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ason that we can be sure God will answer (John1,43-51)

Can you be faithful to the promises you made when the other party is not faithful to the promise?

여러분은 상대방이 약속에 충실하지 않을 때도 약속에 충실 할 수 있습니까?

Jesus came to the world as the bridegroom of the Israel and the Israel was supposed to be his bride. However, Israel never was faithful to God and it couldn’t recognize its Messiah and Bridegroom, Jesus.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신랑으로 오셨고 이스라엘은 예수님의 신부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한번도 하나님께 충실한 적이 없는 목이 곧은 백성들이었고 자신들의 구세주이자 신랑이신 예수님을 알아보는데 실패하고 맙니다.

It is written in John 1;11 “He came to that which was his own, but his own did not receive him.”

요한 복음 일장 11절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Jesus was very near to the Jerusalem, he was in the Bethany and this place is about a half day walking distance to the Jerusalem.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아주 가까이 계셨습니다, 그가 계셨던 베다니는 예루살렘까지 반나절만 걸으면 되는 거리였습니다.

Scripture is written; “28 This all happened at Bethany on the other side of the Jordan, where John was baptizing.”

성경은 적기를 “이 일은 요한이 6)세례 베풀던 곳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니라…”

But Jesus wanted to go to Galilee because he knew the Israel was not ready for him and the time of God did not come yet; They were not ready, soon they were going to kill John the Baptizer.

하지만 주님께서는 갈릴리로 가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음을 아셨고 하나님의 시간이 아직 이르지 않으셨음을 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정말로 준비가 안되어 있던 것은 곧 이스라엘이 침례 요한을 잡아죽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So Israel and especially Jerusalem was not ready but why Galilee? Galilee is a very remote place and this place was not belonging to the Israel in traditional sense, this place is even further north to the Samaria.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예루살렘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갈릴리인가? 생각 해 볼 수 있습니다. 갈릴리는 너무 먼 지역이고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사실 이스라엘에 속했다고 하기에도 어려운 곳 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은 사마리아 땅 보다도 멀리 떨어진 곳이니까 말입니다.

long history short, the Israel was divided into the Judah and north Israel and the north Israel became Samaria, the Judah has Jerusalem as its capital but the Samaria fell into mixed marriage with pagans and became a pagan country.

긴 역사를 짧게 이야기 하자면 이스라엘은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나뉘게 되었는데 유다의 수도가 예루살렘이었고 사마리아는 이방인들과의 결혼으로 말미암아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 땅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So Samaria is to the Jew was the end of the world but Galilee is located at the north of the Samaria, it’s beyond the end of the world, it was far remote place, it was rural area and it was quite foreign area and Jesus wanted to go there.

그러니까 유대인들에게는 사마리아가 세상의 끝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갈릴리는 이 사마리아보다도 더 북쪽에 위치한 세상 끝 바깥의 세상, 아주 변방이며 또 외국이나 마찬가지인 곳이었는데 예수님께서는 이곳에 가시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To understand why Jesus made Galilee area as his base camp for ministry is very important; Jesus from the beginning, he knew his ministry is going outside Israel, just after church was established in Jerusalem and suffered from persecution, Church sent missionaries such as Paul and spread churches throughout the world. So Jesus made his disciples who can understand these gentile culture and who can do ministries with them.

예수님께서 이 갈릴리를 왜 주님의 사역의 베이스 캠프로 만드셨는가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사역이 예루살렘에 교회가 세워지자 마자 박해를 받아 이스라엘을 벋어나 이방 땅을 향할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사도 바울과 같은 선교사들을 보내서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고 또 교회를 세울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역에 합당한 이방인들의 문화도 발 알고 그들에게 사역할 사람들을 필요로 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Who Jesus was looking for? not a traditional orthodox Jew; think about Peter and Andrew they were fishermen, not at all religious or spiritual people, they were people who were making their living by their physical strength and they were very tough and straightforward people.

어떤 사람들을 그래서 예수님께서 찾으셨는가? 전통적인 정통 유대인들은 아니었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어부였고 전혀 종교적인 사람들은 아니였고 영적인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육체적인 힘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이었고 터프하고 단순명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With this understanding we can see why Jesus met Phillip and told him to follow Jesus.

