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어떻게 남편이 아내의 육신의 구세주인가? (에베소서 5:22-33)

오늘의 본문은 아주 큰 신학적인 딜레마를 안겨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우주적 교회 즉 유니버셜 처치를 설명하던 본문이

 

갑자기 이 이상적이고 신비적인 교회의 원형적 개념을, 바로 이 지구상에 존재하며 활발히 실행되고 있는 인간의 제도, 즉 결혼과 비교를 하는 것입니다.

 

완벽하며 이상적인 교회와 지구상에 실체가 있는 실제로의 결혼을 비교하는 것은,

 

그러니까 완벽한 이상으로의 개념으로의 교회를 설명하다가, 그것을 어찌보면 누구나 누리고 있는 결혼 생활에 비유를 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설명하던 이 교회가 이상적이고 추상적인 우주적인 개념으로의 교회가 아닌 실제적인 지상교회를 설명하는 것이거나,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결혼이 이 완벽한 교회,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필적할 만큼의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던지, 아니면 이 둘 다던지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잘 생각해 보시면 이런 얘기가 됩니다.

 

신적이고 거룩하고 하나님적인 이상적인 유니버셜 처치와 건강하고 정상적인 남자와 여자라면 어느정도 나이가 차면 누구나 다 누리는 어찌보면 평범한 결혼이

 

서로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신적이고 거룩하고 하나님적인 무엇인가가 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 결혼이 단순한 인간의 제도가 아닌 거룩한 것이라는 이해가 가능하다라는 것입니다.

 

결혼이 어떻게 거룩할 수 있습니까? 인간이 죄인들인데 죄인 둘이 모여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습니까? 이렇게 반문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적고 있는 것은 이 죄인인 우리의 모습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거룩한 존재임을 역시 증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이야기지만

 

우리의 모습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계십니다.

 

우리는 거룩한 존재입니다. 존엄하게 지어진 존재 들이며 영적인 존재들입니다.

 

그런 존재들의 결합인 결혼은 이렇게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하게 거룩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습니까? 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모든 결혼이 성공한 결혼입니까? 지금도 위태로운 결혼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게다가 실패한 결혼으로 고통 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어떻게 이런 거룩한 비유를 한다는 말입니까?

 

그렇다면 교회와 주님과의 관계를 결혼에 비유하는것은 무리가 있는것이 아닌가 하는 말씀 입니다.

 

게다가 본문을 죽 읽어보면 어찌보면 남성에게는 매우 유리하고 여성에게는 매우 불리한 그런 내용을 담고 있는 것처럼도 보입니다.

 

여성에게 남편에게 주님께 대하듯 순종하라고 하고 계시니까요.

 

이건 명백한 성차별적인 발언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매우 많으실 것입니다. 남자인 저도 사실 하나님 여자들한테 너무 하신것 아니십니까? 물어볼 정도로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에베소서 1장부터 지금까지 주욱 과연 교회란 무엇인가 구원이란 무엇인가? 성화란 무엇인가를 집요하게 물어오고 답하시던 본문의 흐름을 떠나 이 구절만을 따로 떼어서 볼 때 생기는 의문입니다.

 

우리가 정말 의미 심장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은

 

오늘의 본문을

 

첫 째 우리는 성화의 과정의 연장선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과

두 째 우리는 이 본문을 또한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떠나서 본문을 보기 시작하면 우리는 헤어나올 수 없는 의심과 의문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 오늘의 본문을 성화의 관점으로 보기 위해서는 우리는 지난 시간 어떻게 에베소서가 우리에게 성화를 가르쳤는지 기억해 봐야 합니다.

 

지난주의 본문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엡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엡 5: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엡 5: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엡 5: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이 본문이 뜻하는 바는 성령의 충만의 결과 영안을 뜨고 사는 성장의 삶 성화의 삶의 단계를 뜻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즉 영안을 뜨고,

 

자신의 말과 행동을 영적으로 분별하고 다스리고 살면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를 얻게 되고, 이를 헛되이 낭비하지 아니하고 모든 가능성을 사용하게 되면, 그 때 성령의 충만을 얻게 되고

 

그의 결과가

 

찬송과

 

감사와

 

서로간에 대한 복종으로 나타난다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충만의 결과, 영적 성숙의 열매로 본문이 무엇을 들고 있는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찬송과 감사와 순종입니다.

