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녀입니까? 사탄의 자식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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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를 경계로 이전의 세상과 이후의 세상이 나뉘는 문화의 변혁이 일어납니다. 비틀즈와 락뮤직으로 대표되는 이 시대는 단순히 듣고 보고 즐기는 수준에서의 변화가 아닌 생각하고 행동하는 가치까지도 바꾸어 놓는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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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서도 이런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중에 롤랑 바르트의 저자의 죽음이라는 짧은 글은 문학전반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 킵니다.

이 글을 쉽게 이야기 하자면 정통적으로 문학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이해해온 저자가 글을 쓴 의도를 파악하는것 보다 저자가 의도한 의미와 완전히 다를찌라도그 글을 읽고 나서 독자들이 파악하는 의미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자신의 글에 대한 완전한 통제를 가질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문학전체에서 저자의 중요성보다 독자의 중요성이 더 크다는 주장이라는 정도로 이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자가 컵이라고 썼을 때 독자가 이거을 파란컴으로 인식하거나 빨간컵으로 읽는다면 그 컵은 파란컵이거나 빨간컵이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작품을 완성하는 것은 저자가 아니라 독자라는 과격한 주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생각해 봅니다. 만약 저자가 없었다면 독자가 읽어야 할 텍스트가 있을 수 있었을까? 독자가 가지는 해석의 자유가 있을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제한된 것 아닌가? 컵을 파란컵으로 혹은 사기컵으로 받아들이는것은 독자의 자유지만 어찌됬던 컵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는냐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비판을 하는 이유는 이런식의 포스트 모던 사고는 증거가 없어도 내가 볼때 내가 느낄 때 확실하다면 사실과는 상관없이 내가 믿는 허구를 사실과 동일한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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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자면 범죄의 증거가 없고 결백하다고 주장하는 한 개인을 두고도 그 개인을 향한 안좋은 이미지만으로도 그를 유죄라 단정지어버리고 사회적 인격적으로 정죄하거나 혹은 더 미개한 사회의 경우에는 증거가 없이도 법 시스템 자체가 이 개인에게 징계를 가하는 근거가 될 수 도 있는 무시무시하고도 무책임한 사고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과는 상관없이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것 만이 의미를 가지니까요.

그리고 이런 식의 사고를 혹시라도 성경에 적용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것과는 상관없이 내가 성경을 읽고 어떻게 느끼는가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 한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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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하나님께서 영원한 징벌을 말씀 하셔도 내가 느끼기에 온 인류가 구원 받는것이 더 분위기가 좋으니까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구원 받을것이라고 주장하게 되지는 않겠습니까? 또 하나님께서 결혼은 분명히 남자와 여자가 하는 것이라 하셨음에도 남자와 남자끼리 여자와 여자끼리 하고 싶다면 시켜주면 된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 보다는 내가 그 말씀을 어떻게 받아 들이는가가 중요하다면 말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요한복음 8:31 부터 8:59 까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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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본문은 지난번 우리 주님과 바리새파 유대인들의 논쟁의 연속입니다. 본문안에 있는 내용들이 너무나 중요한 요절들이 많은데 짧은 지면에서 다 다루기에는 저의 능력이 턱 없이 부족한 그런 중요한 말씀이 넘치는 구간입니다.

특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나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하시는 말씀은 신학적인 무게나 신앙적인 무게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귀한 말씀 들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다루지 않고 오늘은 특별히 한 구절에만 집중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그 구절은 바로 요한복음 8장 44절 입니다.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이 말씀은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과의 논쟁에서 정말로 따끔한 가르침을 주시고자 우리 주님께 늘 반기를 드는 이들에게 주님께서 주신 엄중한 비판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저의 이목을 강하게 잡은 이유는 우리 주님께서 드물게 보여주신 분노의 말씀이신것도 이유가 있지만 우리에게 우리가 주님안에 잘 서 있는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잘 보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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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주님께서 비판하신 자들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전하는 지체 높은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전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을 예수님께서 오늘 무엇이라고 부르셨습니까? 아비가 마귀인 자들 즉 마귀자식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강론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에게는 상상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엄청나게 모욕적인 말씀 입니다. 지금도 생각해 보시면 평생을 교회를 섬기는 목사님에게 가서 마귀자식 이라고 누군가 부른다면 그게 얼마나 모욕적인 일이 되겠습니까? 이 말씀은 그정도로 모욕적인 표현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과연 이 유대인들 우리 주님을 죽이려고 서로들 모여 작당을 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감시하고 박해 하니까 미워서 이 자들을 모욕하려고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예수님 마음에 안드는 자들이니까 게다가 죄악에 빠진 자들이니까 너희들 야단 좀 맞아봐라 이렇게 하신 말씀 일까요?

