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한 진리는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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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본문은 요한복음 9:13-34 입니다.

오늘의 본문의 특이한 점은 신약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중에 드물게 등장하는 예수님이 등장하시지 않으시는 다른 주변인물들이 사건을 이끌어가는 형식의 특이한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오늘의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바리사이파들과 예수님이 눈을 띄워준 맹인 그리고 그 맹인의 부모.

문제는 예수님께서 실로암에서 나면서부터 장님이었던 사람의 눈을 뜨게하는 기적을 행한것을 바리사이파들이 알게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신 이 시점이 바로 안식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자, 나면서부터 맹인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우리 주님의 능력으로 눈을 뜨게 되는데 이 날이 안식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됩니까? 아픈 사람 고쳐주는일이야 일년 삼백 육십오일 언제나 해도 선한일이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걸 문제로 보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리사이 파 인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율법상 안식일에 일을 하면 안된다는 해석은 안식일에 하나님께 예배드리지 않고 장사를 하거나 농사를 짓거나 하지 말라는 말씀이었지 숨만 쉬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라는 이야기가 아닌데 말입니다.

이런 이들의 태도도 이해할 수 없지만 더 이해 할 수 없는것은 이들이 눈을 뜨는 기적을 체험한 맹인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9:13 절에 보면 “그들이 전에 맹인이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 라고 말씀 하시는데 여기서 데리고 왔다로 번역된 원어는 ἄγω – 아고 인데 이 단어의 뜻이 미묘합니다. 이 단어가 데리고온다라는 뜻이 있는것은 맞는데 친절하게 데리고 오거나 모시고 오는것이 아니라 짐승 몰아 오듯이 끌고 오는 성격이 있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이 단어는 체포하다로 번역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 맹인을 바리새 인들이 데리고 오는 태도가 매우 적대적이었다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과 이 맹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백성들을 상대로 거짓 치유 사역을 꾸며대 사기를 친 사기꾼 일당 보듯이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맹인을 범죄인 취급을 하면서 단단히 심문을 하려고 끌고오게 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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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보면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이 과연 바리사이파들의 권력이 어느정도였길레 이렇게 사람들을 잡아오라 마라를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현대의 아무리 큰 대형교회의 담임 목사님이라도 누구 누구 내가 취조좀 해야 하니까 잡아와라고 할 수 있습니까? 못합니다. 목사님이 아니라 대기업 회장이라도 그렇게 했다가는 잡혀가서 징역을 삽니다. 어떤 대기업 회장님이 술먹다가 자기 아들을 때린 청년들을 잡겠다고 조폭들을 풀어서 잡아오게 했다가 징역을 산 일도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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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왜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이 바리사이파 인들을 단순히 종교 지도자 정도로만 생각하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비록 로마의 치하아래에 있어서 사람을 사형에 처할 수 만 없었지 종교, 정치, 사법체계와 심지어는 경제까지도 좌지우지 하던 사람들이 바로 이 바리사이파 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의 바리사이파들은 종교 지도자로써의 태도로  이 맹인을 심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이스라엘의 검찰로써 혹시 있었을 수 있는 사기사건으로 의심되는 사건을 수사하는 차원에서 참고인 조사를 위해 평생 맹인이었다가 눈을 뜬 이 남자를 체포해 압송해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까딱 잘못하면 바리새인들은 잡혀온 사람들을 파문, 출교조치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출교, 파문 조치를 단순하게 당신 이제부터 우리 교회 나오면 안되라고 하는 정도의 어려움을 겪는것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왜냐 하면 이 시대 유대인들이 출교를 당하면 이방인과 같은 취급을 받게 되고 그렇게 되면 유대인들한테 물건을 사지도 팔지도 못하고 결혼도 안되고 교제도 할 수 없는 철저하게 고립된 삶 그리고 살기가 불가능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을 의미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이 장면은 비록 예수님의 능력으로 눈을 치유 받았다고는 하지만 평범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던 서민인 이 맹인이 서슬퍼런 검찰청에 잡혀오는 그런 장면을 생각하시면 비슷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 맹인은 평생눈을 떠 본적도 없는 그리고 한 곳에서만 머물면서 구걸을 해서 살던 사람이었는데 검찰청에 끌려간다고 생가해 보시면 이 사람이 얼마나 겁이 났을 지 짐작이 되실것으로 믿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취조가 시작 됩니다. 과연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냐고 다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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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이 사람이 말하길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하니..” 그저 사실대로 자기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핵심만 가지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바리새인중에 어떤 사람들이 힌트를 주려고 합니다.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며…” 자기들이 하려는 일이 예수님을 옭아매서 처치하려는 일임을 슬쩍 암시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맹인의 눈을 치유함으로 일을 했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키지 않은 죄인이고 그런 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람일 리가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판단을 미리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이런 식으로 몰고 갈 테니까 알아서 잘 협조하라고 어깃장을 놓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계획이 쉽게 진행이 안됩니다. 자기들끼리 아주 단결이 잘 될 줄로 생각을 했는데 자기들 안에서도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이 반론을 제기 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그러고는 자기들끼리 싸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잘 살펴 봐야 할것은 이들 바리사이파인들이 지금 갈등을 겪는 부분은 바로 신학적인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그러한 이유로 안식일에 일을 한 예수님을 죄인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나면서 소경된 자의 눈을 뜨게 하는 기적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기적이 아니면 안되는 것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이들이 이 기적을 믿지 않았어도 예수님을 자신들이 붙잡으려면 이 신학적으로 충돌하는 이 부분을 해결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예수님에 대한 기소장의 신학적인 논리가 자기 충돌의 모순으로 깨어진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안식일을 범한 죄인인 예수님이 하나님의 권능으로만 가능한 맹인의 눈을 뜨게하는 기적을 행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신학적 관점에서는 죄인은 기적을 행할 수 없다는 것, 이것이 그들이 직면한 딜레마였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온전히 이해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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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들이 한 행동이 9:18절에 나와있습니다. “유대인들이 그가 맹인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그 부모를 불러 묻되…” 그러니까 이 맹인이 정말로 나면서 맹인이었는지 확인을 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 사람이 맹인이 아니었던 것이 드러난다면 바리사이파인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에 딱 들어맞는 일이 됩니다. 사기꾼이 사기기적을 만들어 인기몰이를 한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그 부모의 답변은 자기들이 듣고자 원하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부모들이 말하기를 “9:20 그 부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우리 아들인 것과 맹인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그러나 지금 어떻게 해서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그에게 물어 보소서 그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먼저 이 부모는 이 사람이 자신들의 아들인것과 태어나면서부터 장님인것을 확인 해 줍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철저히 자신들은 아는 바가 없다고 합니다. 물론 맹인이었던 자기 자식이 눈을 떴는데 그에 관한 일을 모른다는 것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고 아마도 이들이 어떻게 자식이 눈을 떴는지 모른다는 것은 온전한 거짓이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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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그렇게 확신 할 수 있는가는 9:22절에 적기를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함이러라…”적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들 부모는 사실을 다 알고도 예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치유한 사실을 말하면  바리새파인들의 미움을 사 출교를 당해 삶의 기반도 다 뺐기고 비참하게되는 것을 두려워 해서 아들에게 모든것을 미뤄 버린 것입니다.

