그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 하시길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다” 하시지 않으십니까?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너무나 하나님의 뜻을 구하려 하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모든것을 내가 듣고 내가 보고 내가 결정합니다 심지어는 내가 결정 할 수 없었던 것 까지 나의 성 정체성도 내가 결정하는 시대 입니다. 그 만큼 내안에 내가 원하는 열망, 욕망이 강한 시대 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우리 주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것은 내 안의 욕망이 싸울 때 하나님의 뜻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내 욕심대로 살고 싶을 때 대신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따라가는 힘을 키우라는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택하고 쫓아가는 자들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세상이 알 도리가 없는 비밀한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7:14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7:15 유대인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7:1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7:17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7:18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7:19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7:20 무리가 대답하되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

7: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하매 너희가 다 이로 말미암아 이상히 여기는도다

7:22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행했으니 (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서 난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행하느니라

7:23 모세의 율법을 범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한 것으로 너희가 내게 노여워하느냐

7:24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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