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ings are not going as you wanted!

Christians are the bride of Jesus Christ.

Christians are also friends of Jesus our Lord God.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사람들 입니다.

성도는 우리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친구인 사람들입니다.

In today’s scripture  we can see Jesus was preparing his ministry. We’ve already seen what he had done the temple cleansing and also he made immense numbers of followers but his ministry didn’t really started yet.

오늘의 본문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사역을 준비하시고 계신것을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주님께서 어떻게 성전정화를 하셨고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따라왔는지 보았지만 그렇지만 우리 주님의 사역은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The Scripture wrote as this; “After this, Jesus and his disciples went out into the Judean countryside, where he spent some time with them, and baptized.”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침례를 베푸시더라

The modern translation wrote as just simply Jesus was staying in the Judaea land but the original greek wrote a little bit differently, it used word διατρίβω which is translated as stay but actually it is a composite word of dia and tribos, dia means through and tribos means a way which was made out of high traffic! So it means you are moving around but within a certain area! So Jesus was not just passively stayed but working and waiting for God’s appointed time in the Judea!

현대 번역으로는 예수님께서 단순히 머무셨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하지만 헬라어 원어에서는 조금 다르게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머무르다로 번역된 원어는 디아트리보인데 이것은 디아라는 단어와 티리보라는 단어의 합성어 입니다. 디아는 통하여라는 뜻이 있고 트리보는 걸어다녀서 길이라는 뜻이 있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수동적으로 가만히 계셨던것이 아니라 활발하게 일하시면서 하나님이 지정하신 시간을 기다리셨다고 이해 하는것이 옳을 것입니다.

So Jesus was preparing his ministry and also he was giving baptism but it was later turned out that his disciples was giving baptism but at that moment people understood Jesus was giving baptism in the Judea!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사역을 준비하시고 계셨고 그리고 나중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세례를 준것으로 드러나지만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주시고 계신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People misunderstand when God’s work is appearing in the world, the world might become peaceful and beautiful suddenly! but the truth is quite an opposite! When God’s will is revealed there’s conflict between God’s will and the desire of the world! think about what Jesus did in the Temple! he cleanse out the temple with violence!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는것 중에는 하나님의 일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면 세상이 갑자기 평화롭고 아름답게 변화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반대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면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뜻과 세상의 욕망이 부딪히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가셔서 하셔야했던 성전정화의 사건을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께서는 폭력을 사용하셔서 성전을 정화하셔야만 했습니다.

When God’s was preparing his ministry there came tensions between the will of God and worldly desires, the will of people and today’s scripture is all about that moment, it was about time the will of God was spreading into the world.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사역을 준비하실때는 하나님의 뜻과 세상의 욕망들, 인간의 사이의 긴장이 생길 밖에 없는 것이고 오늘의 본문은 바로 긴장에 관한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이 이제 세상에 퍼지려는 직전의 순간에 대한 것입니다.

It was John the Baptist’s disciples who felt this tension immediately. John the Baptist probably was doing his ministry where close to Jesus was preparing ministry and the disciples of John the Baptist had an argument about the ceremonial cleansing with a Jew; probably they were having argument about the teaching of Jesus about the cleansing because after the argument these disciples came to the John the Baptist and complained about the ministry of Jesus.

긴장을 처음으로 느낀 사람들은 바로 침례요한의 제자들 이었습니다. 때에 침례 요한은 아마도 주님께서 사역을 준비 하시던 곳과 가까운곳에 있었던것으로 보입니다. 때에 침례 요한의 제자들이 유대인과 정결례에 대한 논쟁을 벌이는데 때도 아마도 정결례에 대한 주님의 가르치심에 대하여 논쟁을 벌인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논쟁후 제자는 요한에게 와서 바로 예수님의 사역에 대하여 불평을 털어놓기 시작하니까 말입니다.

It was written, “They came to John and said to him, “Rabbi, that man who was with you on the other side of the Jordan—the one you testified about—look, he is baptizing, and everyone is going to him.”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저편에 있던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그에게로 가더이다.”

These disciples’ concern was simple they were losing their followers. Losing followers, losing members are always bad thing to any ministries and sometimes it felt like some evil thing is happening and it was probably the same to John the baptist.

제자들의 걱정은 단순히 자신들을 따라다니던 후원자들의 수가 줄어든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성도가 줄거나 후원자들이 주는것은 어느 사역에서고 아주 나쁜 일입니다. 이건 사역자들 에게는 악한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정도로 느껴지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마도 줄어드는 후원자는 침례 요한에게도 좋은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This makes us to think about the time when things are not going well as we wanted. What John the Baptist and his disciples were doing was doing the will of God too but their ministry suddenly became demising because of their unexpected competitor, Jesus and his disciples!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갈 우리 생각대로 되어가는 일이 없는 때를 생각하게 합니다. 사실 침례요한과 그의 제자들이 하던 일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의 사역은 갑자기 생각지도 못했던 경쟁자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님의 제자들로 인해 침체의 길을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Sounds strange? Even though we know John the Baptist was waiting Jesus and preparing the way for Jesus for the whole life! However, John the Baptist had some sound reason to be in frustration and even to some degree of despair. It might be like in front of a planting church, a mega church is coming in, both are churches of God but think about the plating church and how it feels like?

