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없는 자의 용서, 죄 많은 자들의 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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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악이 있습니다. 이런 악들을 들여다 보는 일은 매우 괴롭습니다 왜냐하면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의 악이 집단의 탈을 쓰고 문화의 탈을 쓰고 일어나면 이런 당혹감은 경악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를테면 명예살인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가정의 혹은 공동체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가족과 공동체의 명예를 어지럽힌 사람을 죽이는 것을 말합니다. 명예살인의 종류는 매우 다양해서 자신과 가족을 욕보인 사람을 죽이는 보복에서 부터 가족의 명예를 어지럽힌 가족을 죽이는 행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데 우리나라도 도모지라하여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사람을 묶어 놓고 물먹인 창호지로 얼굴을 덮어 살해하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명예가 얼마나 대단하길레 사람의 생명과 바꿀까? 저는 아마 죽을 때 까지도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일일 것 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있는것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어떤 경우는 자신의 가족중의 피해자를 죽이는 일을 하기도 한다는 것을 들었을 때는 정말 아연 실색 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강간을 당한 여인들을 가족의 명예를 더럽혔다며 가족들이 살해한 경우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연약한 여자들을 그것도 육체적 정신적으로 학대를 당해 충격에 빠져있는 그런 약자들을 명예를 지킨다는 명목하에 살해 한다는 것 저와는 전혀 관계 없는 딴 세상의 이야기 였어도 그런일을 하는 사람들을 향한 분노가 치미는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보호해도 부족한 상처입은 사람들을 향해 그것도 그들을 가장 사랑 해야할 가족들이 폭력을 사용하는것을 넘어서 목숨을 빼았는다니요…

이런 말도 안되는 행동 뒤에는 여성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 문화가 깔려 있고 그런 문화적인 힘의 대표적인 예가 종교의 영향입니다. 지금도 이슬람권의 어떤 나라들은 공공연하게 이런 명예살인이라는 이름으로 여성들을 구속하고 또 학대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율법주의적인 성향이 자신들이 믿고있는 종교의 율법의 원래 뜻까지도 곡해하고 왜곡해서 이런 그야말로 극단적인 폭력으로 드러나는 것인데요, 이십일세기 현대까지도 이런 문화가 버젓이 존재하고 위세를 떨치는 것을 보면 정말 인간의 죄악성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극단적인 성향은 예수님 살아계실때의 유대인들에게서도 발견 할 수 있다고 생각 되는데 만약 그런 관점에서 오늘의 본문을 본다면 지금까지 어쩌면 우리가 놓쳐왔던 부분을 볼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 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요한복음 8장 1절로 11절 까지 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아주 잘 알려진 예수님께서 간음하던 현장에서 잡힌 여성을 용서해 주시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로 예수님의 용서에만 촛점을 맞추고 이 본문을 보다 보니까 사실 예수님께서 이 사건을 만나게 되신것의 시작이 바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모함하려고 기획한 음모였었다는 것을 종종 놓치고는 합니다.

본문 팔장 육절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과연 어떻게 간음하던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주님께 데려가는 것이 유대인들이 꾸미는 음모가 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이 다 내려다 보이는 감람산에서 머무르시다 성정에 내려오시는 것으로 묘사 됩니다. 그리고 본문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머무신 곳은 앉아서 사람들에게 강론 할 수 있는 곳이라는 것과 또 나중에 여인이 잡혀올 때 땅에 글을 쓰고 계시는 것으로 볼 때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성전의 바깥 뜰 즉 이방인의 뜰과 연하여 있는 열주랑 즉 그늘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솔로몬의 회랑 사이에서 복음을 강론 하시고 계셨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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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은 뜨거운 이스라엘의 햇 볕을 피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오랜 시간동안 강론하고 또 질문과 대답을 하는 일종의 수업이 충분히 가능한 공간 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곳이고 사람들의 통행이 많은 곳이고 또 이방인도 여인들도 들어 올 수 있는 그런 공적인 공간이었습니다.

그런 공적인 공간에서 주님께서 복음을 전하실 때 기다렸다는 듯 유대인 지도자들 바리새 파와 서기관들이 간음의 현장에서 잡혔다는 여인을 데리고 오는 것입니다. 대중앞에서 주님을 시험하는 것 입니다.

