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상식을 좇아 갑시다

sun-animation-close-up-with-bright-hot-corona-fire-flames-orange-animation-of-the-sun-the-star-at-the-center-of-the-solar-system-important-source-of-energy-for-life-on-earth세상엔 상식이란게 있습니다. 누구나 인정하는 규범이라고 할 수 있기도 하고 법칙이라고 하기도 하고 말이지요. 그래서 살아갈 때 상식을 따라가는 것은 매우 중요 합니다.

일 례로 차량은 우측통행이라는 상식을 따르지 않고 운전을 한다면 아마 미국과 한국에서는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 쉽게 처할 것입니다. 또 술을 마시고 운전하면 안된다는 상식을 따르지 않는다면 이 역시 자신의 생명을 쉽게 위험에 처하게 할 것입니다.

오뚜기는 넘어져도 일어나는게 상식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당연한 다시 일어나는 오뚜기라는 상식 뒤에는 오뚜기의 가장 낮은 곳에 무게 추를 채워놓은 무게중심의 역활이 숨어 있습니다. 이 무게 중심이 있어서 오뚜기가 넘어져도 일어나고 또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런 무게중심의 법칙을 이용하는 것들중에 아마도 가장 규모가 큰 것이 바로 선박들일것입니다. 거대한 배들은 배의 가장 낮은 곳을 평형수라는 물로 가득 채워 놓습니다. 그래서 오뚜기처럼 배가 기울어져도 일어설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선박과 오뚜기 의 균형 선박의 평형수 오뚜기 원리

그래서 배가 혹시라도 가라앉게 되더라도 배가 뒤집혀서 가라앉고 또 뒤집히지 않기 때문에 충분히 사람들을 구조할 수 있을 시간을 두고 천천히 가라않는게 되는 것이고 이것은 국제법으로 또 국내법으로 철저하게 지켜져야 하는 선박안전의 법칙이기도 합니다.

보통 수턴톤의 물을 평형수로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선박의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배들이 수천톤의 무게추를 달고 운항을 하고 있다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배들이 사고를 당하더라도 절대로 뒤집어지지 않고 천천히 가라 않을 수 있는 그래서 승객의 안전을 확보하고 운행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해양 선박계에서는 상식인것입니다.

 

그런데 이 상식이 무너진 사건이 일어 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월호 사건입니다. 세월호에서는 이 평형수를 다 빼고 대신 물건을 평형수만큼 더 실어서 운행을 했습니다. 선박의 가장 낮은 물탱크는 텅비어 있고 무게중신이 높은곳에 무게가 더 실리다 보니 세월호는 조금만 흔들려도 배가 뒤집어지는 위험한 상태로 운행을 했던 것입니다.

세월호가 조난 했을 때 해경은 상식에 따라 배가 기울어 졌어도 곡 복원되거나 복원되지 않더라도 뒤집어지지는 않고 천천히 가라 않을것이라 보고 구조에 있어 충분한 시간이 있다고 보고 구조에 임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고가 난 맹골수도의 조류가 너무 빨라 오히려 학생들이 두려움에 물에 뛰어들어 조류에 휩쓸릴 것을 더 걱정하고 구조에 임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당연한 상식과는 달리 평형수를 빼고 운행한 세월호는 상상을 초월해서 뒤집어 져 버렸고 뒤집어 진 배는 손 쓸 도리도 없이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간 것 입니다.

상식을 따르지 않고 자기 욕심대로 살아가던 인간들의 행동이 수없이 많은 어린 생명을 앗아가는 비극을 초래 했습니다. 아무나 다 따르는 상식 나 하나쯤 안 따라도 되겠지란 생각은 매우 위험한 생각 입니다. 그런 생각이 때로는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는 일을 초래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적인 상식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영적인 상식을 따르고 있습니까? 오늘의 본문은 예수님꼐서 말씀해 주시는 복음의 진리의 기본을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그런 진리를 따라가고 싶어 하지 않는 유대인들이 나와서 또 다시 설 전을 벌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요한복음 8:12-20 까지 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역시 초막절 축제입니다. 특히 초막절의 마지막날 즈음에 성전에 횃불을 밝히고 노래하고 춤추고 즐기는 그 풍습이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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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가 되면  성전가득 횃불들을 밝히고 또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편을 노래 합니다.

