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3:15

3: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세상의 모든일이 그렇지만 처음 익숙하지 않아 우왕자왕하는 때보다 모든일이 익숙해져 지금까지 지내온 관성대로 살아가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은 때가 제일 위험한 법입니다.

부부관계도 수십년간 같이 살아와서 아내가 싫어하는 것은 자동으로 피하고 어떻게하면 아내에게 나의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지 너무 잘 알고 있을 때 문제가 시작 되듯이 말입니다.

신앙생활이라고 다르지는 않습니다. 처음에 하나님을 만나고 얻는 감동이 있습니다. 어마어마할 때도 있고 잔잔할 때도 있고 내 머리속의 나사가 전부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듯할 수 도 있고 각 사람마다 그 느낌은 다 각각이지만 하나님을 만난 우리 주님을 만난 그 기쁨은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그런데 이제 초신자티를 벗고 교회의 일꾼이 되어 갈 무렵부터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는 지도 알 것 같고 어느 정도 선에서 무엇을 피하면 되는지 알것 같은 때가 옵니다. 처음에는 이런것을 스스로 대견하게 여기기도 하고 무엇인가  발전한것 같은 느낌도 들지만 결국 이런 후에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지 못한다면 신앙의 침체가 찾아 옵니다.

이런 태도는 요나에게서 잘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요나를 통해 니느웨 백성들을 구하시려는 하나님의 의지를 간파한 요나는 니느웨에 파멸을 선포하고 동시에 회개를 촉구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않고 다시스로 피해갑니다. 그의 이러한 진짜 속 마음은 요나가 회개하라 선포한 후에 정말로 회개해 버린 니느웨 백성들을 벌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불만을 터트리는데에서 나타 납니다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그러니까 자신이 원했던것은 이 음란하고 타락한 니느웨백성들이 다 망해버렸으면 불벼락을 맞아 죽어버렸으면 하는 마음이었지만 하나님의 심정은 비록 심판을 선포하시지만 이 백성들의 회개와 속죄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는 화가 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원하던 것은 니느웨의 구원이 아니라 불벼락을 내리시는 하나님의 진노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이들을 구원으로 이끄실 테니까 자기가 도망가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선지자로는 완전 낙제인 그런 이야기를 요나가 지금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가 무엇을 이야기 합니까?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하다보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이 어떤지 너무 잘 알게 되어도 그 뜻을 따르지 않을 수 있는것이 바로 인간이고 그런것이 바로 뜨지도 차지도 않아 하나님께 버림받는 그런 모슴의 성도들과 일맥 상통한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내 맘 들여다 보듯이 알면 뭐합니까?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뜻을 정말 기가막히게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말씀을 듣는것 뿐 아니라 하나님의 속 마음까지 알 정도였으니 대단한 선지였음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순종의 심령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인터넷의 등장으로 매일매일 기가막히게 좋은 설교들은 쏟아져나오고 이를 듣는 우리들의 귀의 수준은 높아져만 갑니다. 하나님의 뜻을 성경을 기가막히게 가르쳐 주시는 수많은 사역자들이 있고 이를 듣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과연 이 들은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지는 심각한 질문이 됩니다. 서로 사랑합니까?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습니까? 순결한 주님의 신부이십니까? 예수님만 바라보시면서 살고 있습니까?

또 그 뿐 입니까?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기 위해 우리는 우리를 돌아 보고 있습니까? 언론에서 여론몰이해서 광장으로 우와 몰려 나가는 그런 값싼 정의 말고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정의를 위해 무엇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과연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구원에 대해 얼마나 진지합니까? 과연 주님께서 씻어주신 나의 죄의 거대함을 우리는 정말 깨닫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속에는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 있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그래서 언제나 새롭고 언제나 우리로 뛰어가게 하는 그런 생명의 변화가 있습니다.

만약 내가 지금 요나와 같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그 분의 뜻을 행해 한 발자욱을 더 내딛고 있지 않다면 그 분의 뜻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다면 지금이 바로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갈 때입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다시 돌아갈 때입니다. 요나처럼 끌려서 돌아가지 말고 내 발로 주님께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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