그런데 시작할 때 말씀드렸지만 유대인들이 이 여인을 주님께 데려 온 것은 그들의 함정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망신 주고 대중의 주님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꺾어 버리려는 그런 시도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일면 생각하면 율법대로 해 버려라 주님이 말씀 하셨어도 큰 피해가 없으셨을 것 같은데 이들이 지금 꾸미는 일이 어떻게 음모가 될 수 있었을 까 궁금 합니다.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주님이 활동하시던 이 때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어느정도 자치권을 인정 받고는 있었지만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사형의 경우는 오직 로마인 집정관 즉 총독만이 내릴 수 있는 형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라고 물어본 것은 현실적으로 이 율법을 그대로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에 주님을 몰아 넣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대답을 못하고 우물거리는 주님을 망신을 주거나 아니면 율법대로 하라고 한다면 로마인들에게 넘겨 버릴 수 있는 교활한 도발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것은 이 유대인들이 아주 율법을 제대로 지키는 것처럼 여인을 끌고 와서 돌로 쳐 죽이니 마니 하고 있지만 이들이 말하는 것은 율법과는 아주 거리가 먼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간음한 여인에 대해 사형의 형벌을 이야기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중에 돌로쳐서 죽이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단 하나의 경우에 한 합니다. 그것은 정혼한 젊은 여인이 결혼도 하기전에 외간 남자와 간음을 했을 경우입니다.

이 조항은 신명기 22장에 나오는데 성경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처녀인 여자가 남자와 약혼한 후에 어떤 남자가 그를 성읍 중에서 만나 동침하면 너희는 그들을 둘 다 성읍 문으로 끌어내고 그들을 돌로 쳐죽일 것이니 그 처녀는 성안에 있으면서도 소리 지르지 아니하였음이요 그 남자는 그 이웃의 아내를 욕보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가운데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어떠십니까? 유대인들이 말하는 주장과 신명기의 말씀이 다른점이 있다는 것을 아시겠나요?

그렇습니다 예수님께 여인을 데리고 나온 유대인들이 놓친 것은 분명히 신명기는 같이 죄를 저지른 남성도 같이 벌하라고 말씀 하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남녀간의 욕정으로 저지르는 죄는 박수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한 사람만의 의지로는 죄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만 좋다고 억지로 통정을 하면 이것은 분명한 피해자가 있는 강간이기 때문에 한 사람은 벌하고 한사람은 치유해야 할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명기 22장에도 강간의 죄값을 치르게 하는것으로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이 여인은 유대인들의 주장에 따르면 간음하다 걸린 여인이라지만 같이 죄를 저지른 남자를 취조하지 않고는 이 여인이 간음을 저질렀는지 아니면 강간을 당한 희생자인지 알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또 무엇 보다도 이스라엘 안에서 죄의 뿌리를 뽑기위해 죄를 저지른 사람들 모두를 처벌하는 그래서 일벌백계로 삼는, 죄를 없애기 위해, 처벌을 강조하는 신명기의 율법의 정신과 지금 간음을 했는지 강간을 당했는지 알 수 없는 힘없는 여인만 데려다 놓고 이 여인에게만 죄값을 묻겠다는 유대인들의 불공평하고 또 자기 편한대로 심지어는 남의 생명까지도 진짜로 죄가 있든 없든 상관하지 않고 빼앗겠다고 덤비는 태도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명기의 율법은 죄를 미워하는, 그래서 이스라엘에서 죄를 없애기 위한 하나님과 또 하나님의 백성들의 의지의 표현이라면 오늘의 본문의 유대인들은 그저 부끄러운 부분 잘못된 부분을 도려냄으로 모든것을 해결했다고 생각하는 바로 명예살인 모습인 것입니다.