 

그 중에 가장 마지막에 오는, 가장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들만이 얻을 수 있는것이 무엇입니까?

 

순종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순종

 

우리 주님을 향한 순종

 

그리고 교회의 권위에 대한 거룩한 순종만이 아닌,

 

이것을 넘어서는 찬송과 감사로 서로에게 순종하는 그 순종을 바울 사도께서는 영적 성장의 가장 마지막 단계로 놓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 마음속에 거룩을 향한 열망이 용광로처럼 펄펄 끓어오르고

 

복음을 선포하려는 열망이 나를 잠을 못 이루게 하고 복음을 받는 사람이 없으면 장독대에라도 복음을 선포하는 거룩한 열망에 불타는 자라도

 

그의 삶 속에 서로를 향한 순종이 없다면 아직 어린 자요 성장해야 할 자요 하나님 앞에 아직도 가야할 길 이 멀고 먼 자라는 것입니다.

 

이 성도간의 서로간의 순종이,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신령한 찬송보다도, 범사에 어느 경우에도 드리는 감사 보다도 더 높고 귀한 것 이라는 것이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지금도 전해 주시는 가르치심 이십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순종입니까?

 

아무에게나 아무말이나 다 들어 주는 것이 순종입니까? 내 맘에 들지 않아도 억지로 참으면서 남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순종입니까?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순종으로 여기서 쓰인 원어는 ὑποτάσσω 후포타쏘로 하나님의 질서 밑으로 들어간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뜻하신대로 따라 간다는 것 그것이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좁은 의미로는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만물이 따르듯 우리도 그래야 한다는 것이고

 

넓은 의미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 살아가는 성도의 삶을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서로에게 순종하라고 하신 것은

 

성도간에 눈으로 보이는 육신의 흠 즉 인간적인 잘못을 보는것이 아니라

 

저 형제와 이 자매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보고 알아 하나님께서 저에게 역사하심을 명심하고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고 그와 합력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라는 뜻 입니다.

 

그 귀한 하나님의 질서로 들어가는 데에 이 순종이 필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이 가장 어렵고 가장 귀하며 가장 나중에 드러나는 성도의 열매로 에베소서는 말씀 하신 것입니다.

 

순종이 그만큼 귀한 것입니다. 즉 성화의 끝에서 빛나는 것이 바로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그런의미에서 우리는 본문이 이 순종을 설명 하시자 마자 아내들에게 자기 남편에 대한 순종을 말씀하시는 것이 저는 매우 의미 심장하다고 생각 합니다.

 

그냥 생각 해 보면 순종이라는 것이 그렇게나 귀한 열매에 해당한다면 이 열매를 맺기에 합당한 사람은 아내들이라기 보다는

 

본문에서 아내들의 육신의 구주로 비유되는 그래서 예수님과 비유가 되고 있는 남성들이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간단하게 남성의 역활은 예수님의 역활에 비견하니까 남성의 지체가 여성보다 무조건 높고 그러니까 좋은것은 다 남자가 받아라 하지 않으십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성경은 오늘 보시는 대로 가장 귀한 성령의 열매에 해당하는 순종을 예수님에 비유되는 남성들이 아니라 여성들에게 맡기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이 이야기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는 열매를 맺는 자들이지 지체가 높거나 지위가 탁월한 자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바울 사도가 순종을 턱하니 아내들에게 맡긴것은 절대로 여성들의 위치가 남편들보다 낮아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 일 확률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열매가 있는자가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높은자이고 가장 높은 열매가 에베소서는 순종이라고 적고 있으니까요.

 

즉 성화의 과정에서 성도의 삶속에서 이 순종의 열매를 맺기에 더 근접한 여성들에게 말씀이 순종을 부탁 하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성들이 더 영적으로 깨어있고 더 많이 열심히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열매를 맺고있으니까 이들에게 그들에게 어울리는 과제 즉 순종을 맡기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생각하면 우리 주님께서 세상에 섬김을 받으러 오셨습니까? 섬기러 오셨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순종을 우리에게 강요하러 오셨습니까? 하나님께 순종하러 오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러 오셨습니다.