이상한 이야기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사실 침례 요한이 평생동안 주님을 기다리고 주님의 길을 예비한 사실을 알고있다고해도 말입니다. 사실 침례 요한은 당혹해 하거나 또는 절망할 만한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그러니까 일은 개척교회 비로 앞에 대형교회가 이사온 일과 비슷한 일이니까요, 하나님의 교회 이지만 개척교회가 느끼는 기분은 어떻겠습니까?

There are times, things are not really going as we wished even though we are doing our very best and also try our very best to be right in front of God. Things are not really going well and we feel like we are being disowned by God and in some case, people became frustrated about God because of this.

사실 인생에는 우리가 바라던 대로 일이 풀려 나가지 않는 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최선을 해도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서있으려고 해도 말입니다. 모든 일들이 막혀있는 같고 심지어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것 같기까지 하며 하나님께 실망하기까지 합니다.

We could find this hardship examples in the Bible easily, think about Abraham and when God asked him to sacrifice his only son Isaac! Isaac was born when Abraham was more than a hundred years old! and even more this son was promised by God himself! but God asked Abraham to kill this only son!

우리는 성경안에서 이런 어려움의 예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특히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외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했을 때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백세가 넘어 얻은 아들입니다 게다가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태어난 아들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아들을 하나님께서 죽이라고 명령을 하신 것입니다.

Life must had been tough to Abraham at this moment! isn’t it?

순간 인갱은 아브라함에게 전혀 친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Difficult moment like this could happen to anybody! It happened to Abraham and it happened to John the Baptist and it could happen to me also.

이런 어려운 순간은 누구에게나 생길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생겼고 침례 요한에게도 생겼으며 저에게도 생길 있는 것입니다.

Then we could ask this question, Why!? Lord? why do you want to take away my son? why do you want to take away things given to me from you! Lord? why things are not going well as you promised Lord!?

그렇다면 우리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렇습니까? 주님? 저의 아들을 데려가기 원하시고 심지어는 당신께서 허락하신 것들을 가져가셔야 합니까? 삶은 당신께서 약속하신 대로 풀리지가 않는것입니까?!

However, the real question is when this things really happen to us what shall we do!? what if God is taking away blessings he had given to us? what if God is taking away my family? What if God  is taking away my wealth, health and relationships!? when hardships come to us then what shall we do?

그런데 진짜 질문은 이런일이 우리에게 닥쳤을 우리가 어떻게 해야하는가? 일것 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 하셨던 축복을 거둬 가신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족을 데려 가시고 우리의 부를 거둬 가시며 건강과 관계들을 거둬 가신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런 어려움이 닥칠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느냐는 것입니다!

Let’s see how John the Baptist did in such a time.

침례 요한이 이런 어려운 때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살펴보기 원합니다.

First, in spite of frustrating reality, he again acknowledged it was not him but God who must be glorified, he said he was not the bridegroom but a friend of the Bridegroom.

첫째로, 침례요한은 실망스런 현실에서도 다시 영광받아야 분은 자신이 아니고 하나님 이시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자신은 신랑이 아니며 신랑의 친구일 이라는 것입니다.

Second, he said “The friend who attends the bridegroom waits and listens for him, and is full of joy when he hears the bridegroom’s voice.”

번째로 침례 요한은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고백하는 것입니다.

So being a friend of the bridegroom means that he is listening to the voice of God in such a hard time! and by hearing the voice of the bride he is rejoicing! So it is friend of the bridegroom and he is the one who is listening to the voice of God in his hardship and finds out the reason that he can rejoice! even when God is taking away everything!

그러니까 신랑의 친구가 된다는 것은 어려움 가운데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신랑의 음성을 들음으로 기뻐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랑의 친구는 신랑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고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며 그리고 중요한것은 어려움 가운데도 하나님을 기뻐해야할 이유를 찾아내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모든것을 뺏어가는 해도 말입니다.

How it can be possible!? How can a man do this!? we need to look how Abraham did this when God asked him to sacrifice his only son, in the book of Hebrew it is written, “Abraham reasoned that God could even raise the dead, and so in a manner of speaking he did receive Isaac back from death!”

이런일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사람이 어떻게 이런 일을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외아들을 희생제물로 바치라고 했을 아브라함이 어떻게 했는지 다시 봐야 합니다, 히브리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So Abraham believed and knew that God is the God who can raise the dead and he believed because of the God’s promise that through Isaac that his offspring will be reckoned! so Abraham believed Isaac would not be dead but live! he believed and it tuned out as his faith. Also John the Baptist believed that God is working and he knew it is for the salvation for all and he didn’t mind his own demising power!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분명하게 하나님은 죽은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하신 약속을 상고해 이삭이 죽지않고 살리라 확실하게 믿은것입니다 그리고 모든것은 아브라함의 믿음대로 되어진 것입니다. 침례 요한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을 믿었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만인을 구워하시기 위하임을 알아 자신의 힘이 약해지는 것을 괘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What we have to learn form today’s scripture is that we have to be able to find out the will of God even in times of troubles and also be able to see the good works God will establish and also be able to rejoice because of this!