이들이 죄를 미워해서 율법을 들먹였다면 분명히 같이 죄를 저지른 남자도 처벌을 하여야 하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먼저 이 사건이 정말로 간음의 사건이었는지 강간의 사건인지 가려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아무리 좋게 봐줘도 똑같이 간음의 죄를 저지른 죄인인 남자를 찾지도 또 관심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이 때의 유대인 사회가 심각한 남성 우월의 불평등한 사회로 이미 자리 잡았기 때문에 성적인 죄의 경우 그 모든 원인을 여성에게서 찾는 비뚤어지고 왜곡된 성에 대한 인식에 사로 잡혀 있었기 때문에 그런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여성을 돌로 쳐서 죽여야 한다고 우루루 몰려나온 유대인들과 이들을 선동해 끌고 나온 유대인 지도자들 모두 심각한 죄에 빠진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모함하려고 음모를 펼지는 죄악을 저지른 것이고 선동된 유대인들은 죄가 아니라 사람을 미워하고 힘없는 여성을 희생양으로 삼아 자신들의 체면을 세우는 명예살인을 하려하는 살인의 충동으로 몰려나온 악한 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여자와 같이 죄를 저질렀다는 성경에서는 나오지도 않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그 남자는 만약 정말로 여자와 같이 서로 좋아서 정혼녀와 죄를 저질렀다면 자기가 사랑했던 여인을 놓고 도망가 버린 비겁의 죄를 저지른 것이고 또 동시에 간음의 죄를 저지른 것이며 만약 여인은 그렇지 않은데 자기만 좋자고 억지로 여성과 죄를 범했다면 이 자는 강간범이요 도망자요 악한 자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남자가 도망가도 아무런 문제를 삼지 않는것으로 보았을 때는 이 유대인들의 사회가 성적인 관점에서 얼마나 불공평하고 여성 탄압이 빈번한 폭력적인 사회였는지 알 수 가 있는것입니다. 벌써 죄는 둘이 저질렀는데 여자만 죽여서 사건을 무마하려고 하고 있지 않습니까?

성경은 말입니다, 이미 수천년전에도 여성도 상속자로서의 권리를 가질수 있도록 해 가족 경제 중심으로 돌아가던 사회에서 여성이라서 힘이 없어서 권리에서 배제 되는것을 막았습니다. 그것도 모세가 그렇게 법을 정해 주었습니다. 그런 성경의 정신과 오늘 본문에 나타난 유대인들의 모습과는 너무나 큰 거리가 존재합니다.

이런 역겨운 모습에 주님께서 조용하지만 너무나 강력한 일갈을 하신것이 오늘의 본문의 말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말씀 이신 것입니다.

이 들의 모습이 너무나 성경의 정신과는 다른 죄된 모습이었기 때문에 해 주신 말씀이신 것이고 죄 없으신 성육신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실 수 있는 권위의 말씀 이셨던 것입니다.

죄없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주셨던 율법, 죄 없는 백성들을 만들기 위해 주셨던 율법, 그 모든것을 지킬수는 없었어도 그 정신이라도 붙잡고 있었어야 할 유대의 백성들이 공평해야 할 율법의 정신을 버리고 약자만 붙잡아 왔고, 죄를 미워해서 엄한 처벌로 두려운 본보기를 삼으려는 율법의 정신과는 다르게 잡힌사람 연약한 사람 그리고 여자만 죽여서 명예를 지키겠다고 하는, 오히려 악에 악을 더하는 죄악에 빠져 있었고 게다가 주님을 곤경에 빠트리려고 죄에 빠진 혹은 죄에 당한 여인의 비참한 현실을 이용해 음모의 덫을 놓는 악을 저지르고 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또 이 여인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야 하는것이 돌로 쳐 죽이는 경우에 해당하는 죄를 저지르는 경우는 정혼한 남성이 있는 처녀가 다른 남자와 정을 통했을 경우니, 우리는 오늘 본문에 나온 이 여인이 나이도 아주 어린, 여인이라기에는 여자 아이에 가까운, 미숙한 여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경우라면 남자와 정을 통했을 확률보다는 제 생각에는 오히려 강간의 피해자 였을 확률이 훨씬 높다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만약 이 여인이 정말로 그런 성적인 폭력의 피해자 였는데 자신을 범한 악한 남자는 도망치고 아니 이 남자를 잡아야 할 주변의 남자들이 잡질 않고 오히려 피해자인 이 여인만 잡아 왔다고 한다면 이 여인을 중심으로 오늘의 본문을 본다면 강간사건의 피해자인 이 여인의 심정은 얼마나 끔찍 했을 것입니까?

그렇게 오늘의 본문은 아주 복잡하고 다양한 죄들의 타래가 얽혀있는 중심에 계시는 우리 주님과 여러 인간 군상들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때 주님께서 하신 말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말씀은 이런 심각한 죄의 영향아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사람들이 잊어 버리고 있던 자신을 둘러 싸고 있는 죄의 존재를 느끼게 하시고 양심을 각성시키십니다.

