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9:10-16

사도행전 9:10 – 16

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가라사대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0. Now there was a certain disciple at Damascus named Ananias. The Lord said to him in a vision, “”Ananias!”” He said, “”Behold, it’s me, Lord.””

11.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11. The Lord said to him, “”Arise, and go to the street which is called Straight, and inquire in the house of Judah for one named Saul, a man of Tarsus. For behold, he is praying,

12. 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12. and in a vision he has seen a man named Ananias coming in, and laying his hands on him, that he might receive his sight.””

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3. But Ananias answered, “”Lord, I have heard from many about this man, how much evil he did to your saints at Jerusalem.

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하거늘

14. Here he has authority from the chief priests to bind all who call on your name.””

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5. But the Lord said to him, “”Go your way, for he is my chosen vessel to bear my name before the nations and kings, and the children of Israel.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6. For I will show him how many things he must suffer for my name’s sake.””

한국 사람치고 흥부와 놀부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착한사람은 복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취지로 이해되고 있는데 이런 사고 방식은 기독교에 적지않은 해를 끼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 믿으면서 착한 사람은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착한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착한것 물론 하나님도 기쁘게 보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향해 가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지난번에 회개에 대한 말씀을 나눴습니다. 회개란 나의 삶이 바뀌어서 하나님을 향해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만나서 착하게 사는것이 회개의 전부가 아니고 나의 삶의 방향이 목적이 하나님이 되시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더 생각해 볼것은 그럼 죄는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죄는 하마르티아라는 말을 쓰는데 이것은 과녁을 빗나가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생의 과녁 즉 우리 인생의 절대적인 목표를 벗어난 삶이 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믿는 사람들은 우리의 인생의 목적이 바로 하나님, 우리 주님이 되심을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사울의 회심이 아나니아와 주님의 대화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울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들의 생명을 앗아가던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인생을 전속력으로 하나님의 뜻과는 정 반대로 달려가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굳게 믿던 확신범이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오해할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세상모든 창조물들 중에 인간만이 그렇게 착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닮은 지존자의 형상대로 지어진 인간이기에 하나님의 뜻과 떨어진 내 뜻을 세울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인간은 자기의 선택으로 하나님의 뜻과 멀어질 수 있지만 또 반대로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면 자신의 의지로 하나님의 뜻을 향해 달려가는 거룩한 인생을 선택할 수 도 있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 가운데 가끔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잘못된 우리의 생각을 일깨워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깨달음의 모습으로 올 수도 있고 인생의 어려움의 모습으로 올 수도 있고 여러 모습으로 하나님의 우리 인생에 개입하심이 드러나게 되는 것 입니다.

사울에게는 주님께서 직접 다메섹선상에서 만나주시는 이적으로 사울의 착각을 바로 잡아 주셨습니다. 보는 순간 사울의 눈이 타버리는 그래서 비늘같은 허물로 눈을 덮어 사울이 맹인이 되는 이적으로 사울을 일깨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보는자는 죽게 되므로 사울의 눈을 멀게하셔서 사울의 생명을 보전해 주신 주님의 사울을 향한 뜻은 분명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선하신 주님의 뜻과 강력한 하나님의 영광을 접한 사울의 인생은 이후로 백팔십도 바뀌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로 폭주하던 사울의 인생이 반대로 하나님을 향해 전 속력으로 질주하는 전차와 같은 인생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볼 때는 성경의 인물중에 사울만큼 하나님께 충성한 사람도 없습니다. 많은 사람도 이에 동의 합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사울은 절대로 착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은 신념이 있는자 진리를 만난자 불같이 인생을 살아간 자였지 그냥 기준도 모호한 착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뜻을 향해 자신의 인생을 바꾸므로 회개한 자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뜻을 쫓아간다는 것을 나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라고 종종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따르게 되면 나를 위한 삶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를 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히 틀린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다 지시고 대신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 정도 나를 대신해 대신 죽어 주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반대로 이야기 하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일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야 말로 우리를 사랑하는 법을 모를수 있습니다. 나야 말로 나를 사랑하는 법을 모르고 오히려 나를 파괴하는 파멸의 길로 나를 몰아가는 나의 원수의 일을 하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수많은 자살하는 사람들과 옳지 않은 일인줄 알면서도 순간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취하고 남의 것을 탐하며 욕심을 부리는 고 욕정의 삶을 사는것이 인간 아닙니까? 나의 가장 큰원수가 나일 수 있음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지금 여기에 자신의 신념을 하나님 삼아 전속력으로 달려가다 하나님을 만나 회심하게 되는 사울이 있습니다.

이 사울이 이제 바울이 되어 똑같이 지금까지 자기가 살아오던 모습대로 그러나 반대의 방향으로 하나님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가게 됩니다.

아직도 까칠한 모습 그대로 날카롭고 또 직선적인 모습 그 대로 이지만 이 사람은 완전히 바뀐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향한 의의 삶을 살게된 거듭난 자가 바로 이 사울, 바울 사도가 되시는 것입니다.

사울의 일화는 여러모로 우리에게 울림을 줍니다.

인생의 본질을 결정하는 것이 얼마나 인생을 열심히 사는가에 달린것이 아니라 인생의 방향에 달려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나의 인생을 파괴하고 파멸의 길을 영광의 길로 알고 달려갈 수 있는 그런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우리가 인생을 최선을 다해 사는것이 정말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가 열심히 산 그 모든것을 또 온전히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 전속력으로 달리면서 쌓아올린 지식과 경험, 하나님은 하나도 버리지 아니하시고 복음을 전하는데 다 사용 하셨습니다. 그래서 신약 성경의 대부분을 이 사울이 쓰게 하시고 이방인들에게 이 사울의 꺽달지고 강직한 성품을 쓰셔서 복음을 전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 때에

나의 방향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가? 늘 점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방향이 잘못된 삶이 바로 죄된 삶이기 때문이고 나를 파괴하는 나를 죽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중요한것은 언제나 열심히 사는 삶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울이 만약 주님께 부르심을 받을 때에 우리가 아는것과 달리 학식도 부족하고 걍험도 부족한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사울이 회심을 해 구원을 받았어도 그가 감당해야 했던 많은 사역을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울을 부르셔서 감당하셔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쓰임을 받기 위해서 우리가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지혜를 다해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충실하고 말씀을 공부하고 말씀을 살려 애쓰고 나에게 허락된 모든 것들을 다듬고 발전 시키는데 부족함이 있으면 안 될것입니다. 적어도 이것은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을 사시는 빵과 말씀의 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들은

내 삶의 방향이 하나님을 향하는 삶인지 늘 점검하시고 또 나의 삶의 태도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모든것을 최선을 다해 다듬고 나를 발전시키는 자세를 가지고 있는가? 점검하셔서 한나님이 사용하시기에 언제나 부족함이 없는 바울과 같은 자로 언제나 능히 사용하실 수 있는 거룩한 삶을 사시는 모든 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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