 

그러면 순종하는 사람이 더 주님을 닮은 사람입니까? 아니면 순종을 받아서 섬겨지는 사람이 더 주님을 닮은 사람입니까?

 

당연히 순종하고 섬기는 사람이 예수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까?

 

에베소서는 여성을 더 성화에 근접한것으로 보고 더 귀한 일을 맡기신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성화의 관점에서 오늘의 본문을 접근해 가는 것입니다. 여성이 남성보다 밑에 있어서 순종을 하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을 이런 성화로의 관점에서만 보면 절대적으로 중요한 성경의 메세지를 놓치게 됩니다.

 

그러니까 여성이 더 영적이고 더 성령의 열매인 순종의 열매를 잘 맺는 귀한 존재임을 아는 것 만으로는 본문이 제시하는 큰 그림을 놓치게 됩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이 관점에만 집착하면 도대체 어떻게 나의 남편이 예수님께서 교회의 머리이시듯 아내의 육신의 구주가 되는지 알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보다 더 나은 것 같은데 어떻게 남편이 아내의 육신의 구주가 되신다는 것입니까?

 

이 말씀을 알기 위해 필요한 것, 그것은 바로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보는 오늘의 본문인것입니다.

 

구속사적인 관점이라고 하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태초부터 세우고 계신 모든 계획을 통틀어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또 좁게 생각하면 우리 주님께서 인간을 죄악에서 구원하시고자 이 땅에 오시고

 

복음을 가르치시고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이시고

 

부활하시고 승천 하시며 세상을 심판하러 다시 오시는 주님의 사역을 말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저는 먼저 넓은 관점에서의 구속사 적인 관점을 가지고 본문을 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드시고 이브를 만드시기 전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 2:18”

 

여기서 말씀 하시는 돕는 배필이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하와를 이야기하는 것이고 또 여자, 아내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돕는 배필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 하셨는데 도대체 무엇을 돕는다는 것일까요?

 

집에서 살림하면서 남편을 도우라고 하시는 말씀이신가요? 내조 잘 하면서 남편의 기를 살려 가면서 가정을 잘 꾸리라고 이런 말씀 하셨을까요?

 

저는 말씀 드린대로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이 말씀을 보기를 원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사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행하시고 계획하신 모든 것을 말하고 하나님의 가장 큰 관심이 우리 죄인들의 구원에 있다는 관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여성을 만들면서 가장 큰 관심을 두셨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인간의 구원입니다.

그렇다면 돕는 배필이 돕는것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아담, 남편의 구원을 돕기 위한 배필이 바로 여성, 아내들이라는 것입니다.

 

그게 아니고는 하나님께서 아내들을 만드실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사랑은 오로지 인간들을 향하고 계시기 때문에 인간의 구원을 떠난 계획을 하실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즉 불완전한 첫 번째 인간 아담, 남자들의 구원을 돕기 위한 배필로 만드신 것이 바로 여자, 아내들이라는 것 입니다.

 

그리고 이런 하나님의 계획은 여자의 몸을 통해 출산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완성이 되어지고 또 우리 각자 각자 여성들을 통해 아직도 이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여성들에게 순종을 강조하셨는지 조금씩 이해가 갑니다.

 

그것은 남편들의 구원을 돕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성들에게 영적으로 먼저 진보하게 만드시고, 그들로 성령의 열매 순종을 맺게 하시고,  그로 인해 남편의 구원을 돕게 하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순종은 맹목적인 복종과는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아래로 들어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성경의 순종입니다.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상대를 사랑해 주고 존중해 주고 위해 주고 그가 원하는 바를 들어 주는 것 이것이 순종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고 섬기면 그 남편이 변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아내가 섬기며 기도를 한다면 그 남편이 구원에 결국에 이르지 않겠습니까?

 

만약에 그렇게 섬기고 사랑해 주고 이뻐해 주고 기도해 줄 때 영 죽을 나의 남편이 구원에 이르게 된다면 여러분들은 남편에게 순종 하시겠습니까? 안 순종 하시겠습니까?

 

저 영혼을 살리기 위해 하나님께서 특별히 여성들에게 더 허락 하신 성령의 열매 순종의 능력을 발휘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나에게 허락된 순종의 능력을 발휘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의 구원을 완성하도록 도울 것입니다.

