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려 오는 도둑과 살리는 목자

10: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10:2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10: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10:4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10: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오늘의 본문인 요한복음 10장 1절에서 오절까지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양 우리가 어떤식으로 생겼고 어떻게 사용되었는가를 안다면 더 이해가 잘 되는 본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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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서는 어떤경우 마을의 양을 모두모아 한 우리에서 키우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돌로 만든 울타리가 있고 그 우리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하나만 있는 아주 심플한 구조의 이런 우리를 이용한 이유는 먼저 우리를 만들 여유가 없는 많은 사람들도 양을 키울수 있었고 또 다같이 우리를 하나만 운영하니까 비용의 절감이 크고 또 양을 노리는 야생 동물이나 도둑들로부터 튼튼한 우리를 다같이 만들 수 있으니 훨씬 안전하고 튼튼한 우리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특이한 점은 이 우리를 지키는 문지기를 두어서 우리와 양떼를 보호하는 일을 맡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양치기가 풀을 먹이러 들로 산으로 나가지 않았을 때는 양들을 이 우리에 두고 보호를 하는데 그 때는 문지기가 양들을 지키는 책임을 졌다는 것입니다.

이 우리는 말씀드린대로 공동으로 양을 관리 하기 때문에 이 집양과 저 집양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양들을 구별하는 것은 오직 양치기가 왔을 때 이 양치기의 목소리를 알아 듣는 양들이 어떤 양들인가로 구별을 했던 것입니다. 남들이 볼 때는 절대 구별이 안되지만 자기 양치기가 와서 소리를 내면 자기 양들을 부르면 양들이 그 목소리를 따라 갔던 것입니다. 이 집 양과 저 집 양이 다 섞여 있지만 자기를 돌보는 양치기의 목소리를 알아보고 또 자기 양을 알아보는 양치기는 고대 이스라엘에서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 못지 않게 흔한것이 있었으니 이것은 이 양의 우리를 넘어서 양을 서리해 가는 도둑들이었습니다. 이 우리의 유일한 문은 문지기가 잘 잠가 놨으니 문으로는 들어 오지 못하고 문지기가 잠에 빠졌거나 자리를 비웠을 때 담을 넘어서 우리로 들어가서 양을 서리해 가던 도둑들은 역시 이스라엘에서 낯선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배경을 보시고 오늘의 본문을 살펴 보시면 우리 주님께서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지 더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도둑과 목자에 관한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자연 환경은 그다지 친절하지 않습니다 모래바람불고 태울듯이 더운 낯과 서리가 서릴 정도로 추운 밤이 사람을 괴롭히는 험한 곳 입니다. 그런곳에서 양과 같은 가축은 아주 귀한 재산이고 양식이고 양식원입니다. 그러니 그런 양을 훔쳐가는 도둑은 정말 문제였고 골칫거리였습니다. 한 가정을 파괴할 수도 있는 그 시대 이스라엘에서는 아주 지독한 범죄였구 말입니다.

그런점을 생각해 보시면 오늘 우리 주님께서 양도둑에 대한 비유를 하신것은 정말 심각한 범죄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양도둑에 해당하는 아주 심한 일들에 대한 비유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전통에 따르면 언제나 양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비유하는 말임을 생각해 본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을 도둑이 양을 훔치듯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길로부터 도둑질해가는 인종들에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백성을 훔치려는 시도는 우리 주님이 오신 이후로 언제나처럼 있어 왔습니다. 바리새파인들이 그 하나이고 영지주의 이단들이 그 하나이고 그리고 현대의 수 많은 이단들이 또 다른 그 하나일 것입니다. 그리고 현대에 와서는 단순히 이단들만이 아니고 물질주의 적인 사상과 과학을 종교의 위치에 놓는 새로운 종교적인 과학에 대한 신봉등도 이런 이단과 같은 하나의 종교입니다. 또 어떤 사상이 제공하는 이상사회에 대한 맹목적인 추구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삶을 살게도 합니다. 대표적인것이 공산주의가 있습니다.

