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과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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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11:26)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신 11:27)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신 11:28)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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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살펴 볼 말씀은 신명기 말씀입니다. 특별히 모세가 이제 가나안으로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꼭 지켜라는 신신 당부를 하고 있는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의 내용은 좀 무섭 습니다.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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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복을 말씀하시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저주라고 하시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이 아닙니까? 아무리 하나님이셔도 좀 심하지 않으십니까? 의문을 가질만한 말씀 입니다. 좋은 것들도 많고 많은데 왜 하필 저주 운운 하시는지, 아마 성격 더러운 모세가 하나님 말씀을 잘 못 전할걸것이라고 위안을 삼으려고 하지만 강직한 모세가 하나님 말씀을 자기 멋대로 전했을리 만무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저주를 내리겠다 는 협박을 하시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단지 생명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 그중에서도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면 살 것이고 그렇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다면 생명으로 부터 떨어져 나와 이 저주받은 세상에 속하게 되고 그것이 우리에게 저주 자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축복의 반대는 비축복이 아니라 저주라는 이야기이고 하나님 말씀을 지키지 않는 자들은 저주받을 자라는 아주 강한 말씀 이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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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말씀을 전하신 분이 모세이고 그 말씀을 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에도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에서 억울한 느낌도 나고 변명 거리도 생각 납니다. 그렇게 잘난 하나님 믿는 사람들중에도 안 믿는 사람만도 못하고 아니 인간만도 못한 작자들도 많고 또 안 믿는 사람들 중에도 선하디 선한 사람 훌륭한 사람도 많던데 그럼 그런 사람들이 저주를 받는다는 말입니까? 하고 말입니다. 얼마나 교회가 하나님믿는사람들이 요즘 욕을 먹고 다니는지 아시냐 하고 댓거리를 달고 싶어 집니다.

그러니까 진리의 반대는 비진리가 아니라 저주이고, 생명의 반대는 비생명이 아니라 저주이며 구원의 반대는 당연히 저주라는 식의 이분법적인 사고가 얼마나 현재와 어울리지 않고 시대에 뒤떨어지는 사고인지 꼭 이야기 해 주고 싶어서 몸이 뒤틀릴 정도가 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런것일까요?  과연 이렇게 축복의 반대는 저주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극단적인 일인지 오늘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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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인간이 존귀하다고 생각 합니다. 성경에 적혀 있기를 인간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의미에서 기독교인들은 인간의 본질이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생가하는 본질론적인 접근으로 인간을 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누구나 인간의 존엄성은 인정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정말 살펴보면 꼭 그런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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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만약 태아를 존엄성을 지니는 인간으로 인정 한다고 한다면 매우 특수한 경우 즉 산모를 살리기 위해 태아를 포기하는 등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태아를 유산시킨다거나 아니면 어떤 과학적 연구를 위해 대량으로 살상하는 등의 일을 인정할수가 없습니다. 이런일은 오직 태아를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을 때에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니 마구 죽여도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법적인 책임도 도덕적인 비난도 피할 수 있다고 생각 하는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듯이 낙태도 빈번히 일어나는 엄연한 현실이고 태아를 대량으로 연구에 사용하고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물론 보수적인 기독교계는 치열하다는 말이 어울릴정도로 낙태 반대를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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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태아를 놓고서 한 쪽은 인간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한 쪽은 인간이다라고 생각하며 절대로 양보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인간을 어떻게 정의 하는가 하는 어찌보면 추상적인 주제에 대한 믿음이 실제로 세상에서 힘을 가지고 드러날 때는 매우 극단적인 태아를 유산 시키는 수준의 행위를 넘어 말씀 드린대로 대규모로 태아를 과학연구에 이용하는 등의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과학이 발전 함에 따라 대량의 태아가 연구에 필요하지 않은 방법들도 개발돠고는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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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렇게 극단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을까? 이런 극단적인 차이가 어떻게 가능할 까? 태아를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는 근거를 보면 또 이들이 취하고 있는 기능적인 접근을 보면 이해가 될것 입니다. 태아를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인간의 권리 인권을 인정합니다 단 태아의 경우는 인간이 인간이 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직 인간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고 방식을 대표하는 플레쳐와 같은 사람은 인간을 규정하는 네가지 성향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것은 먼저 대뇌의 뇌신피질의 형성과 기능, 자신을 의식할 수 있는 자기 인식, 자신과 외부를 연계해 인지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능력. 이런 기능적인 목록중에 하나라도 가능하지 않다면 그건 인간이 아니라는 주장을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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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금방 생각해 보더라도 이런 기준으로 잠자는 인간을 바라본다면 그 사람이 인간이기 어려우며 또 이 기준을 통과할 돌고래와 유인원들도 있을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 보다도 이러한 관점은 아무리 정교하게 기준을 다듬는단고 하여도 인간을 단순한 기능들의 조합으로 인식하고 있는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이런 기능들의 합이 인간이 아니라는 이야기 입니다. 통일성을 가진 전체로의 인간은 부분의 합, 기능의 합보다는 크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태아는 인간이 아닙니다 단지 세포덩어리 단백질 덩어리일 뿐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일 수 있고 죽여서 다른 용도로 쓸 수도 있다고 믿고 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막연히 생각할때 누구나 다 당연히 생각하고 인정하는 진리같은 이야기들도 전혀 그렇지 않다고 믿는 생각들이 존재하고 그 생각들로 기능하는 세상이 있고 그런 세상이 기능하는것은 하나님중심의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과 삶과는 완전히 다른 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에게 태아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인간이 시작되는 모습이고 이 안에는 결국 성장한 사람의 모습을 갖추기위해 통일성을 지닌채 결론적으로 변해가는 인간의 모든 특질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 저의 생각과 이 태아가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과는 거리가 너무나 큽니다.

그리고 이런 태아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설교단에서 또 거리에서 또 어디에서나 외치는 이의 목소리와 이런 태아의 생명을 갈아 시료를 만드는 사람의 손길에는 어마어마한 거리가 있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나타 납니까? 바로 믿는 바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마치 저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려나 착각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과 우리 사이에는 너무나 먼 거리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신명기에서 말씀 하시는 축복과 저주사이의 거리입니다. 우리 믿는자들에게 확고한 기준이 되어 주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그 생명의 말씀이 없는 사람들 그들에게는 어떤일이라도 가능한 일이고 어떤일이라도 우리가 행하고 즐기고 누릴 수 있는 수많은 일들중 하나일 뿐 이지만 우리는 분명하고도 분명하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과 행해서도 안되고 생각해서도 안되는 분명한 생명의 기준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 거리는 우리가 같이 인두겁을 쓰고 숨쉬고 웃고 떠들며 돌아다니기 때문에 보이지 않기만 할 뿐 도무지 같아질 수 없는 영원의 거리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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