 

그것을 사랑 많은 여성들의 본성으로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새겨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래도 아직 질문이 남는 것이 어떻게 이 남편이 아내의 육신의 구주가 되냐는 것입니다.

 

방금 우리는 남편의 구원을 위한 돕는 배필이 아내들이라고 했습니다.

 

이에 반해 남편들은 구원을 위한 도움이 필요한 그런 존재들이라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아내들은 자신의 구원을 위한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존재들인가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아내들이 구원을 위한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면 굳이 성경이 남편들에게 아내를 사랑하라 라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도 주님께서 교회를 사랑 하시 듯 아내를 사랑하라고 말씀입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성경이, 말씀이 구원에 필요하지 않은 일을 우리에게 행하라고 명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편들의 아내 사랑은 단순히 도덕적인 명령을 넘어 구속사적인 의미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신것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오늘의 본문은 적고 있습니까? 바로 교회를 깨끗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고 영광스럽게 하셨다고 적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남편들이 아내를 주님처럼 사랑하면 어떤 결과가 생기겠습니까?

 

아내를 흠이 없게 하고 거룩하게 하고 영광스럽게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내의 순결과 거룩과 영광은 남편이 아내를 사랑할 때 아내에게 주어진다는 것이고

 

그 남편의 아내 사랑은 예수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사랑과 본질상 같은 것 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교회 사랑이 교회의 구원을 위한 것이듯 남편의 아내 사랑도 아내의 구원을 위한 것 이어야 하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랑은 나의 아내가 내 눈에 좋게보이고 이쁘게 보여서 사랑하는 반응적인 사랑을 이야기 하는것이 아닙니다.

 

이 사랑은 주님의 사랑과 같이 희생을 전제로 하는 사랑입니다.

 

주님께서 교회를 위해 모든 것을 주셨 듯 남편도 아내를 위해 드려야 한다는 말씀 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아내들의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내들이 남편을 순종함으로 섬길 때 남편들의 구원에 도움이 되듯 남편들의 희생을 통한 아내 사랑이 아내들의 구원에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사랑을 남편의 희생을 통해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만드신 덕에 지금도 남편들은 뼈빠지게 밖에서 일하고 또 그러고도 가족을 보호하고자 무슨 일이든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힘을 쓰기도 하고 높은 곳에 오르기도 하며 잠을 자지 않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게 남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 지상에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것은 모두 우리의 구원을 위한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녀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얼마나 사랑스러운 자녀 입니까?

 

하지만 나의 자녀를 나의 원 껏 사랑하는 데서 멈추지 마시고 , 나의 자녀를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양육 하는데서 멈추지 마시고

 

나의 자녀들을 사랑하는 나의 모습을 통해

 

나를 이와 같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우리 주님의 사랑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녀를 허락하신것은

 

우리가 우리의 자녀를 통해 우리를 사랑하시며

 

또 우리로 마음아파 하시고 우리때문에 걱정하시고 안타까와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하시기 위한것임을 깨달으시고

 

우리의 자녀사랑보다 훨씬 넓고 깊고 높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녀를 허락하신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녀 사랑도 하나님의 사랑을 닮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눈에 이쁜 자식사랑만이 아닌 정말로 우리 자녀의 구원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는 사랑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 주님의 사랑을 가르치고 보여주고 들려주며 사랑하고 또 같이 울어주는 그런 사랑의 모습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자녀사랑 만 하나님의 사랑을 닮아가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자녀들만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하는데 도움이 필요한 존재 들이겠습니까?

 

나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하는데 부모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나의 남편은 그런 도움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나의 아내도 그런 도움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모두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서로 도움이 필요한 존재가 아니겠습니까?

 

나의 자녀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나를 향한 사랑을 깨닫듯 나의 자녀를 통해 하나님께서 나를 안타까와 하시는 그 아픔을 공감하게 되듯

 

나의 남편을 통해 나의 아내를 통해 나를 사랑하시는 나를 안타까와 하시는 나를 마음 아파 하시는 그 주님을 만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나의 남편과 아내를 통해서 만나게 되는 주님을 통해

 

우리가 서로 더욱 더 사랑하게 되길 원하고

우리가 더욱 더 서로 순종하며

우리가 더욱 더 서로를 위해 희생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말을 듣지 않듯

 

나의 남편에게서 나를 향한 희생이 보이지 않고

나의 아내에게서 나를 향한 순종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나의 아내를 위해 더 희생해야 하고

나의 남편을 위해 더 순종해야 하는데

그럴 맘이 잘 생기지 않습니다, 그것이 문제란 것입니다.