이런 배경을 알고 있으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왜 빌립을 만나셔서 주님을 따르라고 하셨는지 이해할 수 가 있다는 것입니다.

Phillip has an interesting name, it is a combination of phylos which means love and Hippos which means horse or big creature. So Phillip means someone love horse. Definitely Phillip was not from any noble family lines, maybe he was from horse raising family or so and also the Bible says he was coming from same hometown of Peter and Andrew who were also not so noble class at all.

빌립은 아주 흥미로운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빌립이라는 이름은 필로스 즉 사랑이라는 뜻의 단어와 힙포 즉 말혹은 야수라는 뜻의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니까 빌립이라는 이름은 말을 사랑하는 자라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확실히 빌립은 귀한 가족 출신은 아니였고 아마도 말을 키워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이었거나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성경은 빌립이 베드로와 안드레와 같은 고향출신임을 밝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Jesus was right in calling Phillip, he didn’t waste time, right away he went out to evangelize and he met Nathanael and told him that they found Messiah; Philip was straight forward guy and he directly told Nathanael that the name of the Messiah was Jesus and he came from the Nazareth.

예수님께서 빌립을 부르신것은 아주 옳으신 일이였습니다. 빌립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바로 나가 전도를 하기 시작했고 나다니엘에게 가서 메시아를 찾았오라고 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빌립은 단순명료한 사람이었고 그런 그는 나다나엘에게 그 메시아의 이름은 예수로 나자렛 사람 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Things getting interesting and complex in here because Nathanael was very religious person and he knew there was no prophesy related Messiah for the teen of Nazareth in the Bible so his response was ““Nazareth! Can anything good come from there?” Nathanael asked.”

여기에서 일이 흥미롭고 또 조금 복잡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나다나엘은 아주 종교적인 사람이었고 구세주에 대한 예언이 나자렛과 연관된 것은 성경에 하나도 적혀 있지 않음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다나엘의 반응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하고 반문하는 것이었습니다.

We need to pause a little bit here. Jesus didn’t go to Jerusalem but wanted to go to the Galilee why? because he was trying to be away from the religious people in the Jerusalem who were stumbling blocks to the Jesus’ ministry, think about the Pharisees.

우리는 여기서 잠깐 멈출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대신 갈릴리로 가시길 원하셨던 이유가 무었 이었습니까? 그것은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있는 종교인들을 피해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사역에 큰 걸림돌들 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However, this Nathanael was very religious person, even his name is very religious; Nathanael is a combination word of Nathan which means give and el which means God so his name means ‘God gave,’ sounds very religious, right?

그런데 지금 이 나다나엘은 아주 종교적인 사람이었고 이름 조차도 아주 종교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나다나엘이란 말은 나단 즉 주다라는 뜻의 말과 엘 즉 하나님을 뜻하는 엘과의 합성어로 하나님이 주셨다라는 뜻의 이름입니다, 아주 종교적인 느낌이 나지 않습니까?

Yes, Nathanael was a traditional orthodox Jew, he was just the exact same type of person Jesus was away with! Why Jesus bothered even meeting with this guy? who is already very suspicious about Jesus as Messiah?

그렇습니다 나다나엘은 아주 전통적이고 정통적인 유대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애 써 피하시던 종류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예수님께서 자신이 메시아임을 이미 의심하고 있던 이 사람을 만나 주셔야 했던 것입니까?

Jesus told Nathanael “Here truly is an Israelite in whom there is no deceit.” and nathanael talked back “How do you know me?” He’s got some attitude? right? but Jesus answered, “I saw you while you were still under the fig tree before Philip called you.”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을 보시고 말씀 하시기를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하셨습니다 그러자 나다나엘이 대꾸를 하는것이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벌써 태도가 좋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주님께서는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Then something happened, Nathanael suddenly broke down and cried out “Rabbi, you are the Son of God; you are the king of Israel.”

그러자 뭐가가 일어납니다, 나다나엘이 갑자기 무너지면서 외치기를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하는것이었습니다.

How to explain what just happened to this orthodox Jew, Nathanael? how person like this turned from skeptic to a believer like this? what made him turned from his prior position and again why Jesus let all these happened to this orthodox Jew who didn’t believe the Messiah would come from the Nazareth?