 

이 들이 주장하는 그 주장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그다지 나쁜 이야기들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 좋은 말들입니다. 일면 성경의 진리를 가져다 쓰기도 합니다 또 성경을 자신들의 경전으로 쓰기도 합니다. 이들의 주장에는 사람들이 듣다보면 혹할 만한 내용들도 있습니다. 이들이 주로 말하는것은 깨달음과 진리에 대한 바른 지식이 없으면 너희는 구원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자신들이 이야기하는대로 풀어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여튼 이런 이단들이 얼마나 성업중인지 우리 나라의 이단종파 명단에 나온 이단들의 종류를 세는데 제가 500여개 까지 세다가 포기했습니다. 이단회당수가 아니라 교단수가 500개 쯤 된다는 이야깁니다. 그러니 회당수는 수천 수만이 넘을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말을 해도 이들에게 진리가 없는 것이 분명한데 왜 이렇게 성행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저는 똑같은 의문을 이번에 천만관객이 넘게 보았다는 신과함께라는 영화에서도 가집니다. 그 영화에서 다루는 사후세계는 무속신앙 즉 무당들이 말하는 사후세계의 구조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구조에 우리가 보았을 때 이해가 쉽게 되는 설명들을 첨가했다고 합니다. 제작비가 많이드는 블록버스터의 경우 이해가 어려운 구조의 이야기를 하면 흥행이 안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위험은 애초에 차단한다고 합니다. 누구나 봐도 이해가 되고 말이 되는 이야기로  설명이 필요없는 영화를 만들겠다는것이 블록버스터 영화의 가장 중요한 제작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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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과연 우리가 이해하기 쉽다는 것이 누가 봐도 이래야 한다라는 것이 진리에 가까운것일까요?

제가 대학원 다닐때 같이 성경공부하던 친구중에 하나님을 늦게 밎게 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 말하기를 하나님을 믿는데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은 제일 먼저 자신이 죄인인것을 인정하는 것이었다라고 했습니다. 자기는 학교를 다닐 때도 선생님한테도 야단 한 번 맞은적 없고 부모님한테 그랬고 세상을 살 때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는데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고 하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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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가 믿는 성경과 기독교의 제일 큰 진리가 우리는 죄인이고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 죄인들이 믿음으로 구원받을 길이 생겼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진리가 이해가 쉽게가는 진리인가요? 이해하기가 절대로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죄많은 죄인들인 인간들의 마음 속에는 착한일하면 천국가고 나쁜일하면 지옥가고 하는 행위의 법을 믿는것이 새겨져 있고 또 그 가운데 자신은 이런이런 이유로 절대로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떻게 자신이 죄인이 아니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간단합니다.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이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고 자신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이 이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이 나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을 따른다면 감히 자신의 죄가 없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 뿐 아니라 우리의 속 마음도 감찰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품었던 미움 증오 분노 원망 욕심 거짓 탐욕 음란과 살인의 모든 충동도 하나님앞에서 우리를 죄인으로 만드는 죄입니다. 그런데 우리 중 누가 이 모든 죄와 죄된 생각으로부터 자유 로울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생각 하기를 내가 이런것은 실수 했지만 이런 점을 잘 하니까 나는 괜찮아 나는 나쁜 사람은 아니야 라고 생각 합니다. 이를 테면 나는 도둑질을 한 실수는 있지만 사람목숨을 구한적이 있으니까 괜찮아 라는 식의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한 발 더 나가서 그러니까 내가 최고로 좋은 사람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저 인간보다는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 라고 생각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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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해가 되고 말이 되고 게다가 이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적어도 내가 이런이런 점 으로 인해 적어도 나쁜인간은 아니라고 평가 받을수 있어야만 할것 같은 확신이 들고 이 점에 있어서는 하나님도 예외가 되서는 안됩니다. 하나님도 나보고 나쁜 사람이라고 해선 안됩니다. 왜? 내가 잘못한 점이 잇는것은 맞지만 적어도 불우이웃돕기 성금도 냈고 이웃에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반찬도 해다주고 그 집 아이들도 가끔 거둬 먹였고 또 어려운 친척 아이들 등록금도 남들도 모르게! 도와준 적이 있는 좋은일도 많이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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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 주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 하십니까? 문으로 들어오지 않은 자들은 다 도둑이라고 하시지 않습니까?