아무리 두려워도 부모가 자식을 부정하기는 정말 쉬운 일이 아닌데 이 부모들은 바리새파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부모로써 가지고있는 부모로의 자식에 대한 사랑을 이겨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르니까 울 아들에게 물어 보라고 한 것이었습니다.

이것만 봐도 오늘의 이 사건이 얼마나 살벌한 분위기에서 일어났는지 알 수 있습니다. 부모들 마저 자식을 부정 할 수 밖에 없는 공포분위기. 검찰청에 끌려온 가난하고 배운것 없고 힘없고 빽없는 불쌍한 서민부모의 모습이 이런것과 비슷할까요? 아마도 그 보다도 훨씬 더 무서운 상황이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바리새 파 인들이 이 맹인이었던 자를 다시 물러 엄하게 물어보기 시작 합니다. 다시 심문을 시작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한 심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이미 내린 결론을 이 맹인이었던 자에게 강요합니다.

9:24절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이에 그들이 맹인이었던 사람을 두 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대놓고 예수님이 죄인임을 안다고 겁박을 주면서 시작 합니다. 자신들은 예수님을 죄인이라고 할것이니까 딴 소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미 너 부모도 굴복했으니까 너 혼자니까 까불지 말고 우리 말을 따라라 강요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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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더니 이 협박에 이 맹인이었던 자가 대답하기를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하는것 이었습니다.

이 말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죄인이지 아닌지 너희들과 내가 말로 싸워서는 질게 뻔하니까 입아프게 말싸움하지는 않겠지만 나 태어나면서부터 장님이었던 내 눈을 뜨게한 예수님 어떤 분이신지 나를 보고도 모르냐? 하는 말인것입니다.

그리고 이사람이 또 하는 말을 보시면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서슬이 퍼런 바리새파 사람들 앞에서 담대하게 예수님을 증언 하는것입니다.

