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심에 순종하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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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 러시아의 시인 푸시킨의 시입니다. 이 시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아마도 시인이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삶의 모습을 잘 잡아내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삶은 언제가 예상보다 벅차고 당해내기 힘든 문제의 연속입니다. 아무런 걱정없이 살 것 같은 사람들에게도 예외없이 그들이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삶의 무게를 감당하고 이겨내는 데에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자기 자신이 모든 일에 책임을 지는 것이 우선이지만 훌륭한 사람의 도움이 있을 때 어떤식으로든 삶의 어려움을 이겨나갈 수 있다는 것 많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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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탈북 병상의 총성을 수술해서 다시 화제에 오르고 있는 아주대의 이국종 교수의 경우는 아버님이 육이오때 부상을 입은 국가 유공자의 자녀로 아주 어려운 유년기를 보냈다고 합니다. 특히 따가운 눈총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예를들면 부상입은 국가 유공자의 자녀에게 주어지는 의료복지 카드가 있는데 축농증이 심해 치료가 꼭 필요했던 이국종교수가 병원에서 이걸 사용하려고 하면 간호사들의 눈총과 박대를 받기 쉽상이고 때로는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쫓겨나기 까지 하는 수모를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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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마음에 상처가 컸지만 세상이 그런가보다 받아들이던 그에게 의료복지카드를 보고도 정말로 따뜻하게 진료를 해주며 병원비도 받지 않았던 한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세상에 훌륭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그 분이 입었던 의사가운이 너무 멋있게 보였다는 이국종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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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국종 교수가 이 의사 선생님과 같이 훌륭한 사람을 살면서 만나지 못했었다면 이 분의 삶이 어떤 좌표를 밟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이국종 교수를 이렇게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엄한 가르침을 주시던 어머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국종 교수의 삶은 과연 어떤 좌표를 밟게 되었겠습니까?

의사생활을 하면서 가장 어렵다는 중증 외상 치료의 길을 걷고 잇는 이국종 교수, 의료 보험도 안되는 사회의 밑바닥에서 사는 사람들이 힘든일을 하다가 사고를 당해 이국종 교수에게 치료를 받는 가장 많은 환자의 수를 차지하고 이런 사람들 살리려고 자기 돈을 쓰다 빚을 팔억이나 안고있다는 이국종 교수의 최선을 다하는 삶은 우리로 하여금 정말 많은것을 돌아보게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훌륭한 사람의 삶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된 또다른 선한 사람들의 삶 역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런 도움을 받았다고 훌륭한 사람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잠재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방향을 제시 해 주는 일은 엄청난 결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국종 교수님이 그 훌륭한 의사를 만나지 않으셨어도 훌륭한 사람이 되었었겠지만 지금의 의사 이국종을 우리는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오늘의 본문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과연 어떤것이 하나님의 일인지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요한복음 9장1절로 12절 까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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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길을 걷다가 날 때부터 맹인인 사람을 보게 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날 때부터 맹인이 되어 힘든 삶을 살며 구걸로 목숨을 부지하는 비참한 삶을 사는 사람을 보고 제자들은 순간 생각 하기를 이렇게 비참한 삶을 사람이 살아야 한다면 분명히 그 원인이 있을것이다 생각 한 것 같습니다. 우리 주님을 따라 다니다 보니 제법 생각이 깊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한계는 이런 비참한 삶의 원인을 오직 직접적인 죄의 결과로만 생각한것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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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우리의 죄로 일그러진 모습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는 이 일그러진 세상 죽음의 굴복한 세상의 모습을 벗어 버리기를 만물이 고대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롬 8: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그래서 그 죄로 일그러진 대표적인 결과가 죽음이고 또 질병의 고통이 아닙니까? 그래서 이렇게 큰 그림에서 보면 우리의 모든 질병과 죽음은 우리의 죄의 결과가 맞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원죄의 결과이지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이 질문하듯 어떤 특정한 죄의 결과로만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귀를 의심하게 할만큼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요9: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불행과 질병을 어떤 목적을 가지고 예정하신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 드렸듯이 질병과 죽음과 또 우리의 고통은 우리의 원죄의 결과이지 하나님의 예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의 원죄의 결과로 일그러진 세상에서 살게된 결과로의 질병과 삶의 부조리 함, 어려움 등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로인해 고통만 받도록 남겨두질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이를 극복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또 우리의 삶의 지평을 넓히는 기회로 쓰시기 원하신다는 말씀으로 받아 들이는 것이 옳을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일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죄는 우리의 원죄고 우리가 이런 부조리하고 깨어진 세상에 사는것도 우리의 원죄 탓이고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모든 어려움과 죽음도 우리의 원죄로 깨어진 세상의 결과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것에서 우리를 구원 하시려 우리 주님을 보내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고도 우리가 이런 깨어진 세상의 고통을 당하는 것을 순순히 넘어가 주시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이 일들을 어떤 식으로든 극복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 내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정말 중요합니다. “요 9: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하시고 주님께서 이 맹인의 눈을 고치기 위한 치유의 사역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자세히 보시면 ‘나를 보내신 이의 일’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부조리한 세상에서 우리가 할 일이 있다는 말씀이신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일을 하여야 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이 세상에서 감당할 일이 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감당해야 될 부분조차도 모두 하나님의 섭리안에 하나님께서 감당하시는 일일 것입니다. 마치 오늘 본문의 장님이 예수님께서 흙을 개어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에 보내사 그곳에서 눈이 떠 졌지만 예수님께서 시키시는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일 즉 실로암에 가서 눈을 씻는 일을 이 맹인이 했지만 맹인의 눈은 주님이 띄어 주신것임과 같이 말입니다.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것에 관해서는 사실 두 가지의 일이 나오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 주님이 행하신 맹인을 치유하는 치유의 사역이고 두 번째는 소극적인 의미지만 주님께서 하신 말씀 대로 실로암에 가서 눈을 씻은 맹인의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맹인이 한 일이 하나님의 일이 될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평생을 장님으로 살아온 사람이 눈을 뜨게되는 엄청난 기적을 겪게 된 것에 비해 이 장소에서 저 장소로 이동해서 눈을 씻은것이 무엇이 대단하다고 하나님의 일을 한 것 이겠습니까? 생각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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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실로암의 뜻이 히브리어로 ‘보내심’임을 생각 해 보십시오. 장님이 연못에 가서 눈을 씻어서 하나님의 일을 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 보내심을 받아서 실로암 (보내심)에서 눈을 씻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한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보내심 즉 콜링에 순종하였기 때문에 장님이 하나님의 일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치유 사역도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콜링 따라 하신 하나님의 일이었고 이 맹인이 행한 일, 실로암에 가서 눈을 씼은 일도 하나님의 보내심에 순종한 하나님의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보내심에 순종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와 연관을 지어서 생각 할 일은 장님보고 실로암에 가서 눈을 씼으면 눈이 떠질것이라는 말씀을 이 맹인이 따라서 행한것은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꼐서 하신 말씀은 맹인이 지금 아픈 사람 놀리냐며 화를 내도 이해가 충분히 갈 만한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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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또 다른 예로 문둥병자 장군 나아만도 엘리사에게 보냄을 받아 요단강에서 자신의 나병걸린 몸을 씻지만 자신의 부하의 설득을 듣기 전까지는 얼마나 분노 했었습니까? 이해가 갑니다 아픈것도 서러운데 사람을 놀리나? 싶은 맘이 생길 정도로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을 시키신 것이니까요. 그 깟 목욕 좀 한다고 나을 몸 같았으면 진작에 나았을 것이라 생각이 왜 안들겠습니까?