“시27: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시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 44:3 그들이 자기 칼로 땅을 얻어 차지함이 아니요 그들의 팔이 그들을 구원함도 아니라 오직 주의 오른손과 주의 팔과 주의 얼굴의 빛으로 하셨으니 주께서 그들을 기뻐하신 까닭이니이다”

이처럼 빛과 연관된 주제의 시편들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춤추며 축제를 즐겼던 것입니다. 이 때에는 엄한 규율들도 조금 느슨해 지고 사람들고 기쁘게 축제를 즐기고 있던 것입니다.

이런 배경을 뒤로 주님께서 자신을 빛으로 비유한 복음을 전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횃불을 키고 찬송하며 기뻐하며 기다리는 참 빛이 여기에 있다라고 말씀 하시는 것이 오늘의 말씀에 나오는 세상의 빛 비유입니다.

사실 아무리 횃 불이 밝다고 한 들 생명의 빛이신 우리 주님의 빛과 비교가 될 수 있으며 또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영광의 빛과 비교가 되겠습니까? 그런데 이미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셔서 세상에 오셨는데 인간들은 아직도 횃불이나 켜놓고 좋아라 하고 있으니 그걸 보고 계시는 주님의 답답한 심정이 이해가 갈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들이 진짜 생명의 빛을 영원히 못찾고 말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주님께서 느끼실 답답함이 얼마나 클지 가늠은 안 되지만 짐작은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유대인들로부터 수시로 생명의 협박을 받으시는 상황인데도 이번에는 성전 깊은곳 여인의 뜰까지 나가셔서 말씀을 전하시고 유대인들과 논쟁을 하시는 것입니다.Jesus Speaks Near the TreasuryIllustration-Temple-Complex

여인의 뜰은 바로 유대인들의 산헤드린 즉 공회당 바로 옆에 있었고 오늘은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유대인들과 논쟁하신 장소가 헌금함옆이라 하였으니 이 헌금함이 놓여있던 여인의 뜰이 바로 오늘 사건의 배경의 장소임에 분명한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찌보면 우리 주님께서 유대인들이 모여있는 그들의 소굴?에 직접 찾아 가셔서 도발을 하신 것 처럼 생각 할 수도 있는데 만약 그러셨다면 위험을 무릎쓰시고 그러신 이유가 주님께서 강론하시는 복음의 진리를 못 알아듣고 또 알아 듣고도 거부하는 이 유대인들을 너무나 안타깝게 생각 하셔서 그러신 것이 아니겠는냐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오늘 초박절이 끝나가는 이 밤에 유대인 공회당 옆에 있는 여인의 뜰에 일부러 가셔서 복음을 전하실 이유가 없을 테니까요, 한 마디로 너무 위험하기 때문입니다.9

오늘의 본문의 첫 지작은 원어로는  Πάλιν -팔린, 다시라는 뜻의 접속사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반복해서 주님의 복음을 전하셨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만큼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이 못알아 듣고 심지어는 거부하더라도 계속 반복해서 말씀을 전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핵심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바로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하시는 말씀 입니다. 이전의 7:38절의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하시는 말씀과 같은 이야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예수이외에 우리가 생명을 얻을 것은 없다는 진리를 다시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은 이 진리의 말씀을 이렇게 몰아세웁니다. “바리새인들이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증언하니 네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도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5:31에서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되” 하신 말씀으로 외우고 있다가 이렇게 받아치는 것이었습니다. 머리도 좋고 기억력도 좋고 말씀도 잘 아는데 그 좋은것을 이렇게 예수님 말꼬리 붙잡기나 하면서 그렇게 허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바리새인들은…

그런데 이 말씀도 잘 보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예수님을 위해 하신 말씀 인가요? 지금 진리를 몰라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나를 따르면 살 수 있다라고 하는 말씀이 예수님을 높이는 말이 될 수 있나요? 그리고 하나님이신 주님께서 어떤 말을 어떻게 하셔야 하나님이 받으시는 영광에 영광을 더 할 수 있을 까요?

화재가 나서 건물에 갖혀 있을 때 소방수가 와서 살고 싶으면 저를 따라오세요 하고 이끌어 낼 때 과연 그 순간 소방수는 자기 자신을 높이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것인가요? 그리고 그럴 때는 소방수가 설혹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살고 싶으면 소방수를 따라가야 하는것이 상식인것이 아닌가요?