문으로 들어 오지 않는다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이 후에 나올 요한복음 10장 7절에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양의 문이 되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양 우리에는 언제나 문은 단 하나이듯이 유일한 문이 되시는 분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오직 주님만이 이 유일한 문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주님으로 나지 않은 것,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지 않은 것들은 다 이 도적과 같은 것들 우리의 생명을 해하는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즉 아무리 내가 생각하기에 옳고 정의롭고 멋지고 간지나도 우리 주님으로부터 나온것이 아니라면 나의 생명을 뺏어가고 도적질해 가는 악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리 내가 생각 할 때 내가 적어도 나쁜 사람은 아니고 적어도 저 인간 보다는 내가 낳아라고 생각하면 그건 확실하게 당신이 죄인이라는 반증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기준이 아닌 당신의 생각과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 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기준을 떠나는 순간 파멸의 길로 들어 갑니다. 지금 미국에서 동성애를 인정하고 성소수자를 인정하고 난 후 즉 동성애인의 결혼을 허락하고 성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겠다고 한 후 어떤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정해 주신 남과여라는 성정인 정의를 떠나서 자기가 스스로 성 정체성을 정할 수 있다고 하니까 지금은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중간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고 이런 사람들을 위한 공공 화장실을 설치해야 마나 논쟁 중입니다. 그러는 와중에 성정체성이 여자라 주장하는 남성이 여자 화장실과 탈의실을 들락 거리다가 성 범죄를 저질러 문제가 되기도 하고 있습니다.