자신의 부모도 자신을 모른척 할 만큼 무시무시한 분위기에서도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자신이 그나마도 먹고 살 수 있었던 공동체에서 쫓겨날 수도 있는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무서운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님을 죄인이라고 부르고 부인하라는 상황에서도 태어나면서부터 장님이었고 배운것도 없고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이 맹인이었던 사람이 너무나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 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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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인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에 대해 평생을 연구해 온 배운것도 많고 돈도 있을 만큼 있고 권력은 넘치도록 있는 세상에 있어서 율법에 있어서 통달할 대로 통달한 바리새파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신 역사 앞에서 눈뜬 장님이었고 배울래야 눈이 멀어 배울수도 없었고 구걸로 연명을 하던 가난한 자 비천한 자였던 이 맹인이었던 사내는 어떻게 죽음과 같이 무서운 바리새파인들의 협박 앞에서도 이토록 당당하고 또 지혜롭게 하나님을 담대하고 증거 할 수 있는것일까? 우리는 꼭 생각 해 봐야 합니다.

바리새파인들은 평생을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기도하고 율법을 행하는 훈련을 해 온 사람들입니다. 성경을 더 잘 알기위해서 탈무드와 같은 문학도 배우고 공부하고 고 차원적인 생각과 이해가 가능한 지식인들이었고 지성인들이었지만 이들이 평생 연구한것은 하나님에 대한 것이었지 하나님을 직접 경험하는 그 경험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비추어 볼 때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대해서 직접 이야기 하시는 그런 말씀을 찾고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것을 한 것이 아니라 살아서 나에게 지금 이순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깨달은 것이 아니라 법조문 외우듯이 법조문 적용 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했었기 때문에 육신을 입고 우리에게 오신 하나님을 도저히 알아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의 본문의 중심에서 하나님을 증거하고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이 맹인이었던 이 남자는 배운것도 없고 말씀에 대한 지식 하나 없었어도 자신에게 역사한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으로 알게 됨으로, 진리를 체험함으로, 죽음처럼 무서운 협박앞에서 모든것을 무릎쓰고서 하나님을 증거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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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체험한 그 체험이 이 맹인이었던 사내에게 담대함과 지혜와 용기를 주는 능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의 그 담대한 고백 앞에 바리새파인들이 말문이 막혀 제대로 대꾸하지 못하고 쫓아내보내고 말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정말로 진리를 체험한다는것은,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된다는 것은 우리에게 놀라운 능력을 주는 원동력입니다. 거짓으로 만들어진 세상에서 진리를 주장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그 기준마저도 흔들리는 이 세상에서 길을 보여주고 진리와 진실이 무엇인지 선포하게 하는 능력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그냥 책 보듯 보는것이 아니라 나에게 지금 이 순간 말씀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매일매일 말씀을 캐내고 또 증거하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이 얼마나 험악하고 옳고 그른것도 구별이 어려우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세상입니까? 지금 북한과의 관계도 전쟁으로 해결을 해야할 지, 북한이 주장하는 대로 평화조약을 체결해 주고 핵전쟁의 위기를 피해야 할 지 얼마나 많은 목소리들이 있습니까?

하지만 이 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사람들은 가야 할 바를 알 수 있습니다. 진리의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외에 길이 없는 진리를 따라 지금 이 세상에서도 따라야 할 진리의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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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도 자신이 죽기를 원하지 않고 자신의 정권을 뺏기기 싫어하기 때문에 우리가 조금 잘해주면 우리와 대화를 할 것이고 전쟁을 막을 수 있을것이다? 북한 정권은 전갈입니다, 이들이 어떠한 방법으로 자신의 백성들과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고 죽여왔는지 안다면 이들이야 말로 이 지구상에 살아있는 생지옥을 만들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적그리스도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들과의 싸움도 각오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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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을 신뢰해서는 안됩니다. 요한 일서에서 말씀하신 대로 “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이미 많은 적그리스도들이 일어났고 그중의 하나가 바로 북한 정권을 붙잡고 있는 세력 들입니다. 우리는 정말로 중요한 싸움을 눈 앞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 믿는자들의 믿음이 정말로 중요하리라 믿습니다.

 

9:13 그들이 전에 맹인이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

9:14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9:15 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가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를 물으니 이르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하니

9:16 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그들 중에 분쟁이 있었더니

9:17 이에 맹인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하니

9:18 유대인들이 그가 맹인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그 부모를 불러 묻되

9:19 이는 너희 말에 맹인으로 났다 하는 너희 아들이냐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해서 보느냐

9:20 그 부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우리 아들인 것과 맹인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9:21 그러나 지금 어떻게 해서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그에게 물어 보소서 그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9:22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함이러라

9:23 이러므로 그 부모가 말하기를 그가 장성하였으니 그에게 물어 보소서 하였더라

9:24 이에 그들이 맹인이었던 사람을 두 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9:25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9:26 그들이 이르되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

9:27 대답하되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

9:28 그들이 욕하여 이르되 너는 그의 제자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9:29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9:30 그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9:31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9:32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9:33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9:34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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