지금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 예수님꼐서 세상의 빛이다라고 하시는 말씀은 나를 뫂이고자 하시는 말씀이 아니십니다. 정말로 오직 예수 이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다는 사실을 거듭해서 우리에게 일깨워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 너희 눈앞에 구원의 길이 펼쳐져 있다는 신호를 보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치유와 지혜로 수많은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또 병자를 고치신 후에 주님께서 정말로 원하시는 것 이 죄인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구원에 들어가는 것 그리고 그 구원을 가능하게하는 유일한 진리를 이사와 기적을 일으키신 후에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이 이야기하는 메시아가 일으킬 이적과 기사를 다 행해 보여주시고 이제 인간의 언어로 예수님의 정체성을 밝히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그리고 유일한 구원의 길이다, 나를 믿으면 영원한 생며을 얻을 것이고 암흑의 길을 걷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진리와 구원의 길에 대한 복음의 증거를 유대인들은 바리새인들은 주님꼐서 자신을 높이기 위해서 자신을 홍보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라고 모함을 하고 진리를 왜곡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꼐서 하시는 말씀이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거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하시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지난 번 주님을 가르켜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알고 있다고 하며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일 수 없다는 이야기에 대한 정확한 반박 이신것입니다.

주님께서 지금 하시는 말씀이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려는 말씀인지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려고 하는 수법인지 구별할 수 없는, 구별 할 마음도 없는 바리새 인들에게 너희가 아는것은 오직 육으로 인한것만 알고 있다 그러니 이 모든것의 근원이 되는 영적인 진리를 알지 못하고 그러니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 지 못하는 것이다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8:14-15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하노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인정해야 할 것이 솔직히 지금 주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신다면 주님을 알아볼 사람이 없을 것 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눈을 띄워 주신자 외에는 다 이 바리새인들처럼 진리를 알 아 볼 수 도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없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너무나 육을 따라 사는데 익숙하고 진리의 삶을 사는데 소흘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일상의 소욕과 걱정이 우리의 진리의 삶을 너무나 자주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다시오셨어도 출근 하는라 애들 키우느라 또 장보는라 드라마 보느라 예수님뵈러 가지 않을 사람들이 분명히 많을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리새파인들 욕을 하다가 제 심령에 찔림이 있었던 것은 이들은 주님의 말씀을 암기 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박해하던 바리새인들도 주님 말씀도 외우고 있는데 말씀을 전한다는 저는 뭘 그리 열심히 주님의 말씀을 붙잡은 적이 있었나 회개했습니다.

하지만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이 죄인을 구하시고 택해 주셨습니다. 여러 성도분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바리새인들보다 나은것 하나 없었을 지라도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생명의 빛을 품게 된 것입니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이제 정말 영적인 상식을 따라 살아 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육체의 상식은 비틀어지고 왜곡되어서 작동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넘어지면 안되는 재가 넘어가듯이 세상의 상식은 때로는 제대로 작동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상식, 예수님이 말씀 하시는 복음의 상식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상식은 진리이며 능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 죽을 저와 여러분도 살릴 수 있는것이 아닙니까?

영적인 상식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 믿으면 산다 입니다. 예수 빆에 구원은 없네입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그것이 영적 상식 입니다. 이 상식을 동작시키는 복잡한 원리에 대해서는 우리는 알 지 못해도 됩니다. 오뚜기가 오뚜기인것을 알려면 오뚜기가 넘어져도 일어난다는 것만 알면 됩니다. 오뚜기 안에 집어넣은 무게추의 무게와 오뚜기의 크기와 비례와 중력의 복잡한 물리적인 상관관계를 우리는 몰라도 충분히 오뚜기가 오뚜기인것을 알 지 않습니까?

예수 믿으면 삽니다. 그게 우리주님꼐서 계속해서 반복하고 반복해서 전해 주시려던 진리입니다. 오늘도 그 말씀 붇드시는 저와 우리 모든 여러분 되시길 축원 드립니다.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8:13 바리새인들이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증언하니 네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도다

8:1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여도 내 증언이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거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8:15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하노라

8:16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8:17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이 참되다 기록되었으니

8:18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느니라

8:19 이에 그들이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8:20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헌금함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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