남성우월의 사회 속에서 살다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성을 죽여 자신들의 명예를 지키려 한 자들에게 자신들이 하고있는 것이 죄를 벌하고 죄를 없애는 것이 아니고 사실은 살인으로 죄를 덮으려는 악위에 악을 쌑고 있는 것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고 음모를 꾸민 유대인들에게는 자신들의 음모가 얼마나 간악하며 악한것인가를 느끼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중에 나이 많은 자들부터 들었던 돌을 던지고 하나씩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살인의 욕망에 불타던 많은 사람들이 깨어난 양심을 붙잡고 하나 둘 씩 돌아가는 가운데 끝까지 남아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간음의 현장에서 잡혔다는 여인이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이 더욱 더 이 여인이 간음을 저지를 여인이 아니라 남자에게 능욕을 당한 여인이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 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남들에게 걸릴 정도로 대단하게 치정을 저지를 정도로 닳고 닳은 여인이라면 자기가 죽을 수도 있었던 이 위기의 현장에서 남들이 사라지고 있는 틈을 타 도망쳤을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강간의 피해자들 중 많은 수가 자신을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하면서 정신적인 상처에 고통을 받듯 끝까지 남아있는 이 여인의 모습이 마치 남들은 이제 다 상관도 안하고 잊어버려가는 자신의 치욕을 끝끝내 잊지 못하고 또 그런 상황에 이르게 한 자신의 실수들을 용서 하지 못하고 자신을 마음으로 벌하며 끝까지 남아서 주님의 판결을 듣고자 하는 모습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주님의 판결을 들으려 자신을 자책하며 남아있던 여인에게 주님께서 주신 말씀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이었습니다.

죽을것 같이 자신을 자책하던 여인에게 죄없으신 주님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 하시는 말씀과 무엇보다도 가서 다시는 죄를 저지르지 말라는 말씀은 이 여인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먼저 자신을 정죄하며 과게에 자신이 저지른 실수와 자신이 당한 피해에 매여 있던 이 여인이 정말로 관심을 쏟고 힘을 다 해서 해야 할 일이 과거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살아 가느냐 하는것임을 분명히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자신을 죽이려던 사람들은 깨어난 양심으로 부끄러워하며 또 괴로와 하며 말씀의 뒤켠으로 사라지고 자신의 실수를 용서하지 못하고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참으며 주님앞에 끝까지 남아있던 이 여인, 죄 많은 세상의 희생양에게 주님께서 새롭게 보게 하신것은 죄로 더럽혀진 자신의 과거의 한 시점이 아니라 앞으로 정결하게 살아가야 할 길다면 긴 자신에게 남아있는 인생이었습니다.

자 세상이 뭐라고 나를 모함했던 그리고 그 모함이 사실이었던 아니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정말로 만나기 전에는 과거의 어떤 사건이 나를 지배 했을 수 있습니다. 과거의 어떤 상처가 나를 붇잡고 휘두를 수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여인도 만약 정말로 제가 생각하는 그런 사건의 피해자라면 이 여인이 겪은 고통과 그 고통으로 이 여인의 인생이 망가져간들 그것이 뭐가 이상한 일이겠습니까?

하지만 주님을 만나면 주님앞에 끝까지 서 있을 수 있다면 과거의 사건은 더 이상 나를 억메는 족쇄가 되지 못합니다. 나는 주님으로 인해 앞으로 정결하게 살아가야만 하는 나의 인생과 또 그 인생의 과제를 얻게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말씀이신 주님께서 그 때에도 지금도 우리에게 열어 주시고 계시는 새로운 인생의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죄없는 유일하신 한 분 그 죄없는 자의 용서에는 능력과 권위가 있습니다. 우리 주님의 용서에는 살리는 힘이 있습니다. 나를 살려 인생을 살 수 있게 하시고 눈을 뜨게 하시고 힘을 내게 하십니다. 죄에 빠져 있습니까? 주님앞에 끝까지 남아있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용서가 여러분을 살릴 것입니다.

 

8:1 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니라

8: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8: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8: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8: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8:6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8:7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8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8:9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8: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8: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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