 

당연히 그렇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나의 아내를 보고 나의 남편을 보면 누구에게서나 흠이 보이고 그렇기 때문에 순종할 마음도 희생할 마음도 안 생기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렇다면

 

애초에 성경이 우리 주님과 교회와의 관계를 결혼에서 찾는 것이 무리가 아닌가 의문도 가고 심지어는 상처도 받습니다.

 

결혼이 그렇게 거룩한것이라면 부부들의 관계는 왜 언제나 크나 작으나 문제들이 있는냐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직시 해야할 것은

 

성경이 이런 현실적인 문제에 눈을 감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결혼을 두시고 말씀 하실 때 마태복음에서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하셨지만

 

곧 음행의 경우에는 이 결혼이 지속되지 않을 이유가 됨을 말씀하셔서 결혼의 거룩함과 동시에 결혼이 깨어질 수도 있는 그런 것임을 말씀 하셨습니다.

 

율법을 어겨서는 안되지만 모든 인간이 죄인인것 처럼

 

결혼도 깨어져서는 안될 거룩한 것이지만 하지만 깨어질 수도 있는 그런것임을 우리 주님도 말씀 하셨다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는 다른 현실 입니다.

 

그래서 결혼은 성화의 과정으로 이해 될 수 있는것입니다.

 

성화는 성화에 이를 수도 있지만 이르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성경은 다시 말씀 드리지만 절대 모든 일에 장미빛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구원도 주님을 믿는자와 그렇지 못하는 자가 분명하게 구별이 되듯이

 

성화도 이르는 자와 그렇지 못한자가 있으며

 

천국에서도 상급이 있는자와 그렇지 못하자가 분명히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소망을 둘 것은 이 결혼을 놓고 우리 주님께서 주님과 교회의 나눠질 수 없는 결합을 말씀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절대로 교회와 주님과의 결합을 실패하도록 하실 리가 없듯.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결혼을 주님께서 교회를 이끌어 가시 듯 그렇게 인도 하시길 바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혼은 거룩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주님께서 교회와 주님의 연합을 결혼에 비유하실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언제나 죄된 인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죄를 지어서는 안되는 그래서 죄를 지으면 죽고야 마는 순결한 모습으로 만드셨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인간이 죄를 지어 모든 인간이 범죄한 죄인이듯 완전하지 못한 결혼도 존재 합니다,

 

아니 우리 모두의 결혼이 하나님의 은혜밖에서는 전혀 완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더욱 서로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아내든 남편이든 완벽하지 않습니다.

 

구원에 이르기에 도움이 필요하고

결혼을 이뤄 가기에 도움이 필요합니다.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는 도움이 필요한 불완전한 존재들이라는 이야기 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도와 주시지 않으면 우리가 어떻게 순종과 희생의 열매를 맺겠습니까?

 

우리 죄인이 어떻게 결혼 가운데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깨달을 수 있으며 실천 할 수 있겟습니까?

 

나의 남편의 구원을 도울 수 있으며

 

나의 아내의 구원을 도울 수 있겠습니까?

 

이 모든것은 다시 에베소서 2장 8절로 돌아가야 해결이 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렇습니다.

 

나의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나의 믿음의 결과이듯

 

나의 결혼도 내가 믿을 때, 하나님께서 나의 배우자에게 역사 하심을 믿을 때, 이 사람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배우자임을 믿을 때 완성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이지만 이 사랑은 믿음의 열매이듯

 

나의 결혼에 대한 믿음 나의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의 믿음이 있다면

 

비록 내가 죄된 죄인이라도 어리석은 자 일지라도

 

나에게서 하나님께서 순종의 열매 희생의 열매를 맺으시고

 

나의 결혼을 통해 우리 주님과 연합한 그래서 한 몸이 된 교회 지상에 주님이 건설 하신 하나님의 나라 같으신 교회와 같은

 

주님과 한 몸이 된 가정

주님과 나와 나의 배우자가 하나가 된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해 가실 줄로 믿으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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