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마귀의 속임수를 물리치십시오.

But No Man Laid Hands Upon Him

현대 철학의 큰 주제중에 하나는 이성적인 판단을 하더라도 인간은 속을 수 있다라는 사실의 재 확인 입니다. 심지어는 철저한 현실저항의 기치를 내 세우는 싸르트르와 같은 실존주의 철학자들도 자신의 연구의 큰 부분을 할애해서 인간이 왜 두 눈 멀쩡하게 뜨고도 가짜를 구별해 내지 못하고 깜쪽같이 속아넘어가는가에 대한 매우 진지하고 또 매우 정교하며 어려운 논쟁을 엄청난양으로 생산해 냈던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인간이 언제나 속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의 재 확인이 왜 중요한가하는 평가는 서로서로 많이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그 논쟁이 왜 심각하게 시작되었고 비중을 가지고 다루어졌는지에 대한 역사적인 배경은 의외로 쉽게 유추가 가능합니다.

그것은 바로 일이차 세계대전으로 대표되는 전쟁의 발발과 그 중에서도 특히 나찌즘과 대동아 공영의 건축을 기치로 내 걸고 이상적인 신세계 건설을 위한 새로운 이념을 내세워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나쁜 사상이 권력을 획득하는데 성공한 심지어는 국가의 범위를 넘어 세계적인 지지를 얻어내는데 성공한 사건이 배경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이야 많은 사람들은 코웃음치는 나찌즘이 그 당시에는 독일에 국한되서만도 아니고 전 유럽을 통틀어 인종의 장벽까지 넘어 새로운 세상을 건설해 줄 이상향을 제공해 주는 새로운 사상으로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또 절대적인 권력을 획득하는데 성공 하기까지 한 사건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터무니 없는 거짓말이, 현실감 떨어지는 히틀러라는 한 개인의 광란이 한 민족을 속이고 또 그 차원을 넘어 유럽 대륙을 통틀어 지지세력을 얻어내는데 성공하였는가? 어떻게 유럽의 그 수많은 지식인과 지성인들이 나찌에 속아 심지어는 자발적으로 이들에게 협조까지 하게 되었는가? 우리는 어쩌면 이다지도 거짓에 이렇게 순진하게도 속아넘어갈 수 있었는가? 이런 질문이 바로 인간이 거짓에 속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진지한 질문으로 나온것이라고 생각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광기와 폭력으로 얼룩졌던 이십세기의 뒤에는 거짓에 속아버린 인간들의 군상이 있었습니다. 제국의 건설을 외친 나찌와 대동아 공영의 건설을 외친 일본 제국주의 그리고 인민의 왕국을 노래한 공산주의의 광풍은 이 모든 주장을 그대로 믿고 따라간 수 많은 생명들의 학살로 끝이 나게 됩니다. 나찌가 죽인 600만명 이상의 유태인들과 수백만의 유럽인들 또 연합군들 그리고 일제에게 목숨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스탈린의 숙청으로 목숨을 잃은 1100만의 사람들…이 모든 비극의 뒤에는 이들의 거짓말을 믿어버린 인간들의 실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아직도 이런 속임수와 선동의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는것 같습니다.

일례로 2008년의 광우병 사태는 이런일의 좋은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이고 이제는 많은 부분 객관적으로 말할 수 있게된 이 사태의 본질은 미국에 반대하는 좌파 정치세력들이 대한민국 국민들을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 거짓으로 선동해 국가적인 혼란을 초래한것입니다.

이런 광란에 심지어는 언론들도 동참해 국민들을 선동하는 데 앞장 섰는데 이 때 MBC의 PD 수첩의 활약은 대단 했었습니다. 미국에 와서까지 촬영을 해 가면서 이 광우병이라는 거짓을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실질적인 위협으로 포장하고 이런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려는 정부를 뒤 흔드는데 성공합니다.

결국 너무나 빤한 거짓말이라 거짓이 밝혀지는것으로 마무리가 되는 듯 했지만 이 사태에 기름을 붓고 선동의 최 전선에 섰던 PD 수첩의 PD들과 관계자들은 처벌을 받지 않고 모든 혐의에서 무죄를 받고마는 면죄부를 받는 것으로 문제의 불씨를 남겨둔 채 마무리가 됩니다.  결국 이십세기의 비극을 가져왔던 사실 거짓에 속을 수 있는 인간군상 즉 사기에 속아버리는 군중 심리가 아직도 우리에게는 가능하다는 사실만 확인 시켜주고 광우병 사태는 미결의 상태로 아무것도 해결되거나 처벌되지 않은 채 마무리만 되버린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인 요한 복음 7장 25절로 36절의 모습은 이와 비슷한 모습, 즉 진리가 아니라 거짓에 속아 백성들이 선동이 되어가는 모습이 잘 나옵니다.