오늘의 본문에서 우리가 배워야 것은 우리는 어려움 가운데서도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알아낼 있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선하신 일을 이루신다는 것을 있어야 하고 그것을 통해 기뻐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Dear brothers and sisters.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This is the word for you if life seems not fair to you today, if your husband is not live up to your expectations or if your children are not living up to your expectations and become pain of your life? then this word of today is yours.

오늘의 말씀은 삶이 공평하지 않다고 느끼는 모든 분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나의 남편이 나의 자식이 나의 기대대로 살아주고 있지 않고 나의 삶의 고통이 되었습니까? 오늘의 말씀은 그런 분들을 향한 것입니다.

Even though you don’t understand why God let these things happen to your life but believe that God is working in your life and he will save you from all of these turmoils and the one who does so is a friend of God and a friend of Jesus!

비록 내가 나의 삶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도록 하나님이 버려 주시는지 이해 없지만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나의 삶속에서 일하고 계심을 믿음으로 모든것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실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믿는 자가 바로 하나님의 친구요 예수님의 친구입니다.

Abraham became the ancestor of faith and the John the Baptist could prepare the path for the Jesus our Lord by their faith, by believing God that He will save them from all injustice and cruelty of their lives and God exactly did as their faith and Jesus became the answer for all of these.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침례 요한은 믿음으로 우리 주님이 오실 길을 예비하실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을 그들의 삶속의 불의와 잔혹함으로 부터 구원해 주실 것을 믿었고 하나님은 믿음 그대로 행하시어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것의 담이 되신 것입니다

This life may not nice to us but we know for sure and believe that God will allow upon us our salvation and this salvation comes as Jesus Christ our Lord and God and this salvation is much bigger than our troubles.

삶은 우리에게 친절하지 않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확실하게 알고 믿는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허락 하셨고 구원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이 우리 삶의 모든 문제의 보다도 크시다는 것입니다.

Even though our lives could be cruel and harsh and make us feel like God is taking all from us away but we can be sure and rejoice for our salvation in our faith only because this salvation, the name of Jesus Christ is much much bigger than all of our pains and agonies! So in our faith and through faith we can see this coming salvation and can rejoice! it is not really a problem whether God solves my life issues because the love of our Lord Jesus Christ is so much bigger and better than any problems! Even I lose my life but if I can have the name of Jesus Christ then my life is so good and safe in the bosom of my good Lord!

우리의 삶이 때로는 잔인하고 거칠고 우리가 느끼기에 하나님께서 모든것을 빼앗아 가신다고 까지 느끼게 만들 지라도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확신하고 기뻐하기 까지 있는 것은 오직 구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우리의 모든 고통과 신음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안에서 우리의 믿음을 통해 우리는 우리에게 구원을 보고 기뻐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은 너무나 크셔서 우리의 문제가 해결이 되나 안되나는 진짜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만일 생명을 잃는다고 해도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질 있다면 나의 삶은 주님안에서 안전하고 선한 것입니다.

Dear brothers and sisters! Time is Evil! this time is the most evil in the history of mankind, look all the things happening out there! but also bigger is the grace of our God, Jesus Christ! So we can have great faith in the name of Jesus Christ because his love and his grace is much bigger than anything else and even bigger than this universe.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시대가 악합니다 인간의 역사 어느 보다도 지금이 악한 입니다, 세상에 지금 일어나는 일들을 보시면 있습니다 하지만 악이 크면 클수록 보다 크신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의 이름에 믿음을 가질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모든 것들보다 크시기 때문에 주님을 신뢰 있습니다.

We have this great name in us because of the grace of God so rejoice in the faith he has given to you, rejoice the great and holy name of Jesus Christ and become friend of Jesus, rejoice!

우리가 위대한 이름을 하나님의 은혜로 지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믿음 가운데 기뻐하시기 축원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하고 거룩한 이름지닌 주님의 친구입니다, 기뻐 하십시오!

 

빵과 말씀의 교회 주일 설교
본문: 요한복음 3:22-30
 
삶이 내 뜻대로 되어지지 않을 때.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역이 자신들의 입지를 줄어들게 할 것이라는 걱정만 하는데 침례 요한의 반응은 이들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사실 침례요한이라고 자신의 사역의 입지가 줄어드는것이 반가울 수 있었겠습니까? 자신의 입지가 줄어드는것이 그의 사역 계획표에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침레요한은 어떻게 당연히 자신이 가질수 있었던 욕망을 하나님의 뜻 밑에 굴복 시킬 수 있었던 것 일까요?
 
내 맘같이 삶이 풀려가지 않을 때 과연 성도는 어떻게 해야하나? 오늘의 설교에서 살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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