지금 전통적이고 종교적인 정통 유대인 나다나엘에게 일어난 일을 설명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도대체 어떻게 나다나엘과 같은 사람이 의심하는 사람에서 갑자기 예수님을 알아보고 믿는자가 될 수 있는 것일까 말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 사람을 처음의 모습에서 지금의 모습으로 바꾸어 놓았고 왜 예수님은 자신이 구세주임을 믿지도 않았던 이 전통적 정통 유대인인 나다나엘에게 이런 변화가 일어나도록 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First thing we need to find out is what Nathanael was doing under the fig tree? Nathanael suddenly understood that Jesus was not an ordinary person but son of God which is the way call God in the Roman Empire, so Nathanael actually called Jesus God just after he heard that Jesus saw him under the fig tree.

So what in the world Nathanael was doing under the fig tree?

첫번째로 우리가 할 일은 나다나엘이 무화과 나무 밑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나다나엘은 갑자기 예수님이 평범한 사람이 아닌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아들임을 깨달았습니다 –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이 로마제국에서는 하나님을 부르는 이름인것을 안다면 나다나엘은 예수님께서 그를 무화과 나무밑에서 보았다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나자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도대체 나다나엘이 무화과 나무밑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었길레 이런 고백을 하는 것이냐는 것입니다.

Let me suggest you an answer. What if Nathanael was worshipping God under the fig tree and waiting God’s answer to his worship? what if Nathanael was seeking the face of God turned toward him and see him?

제가 한 대답을 제시하자면 만약 나다나엘이 무화과 나무밑에서 하난님을 경배하고 있었고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기다리고 있었다면 어떻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다나엘이 하나님께서 얼굴을 자신을 향하시고 자신을 보아주기를 바라고 있었다면 말입니다…

When Jesus told him he was seeing Nathanael supernaturally, Nathanael felt shiver through his back because Jesus was saying that he is God who heard him praying, worshipping and asking to see him! Yes, Jesus told Nathanael when he was asking Yahweh to look at him, Jesus listened and saw him!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에게 주님께서 신비한 능력으로 나다나엘을 보고 계셨다는 말씀을 해 주셨을 때, 나다나엘의 등뒤로 떨림이 흘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씀은 자신이 하나님이시며 그의 기도를 들으셨으며 나다나엘이 기도하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께 자신을 보아달라고 하는 것을 보셨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이 야회하나님께 자신을 보아달라고 기도했을 때 주님께서 들으시고 보셨다는 것이라는 겁니다.

So one question is answered but still there is another, even though Nathanael was looking for God but so did other religious people in Jerusalem! they were looking for God also then why Jesus went away from them but to answer Nathanael who was also the orthodox Jew?

이제 질문 하나는 해결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하나의 질문이 남았는데 그것은 비록 나다나엘이 하나님을 구하고 하는것은 사실이지만 예루살렘의 다른 종교적인 사람들도 그렇게 하나님을 구하지 않았는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의 종교인으로 부터는 떠나 가시고 나다나엘에게는 기도에 응답해 주시냐는 것입니다.

The answer is simple, as Jesus said in Nathanael there was no deceit! he was looking for God with honesty and sincerity that was different from other religious leaders in the Jerusalem who was using god’s name for maintaining their power and status.

그에대한 대답은 아주 간단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나다나엘에게 말씀 하셨듯 나다나엘에게는 거짓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다나엘은 하나님을 정직한 마음으로 구하고 진심으로 구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자신들의 지위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용한 다른 종교적인 지도자들과 달랐던 점입니다.

Also there is one more reason which is bigger than first reason.

그리고 한가지 다른 이유가 있는데 그것이 말씀드린 첫 번 째 이유보다 훨씬 더 큰 이유입니다.

Jesus answered Nathanael because of God’s promise to Israel and Jesus is now getting away from these religious people and the Jerusalem he was going back anyway to keep his promise, God’s promise to his own people.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에게 응답하신 이유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본문에서는 예루살렘의 종교인들을 피해 가시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시기위해 다시 돌아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백성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가신다는 것입니다.

That’s why Jesus answered Nathanael even he had so big attitude toward Jesus initially and also he had so blown ego because of his knowledge in the good book. Jesus answered him because God made his promise to his people.