25절과 27절에는 유대 백성들이 예수님에게 대해 매우 호의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며 기대감을 드러 냅니다. 영적인 존재인 인간들은 하나님을 알아보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들은 유대인 지도자들이 주님을 죽이려고 하는 계획 자체가 없다며 발뺌을 하던것이 완전 거짓인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25절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되 이는 그들이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백성들이 어리석어 보이지만 이들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인것과 유대인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 까지 모두 다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모습대로 지으신 백성들 그것도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인 유대인들이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메시아임을 알아보는것은 당연한 일일것입니다. 또 주님께서 행하신 치유의 이적과 오병이어를 비롯한 여러 이적들 그리고 우리 주님의 권위있으신 가르치심들을 통해서 보면 우리 주님게서 메시아임을 못알아보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시고 또 자신을 주님의 모습으로 현현하셨음에도 이를 방해하는 악한 소리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가리는 거짓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욕심을 위해 백성의 귀를 어지럽히는 거짓된 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7장27절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는지라.”

자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알 수 없다고 하는 말은 성경에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것은 유대인 지도자들이 오랜 세월동안 자신들이 개발시키고 발전시킨 자신들의 문학에서 발견되는 이야기 들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계시와는 상관이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던 것이고 그런식으로 자신들이 기대하는 메시아의 모습을 만들어 가고 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인간의 희망사항을 따르지 않았다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육신인 예수님이 메시아가 아니라고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선동이 먹혔습니다. 대중이 영적으로는 하나님을 감지할 수 있었을 지는 모르지만 말씀에 무지했음으로 이런 루머가 거짓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 자체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이런 소문에 휘둘리게 되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호세야서의 예언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호세아 4:6”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 하시는 것은 너희가 내가 어디서 왔는지 안다고 하지만 나를 보내신 분을 모르는 것이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 안다는 너희의 말이 맞으려면 내가 누구의 뜻을 이루기 위해 왔는지 알아야 하지 않느냐? 너희는 나를 보내신 분을 모르니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하시며 반박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이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사실을 안다면 이들이 주장하는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메시아라는 이야기는 그저 자신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임을 인정할 것인데 너희가 그러지 않는것을 보니 너희는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다 라는 질책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들 유대인 지도자들에게는 이제 하나님의 말씀과 자신들이 지어낸 이야기가 구별이 필요가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 만큼 자신들이 원하는 메시아의 모습이 강했다는 것이고 아니면 이들은 사실 메시아를 바라지도 않았을 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메시야가 와봐야 자신들의 기득권이나 줄어들 지 하는 말도 안되는 마음이 있었을 수 있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들이 바라는것이 더 중요했던 것 이었습니다.

그런 자들이 성경말씀도 아닌 요설로 하나님의 백성들이되어야 할 자들을 현혹하고 결국 실족케 하는 것이었습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아무도 그 오신곳을 알 수 없으리라 하는 하나님의 말씀도 아닌 문학속의 말로 예수님을 모함하고 우리가 너의 온 곳을 아니 너는 메시아일수가 없다고 모함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진실 공방의 와중에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알아 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 지도자들이 퍼트린 요설에 속지 아니하고 열린 마음으로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들과 말씀을 바라 봤습니다. 주님께서 전하신 복음을 되살펴 봤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에게 지혜와 정확한 판단력이 생긴 것입니다.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아라는 사람이 만약 우리가 바라는 모습으로 온다고 하더라도 지금 우리 눈앞에 서 계신 이 분 보다 더 많은 이적을 행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7장31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무리 중의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이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하니”

정말 대단한 고백이고 또 바로 이전에 주님께서 17절에서 말씀하신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하신 말씀의 정확한 예가 되는 고백입니다.

먼저 이들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고 예수님의 행적을 믿었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 즉 보낸 분을 믿는것을 행한 자들이었기 때문에 인간의 요설 모함 속에서도 진리를 알아 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29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것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는 자들은 이 교훈이 하나님의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믿는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세상의 거짓에 속지 않습니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서 아기를 낳을 수 없는 동성간의 결합도 결혼으로 인정하고 그것이 인권의 진일보라고 떠들어도 이제 임신한지 얼마 안된 아이는 고통을 느낄 수 없는 아직 덜 자란 존재니 부모의 재량으로 마음껏 유산 할 수 있도록 법을 만들자고 난리를 부려도 여기에 넘어 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거짓된 것이고 하나님앞에 가증한 것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7:25 예루살렘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이 말하되 이는 그들이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

7:26 보라 드러나게 말하되 그들이 아무 말도 아니하는도다 당국자들은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 줄 알았는가

7:27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는지라

7:28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7:29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 하시니

7:30 그들이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7:31 무리 중의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이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하니

7:32 예수에 대하여 무리가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아랫사람들을 보내니

7:3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7:34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시니

7:35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그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

7:36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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