그러나 이 사람들은 순종했고 치유함을 받았습니다. 말도 안되는 요구에 어떻게 순종을 할 수 있었습니까? 믿음으로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어 보내심을 받아 드리고 순종하여 치유함을 받고 동시에 하나님의 일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다 보니 저는 이국종 교수님 어렸을 적에 축농증으로 고생할 때 의료복지 카드를 보고도 친절하게 그리고 치료비도 받지 않고 이국종 교수님을 치료 해 주신 그 의사 선생님이 하나님의 보내심에 순종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 해 봅니다.

어린 환자, 의료 복지 카드를 사용하는 국가 유공자의 자식을 귀하게 보아주고 또 도와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하신 하나님의 보내심에 이 분이 순종해서 정성껏 치료를 하고 또 어린 이국종 교수에게 힘을 주어서 이국종 교수가 자신의 의사로의 콜링을 받는일에 큰 도움을 주신 것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하나님의 보내심에 순종해야 하는 많은 사소한 일들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실로암에가서 눈을 씯어야 할 소소한 보내심이 참 많을 것입니다. 좋은 말하기 거짓말 안하기 뒤에서 사람 험담 안하기등. 참 사소해서 말하기가 멋쩍은 그런 일들이 많을 것 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순종 했을 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게 되게 또 내가 알지는 못해도 다른 사람의 인생에 인생이 바뀔만한 임팩트를 주게 된다면 이런 사소한 보내심에 우리가 정말 큰 믿음을 가지고 순종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상은 험악 합니다. 지금 뉴스를 보면 여러 문제들이 넘치고 폭력과 광기가 가득한 세상입니다. 말세 입니다.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멀지 않은 말세 입니다. 또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도 각자 큰 어려움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착각 하는것이 이런 큰 문제속에서 우리가 감당할 보내심은 특별한 사람만이 받는 특별한 부름심만 있을것으로 생각 하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실로암으로 가십시오 그리고 그곳에서 눈을 씻으십시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아닙니까? 장님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믿음의 순종을 보일 때 그 삶속에 권능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내심에 순종한 장님의 눈이 떠 졌듯이, 약자에게 친절했던 그 어떤 의사분의 순종이 이국종이라는 훌륭한 의사의 눈을 뜨게해 의사라는 콜링을 보여주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 결과로 이국종 교수가 삼천이 넘는 중증외상 환자들을 수술하고 치유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살아서 운동하는 지금은 빛이 충만한 낮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는 빛이 가려진 어두운 밤이 곧 올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아직 빛이 충만할 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을 때 마음것 하나님의 일을 행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그 하나님의 일이 실로암에 가서 눈을 씻는 정도로 쉬운 일이라면? 우리가 그 보내심에 순종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의 그 사소한 순종이 이 험악한 세상에 빛이 되고 길이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 냅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보내심에 순종하는 실로암에 가서 눈을 씼는 우리모두를 깊이 묵상하길 원합니다.

 

9: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9: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9: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9: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9: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9: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9: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9:8 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이르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9:9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자기 말은 내가 그라 하니

9:10 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9:11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9:12 그들이 이르되 그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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