그 뿐 입니까? 성소수자라는 개념을 받아 들이니, 지금은 동성애자 뿐 아니라 어린이를 사랑하는 소아성애자들도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고 이를 막아내기가 점점 어려워 지는 상황입니다. 그것 뿐이 아니라 짐승을 사랑한다며 자기가 키우는 개와 결혼을 정식으로 인정을 해 달라는 사람들도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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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습니까? 인간이 가진 이성으로는 성의 정체성과 사랑과 결혼의 정의와 같은 근본적이고 기본적인것도 정의 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생각할 때는 이렇게 정의하고 저 사람이 생각 할 때는 이렇게 정의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인간이 제대로 판단 할 수 있는 선악의 문제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것이 오늘 말씀에 나온 문을 통하여 들어오지 않고 다른데로 넘어가는 자들의 생각이며 또 믿음입니다. 게다가 주님을 통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가르키고 설파하는 자들을 이야기 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주님의 시대에는 바리새 파 인들이 이런 류의 인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성적으로 타락하고 사상적으로 해체적인 현대의 문제들과는 달리 정 반대의 방향으로 하나님을 떠나 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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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들이 믿던 모세 오경의 율법을 더욱더 분명히 하기 위해 자신들이 만든 법으로 치장해 수없이 많은 규례와 율법으로 사람들을 옭아매고 또 자신들이 정한 규범을 따르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 주장하는 경건 주의자 율법 주의자 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안식일에 병자의 손을 고치고 맹인의 눈을 뜨게하신 예수님을 죄인이라고 심지어는 기소까지 하고야 마는 위선의 극치를 달리는 인간들이 바로 바리새파인들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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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번째 말씀 드리지만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명령은 성경에 있지만 안식일에는 꼼짝도 말고 아무일이라도 하지 말라는 율법은 성경에 없습니다. 더더군다나 생명을 살리는 일을 안식일에 금하는 일은 말할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방법으로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율법을 만들었고 백성들을 이 율법으로 옭아매고 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율법 역시 이를 지키기만 하면 율법적으로 깨끗한 사람이 되어 스스로 의로운 자가 된다고 생각한 점에서는 다른 여타 이단들과 크게 다를 점은 없습니다. 다만 훨씬 더 정교하고 또 성경을 철저히 연구해서 스스로의 권위가 더 크게 쌓여있었다는 점을 빼고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정말로 크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또 권력을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생각을 조직적으로 구성하고 표현하고 그를 실천에 옮기는 방법까지도 고안했기 때문에 일면 이들에 율법이 정말 법과 같은 힘을 발휘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여기서 정말 놀라운 말씀을 하시는 데 이렇게 아무리 그럴듯해 보이는 소리를 하고 주님의 자녀들을 이들이 유혹하고 협박해도 하나님의 자녀들은 절대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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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자녀들이 귀를 기울이는 목소리는 오직 우리 주님의 목소리 양의 문을 통과해서 우리를 부르려 걸어오시는  그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선한 목자이신 우리 주님만이 그 양떼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지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새해 첫날을 맞아 북한의 김정은이 대화의 제스쳐를 표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한미 군사 훈련을 중단할 것을 대화의 조건으로 내걸고 한 말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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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정세가 정말 한 치앞을 보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전쟁이 지금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인데 어떻게 보면 북한의 이러한 대화제의가 반가울 수 도 있습니다. 전쟁이 아니라 대화로 외교로 이 어려운 국면을 해결할 가능성을 높여주는 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말 이 순간 우리가 구별해야 할 것은 이 북한의 김정은의 목소리가 담을 넘어 들어오는 도둑의 목소리인지 아니면 양의 문을 건너온 주님을 통하여 온 목소리인지 구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듣기에 아무리 그럴듯 해 보여도 주님을 통해온 자들이 아니라면 이들의 목적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미 북한은 6.25를 통해 우리를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하는 것을 실천에 옮겼던 그래서 수 백만명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던 우리의 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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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좋아하는 이야기가 6.25는 강대국의 대리전이었다하는 이야기 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김일성이 직접 스탈린을 만나 전쟁의 허락을 받아내고 무기를 얻어낸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김일성이 스탈린의 야욕을 이용해 전쟁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 때 미국은 우리나라를 지켜 주고자 가장 먼저 군대를 파견 했고 자신들의 젊은 청년 삼만오천명의 생명을 바쳐가며 우리를 지켜 줬습니다. 그 이후에 우리에 대한 경제 원조와 또 국제 무대에서 우리가 자립 할 수 있도록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교육 시켜주고 도와 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신뢰하고 또 다른 도움을 주었던 많은 나라들 독일과 일본과 같은 나라들도 우리 뒤에 미국이 있으니까 그런 도움을 줬다는 사실 부정 할 수 없습니다.

오늘자 뉴욕 타임즈는 북한 김정은의 제화 제의를 어떤식으로든 받아들이게 된다면 이것은 한국과 미국 사이에 쐐기를 박는 일이 될것이라는 기사를 내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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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정말로 이 김정은이의 대화제의의 목소리가 도둑의 목소리인지 아닌지 구별해야 할 때 입니다. 그리고 분명히 말씀 드리지만 북한의 정체는 이미 밝혀져 더 밝힐것이 없는 악한 정권 그 자체입니다. 우리를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 하는 것들이지 절대로 우리를 살리는 목소리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오늘 이 말씀으로 분명하게 도둑을 경고해 주십니다. 믿을것은 오직 예수 매달릴 분도 오직 예수 입니다. 이런 흉폭한 북한괴뢰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말고 주님의 말씀을 통해 받은 분별로 악을 분별 하시고 내 귀에 그럴듯한 이야기를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말씀만을 쫓아가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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