그것이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에 대한 태도도 건방지고 또 자신이 성경에 가지고 있던 지식으로 인해 교만하기까지 했던 이 사람에게 응답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에 대한 약속을 이루시려고 이런 사람에게도 응답 하셨다는 것입니다.

From today’s scripture, I want all of us to take two points and they will make our lives great and alive in God.

오늘의 보눈에서 저는 우리가 두가지 핵심을 가져가길 원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우리의 삶을 훨씬 나아지게 하고 또 하나님안에서 살아 숨쉬게 할 것입니다.

The two things are honesty in seeking God and faith in the promise of God.

그 두가지 핵심은 바로 정직하게 하나님을 찾는것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입니다.

Nathanael, he was not a person who want to be close with. He had some attitude and he was sort of smart ass with big ego. That’s why he was not convinced by Philip’s testament and even talking back to Jesus. He was a kind of person who is not really a good choice to hang out with.

나다나엘은 인간적으로는 가까이 하고 싶은 타입의 사람은 아니였습니다. 태도도 건방졌고 약간 교만함까지 있는 똑똑한 소위 재수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빌립의 전도에도 믿지 않고 예수님께는 말대답까지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나다나엘은 같이 다니기에 정말로 안 좋은 그런 불쾌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Only thing he showed his own virtue, especially in spiritual realm is that his honesty in seeking God and that’s the one reason Jesus answered his prayer and worship and that’s the one reason that Nathanael responded Jesus with his confession “you are the Son of God; you are the king of Israel.” he was so honest, so he had to spit out what he had seen and heard and know of.

그런 그가 단 한가지 그가 자신의 덕성을 보인 부분이 있는데 특히나 영적인 부분에서 하나님을 찾는데 정직하게 찼았던 것이었고 그런 이유로 나다나엘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자 즉각적으로 예수님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라고 대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너무 정직해서 그가 듣고 보고 아는것은 꼭 이야기해야만 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The other one is much more important and we have to remember this; God answers your prayer not because you are worthy of getting an answer from him but because of his own promise to his own people. Nathanael was praying hard and he was praying with honesty but he was in the wrong direction unless he would had known who was Jesus as soon as he met him; He received his answer because of God’s promise to his people, Jesus came as Messiah because of this promise.

그리고 더 중요한 한가지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에 합당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나다나엘은 열심과 진심으로 기도하고 있었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가 예수님을 뵙자마자 침례요한 처럼 주님을 알아 봤을 것입니다. 그가 그의 기도의 응답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 대한 약속 때문인데 그 약속을 지키시려고 예수님께서 구세주로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나다나엘이 기도에 응답을 들은것이라는 것입니다.

So we have our faith in the promise of God not in our deed or our character, they are all the byproduct of meeting God and having faith in God.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의 행위나 인격에 대해 믿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나머지 것들은 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믿음의 부산물들일 뿐입니다.

Brothers and sisters.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Don’t forget that we are praying for answer from God and we are expecting his answer not because of our deep prayer or our noble character and our ability and status but only because of God’s promise.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응답을 기대하는 것은 우리의 깊은 기도를 인함이 아닙니다 또 우리의 고결한 인격과 우리의 능력 때문에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 기도의 응답을 기대할 수 있는것은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인함입니다.

Let’s be honest that we all are people with attitude to God, we tend not to listen to his voice and not to follow his commands and we are good at coming up with reasons why we couldn’t follow them.

우리모두는 하나님께 태도가 건방지기도 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으며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지 않으며 또 하나님께 우리가 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없었는지 변명하기 좋아하는 자들입니다.

We have to confess that we are bad toward our God but still we can hope and expect his answer to our prayer and also his providence on our lives only because of his promise.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께 올바르지 못했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아직도 우리의 간구에 대한 응답을 하나님으로부터 기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약속 때문 이라는 것입니다.

And finally we have his new living promise in Jesus today who listens and answers to us if we believe in him.

그리고 드디어 우리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약속으로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계신 주님께서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가면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So please pray with honesty and in big faith in his Promise, he is faithful and he answers, even Nathanael heard his answers.

그러므로 여러분 정직함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신실 하시며 하나님은 응답 하십니다, 나다나엘도 응답 받았음을 기억 하시기 바랍니다.

let us pray

기도 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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