그저 야단 치시려는 말씀 이라면 발언의 수위가 너무 높으십니다. 평생을 하나님 말씀을 연구하고 강론하고 가르쳐 온 사람들에게 야단 치시는 말씀이시라면 너무나 심하십니다. 그렇다면 궁금해 지는 것은 왜 이렇게 심한 말씀을 하셨을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주님께서 왜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표현을 쓰셨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대답은 오히려 간단 합니다.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말씀 하신 이유는 이들 유대인들이 정말로 마귀의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표현이 너무나 강하시기 때문에 이것말고 주님의 행동을 설명해 줄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들 유대인들이 평생을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쳐온 이들이 바로 마귀의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물어봐야 할 것은 이 들이 정말로 특별히 악한 자들이었기 때문에 우리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 하시는 것일까요? 아마도 그럴 수 도 있습니다. 죄없는 우리 주님을 살해 하려는 음모까지 꾸미던 이들이 악한 자들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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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들이 이러던 것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못하고 로마의 점령하에 있던 이스라엘을 보호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을 따르는 백성들의 수가 커질 때 점령군 로마가 이를 두려워하여 이스라엘민족을 다시 살육할 지도 모른다는 나름 정당성을 가지는 이성적이고 정치적인 계산하에서 예수님을 위험한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던 이들을 과연 마귀의 자식이라고 까지 할 수 있을까? 생각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주님께서는 이들 바리새인과 회당의 유대인들 보다 어쩌면 더 죄를 짖고 산 사람들에게도 한번도 이렇게 모욕을 주신 적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신다면 예수님의 이 과격하신 언행이 더욱 더 이해 하기 힘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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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들이 특별한 악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 앞에서 이들이 하는 행동들이 마귀의 자식이라고 불리울 만큼 악한 일이었다는 것이 이 말씀을 이해할 때 올바른 태도라고 생각 합니다. 비슷한 예로 나중에 주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려 하실 때 이를 막던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하시며 베드로가 사탄일리 없는데  사탄이라며 야단하신 경우를 생각하면 베드로가 사탄이어서가 아니라 베드로의 행동이 사탄의 행동이었음을 꾸짖으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가 처절하게 타락한 상황에서 이들 유대인들이 특별히 더 죄인이라서 마귀의 자식이었던 것이 아니라 주님앞에서 이들이 한 행동이 바로 마귀의 일이었기 때문에 이런 말을 들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이 마귀의 일이라는 것입니까? 무엇을 하면 마귀의 일을 하는 것이고 주님께 이렇게 혼나야 하는 일입니까? 우리는 과연 이 마귀의 일을 하는 이 유대인들처럼 실수 하지 않을 수 있다고 자신 할 수 있을까요? 과연 우리는 이들 유대인들이 저지르는 실수를 하지 않을 정도로 분별력이 있어서 마귀의 일을 대신 하는 마귀의 종 노릇을 절대로 하지 않을 정도로 자신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먼저 마귀의 일을 하는 배경에는 너무나 분명히 악한 마귀가 있습니다. 영적인 존재인 마귀의 간교한 음모가 언제나 인간들이 마귀의 일을 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마귀는 언제나 이런 악한 존재 였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가 어떤 상황에 서 있던 우리를 넘어트리려는 존재이므로 마귀탓만 하는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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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가 우리가 정말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입니다.  주님께서 말씀 하시길 마귀는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하셨습니다. 이것이 마귀의 가장 큰 특징 입니다. 거짓을 말하되 자기 자신의 것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원어에서 보면 ἐκ τῶν ἰδίων λαλεῖ (엨 톤 이디온 랄레이) 로 그는 언제나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온것을 말한다라는 것입니다.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자기안에서 나오는 것으로 말하기 때문에 마귀인 것이고 마귀 자식이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말을 하면 마귀 자식이라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속으로 부터 나오는 것을 말하면 마귀요 마귀 자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존재입니다, 우리의 존재의 근원이 하나님되시고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하고 생각하고 즐기는 모든것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어야 함은 너무나 자명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들이 아니라 우리 속으로부터 온것들을 말하고 추구하는 순간 우리는 마귀의 자식이 되는 것입니다.

자 생각해 보시면 베드로가 예수님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하고 야단을 맞은 후에 주님께서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생각도 하나님으로부터 온 생각이 아니라 나 스스로부터 온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그 순간 우리의 생각이 마귀의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풍조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 없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기들 보기에 좋은대로 동성애 결혼 찬성하고 낙태 조장하는 어떠한 신학자들과 목사들이 바로 오늘 우리 주님께서 야단치시는 바로 그 경우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마귀의 자식들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밝히시고 구분하신 남과 여를 부정하는 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겠으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미지로 지으신 모든 인간들의 그 귀한 생명을 무시하고 엄마 뱃속에 있는 아이들을 살해하는 낙태를 조장하는 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들이겠습니까? 그들이 설혹 목사와 신학자의 옷을 입고 있더라도 그들이 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마귀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생각하면 우리중 누구도 이 죄에서 쉽게 자유롭다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없을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어떤 사소한 면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하고 살아가기 보다는 나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과연 역사상 단 한 분외에 누가 있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앞에서 모두들 우리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심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할 때 만이 우리가 과연 지금 하나님으로 부터 온 것을 말하고 행하고 살아가고 있는 지 알 수 있을 것이고 내가 또 누구라도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자들을 구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조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릭 워렌 목사님의 목적이 이끈는 삶은 우리가 세상에서 사는 동안 정말로 우리가 추구 해야 할 것 어떻게 하면 우리가 사는 삶을 방향을 잃고 부유하듯 사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고 그야말로 우리 인생의 목적을 찾아 분명한 삶을 살 수 있을 까에 대해 쓴 책입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을 나의 인생의 목적이 과연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나의 인생의 진짜 목적을 찾아 멋진 삶을 살 수 있을까 진짜 나의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기대하며 책을 펴면 첫번째 나오는 문장이 이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인생의 목적은) 당신에 관한것이 아닙니다 – It’s not about you.

그렇습니다. 나의 인생의 목적은 나에 관한것이 아닙니다. 이 것은 하나님을 향하는 것입니다. 나의 인생을 나의 것으로 채우려 하면 우리는 주님앞에 마귀의 자식으로 서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주님의 은혜로 채우려 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주님앞에 서게 되고 살게 되고 세상을 승리하게 됨을 굳게 붇잡으시기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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