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알게모르게 스며든 정치적 올바름을 경계합니다.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알게모르게 스며든 정치적 올바름을 경계합니다. 듣기에 좋은 말만 하는것, 긍적적인 면만 강조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맥이 닿아 있는것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축복받는 삶과 저주받는 삶이 정확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무엇이 죄인지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용서는 회개한 사람들에게만 허락이 되어 집니다. 어떻게 회개합니까? 자신이 죄인인것을 알고 깨닫고 뼈 속 깊이 느끼지 않으면 회개 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인간은 목이 곧은 존재입니다.

주님께 용서를 구한 자들은 다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자들은 주님께 정죄를 받지 않은 경우에도 가서 더이상 죄를 짖지 말라는 경고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 사람이 그 이후에 구원에 이르렀는지 분명하게 말씀 하시지 않고 있습니다.

그가 구원에 이르렀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런 소망이 크면 클 수록 더 분명한 것은 회개 없이는 용서도 없다라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존재론적인 회개 나의 존재자체가 주님앞에 죄된 것이라는 성령의 역사로 인한 철저한 회개가 불같이 임하지 않고서는 인간은 회개 할 수 없는 그런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런 인간들에게 죄가 무엇인지 분명히 가르쳐주는것을 비판하고 이들의 아픔만을 보듬어주라는 것은 괴변이고 어불성설입니다.

동성애나 이런류의 범죄한 사람들을 이런 옳지 못한 길로 이끌게 한 그 상처를 이해하고 이들을 보듬으라는 이야기는 처음부터 잘못된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회개가 없이는 이런 상처의 치유도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나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상처의 치유도 자신이 자신을 범죄함으로 학대한 그 사실을 뉘우치고 회개하고 자신을 보듬어않는 과정이 없이는 치유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동성애와 낙태가 하나님 앞에 죄임을 역설하시는 분들은 바로 이 죄로 만연한 세상에 자기가 하는짓이 죄인지도 모르고 자신의 육신을 자기스스로 저지르는 범죄로 괴롭히는 사람들에게 돌아오라고 외쳐주는 믿는자들의 외치는 소리요 그들이 보고 까라올 수 있는 안개낀 바다의 등대와 같은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스며든 정치적 올바름, 누가 들어도 나이스한 말만 해야한다는 말도안되는 강제와 이를 이용한 교회에 재갈을 물리는 행위가 이미 도를 넘어가고 있습니다.

이에 정말로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할 일은 없는 지 스스로 점검 할 때입니다.

크리스챤은 용서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주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치루신 그 희생이 얼마나 큰지 아는 자들입니다.

이 이야기는 반대로 우리의 죄가 얼마나 큰지도 아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는 순간이 그래서 사실은 구원의 순간 이었습니다. 그 죄의 크기를 알아야 나를 구원하신 구원의 크기가 얼마나 큰것임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작금의 교회의 현실은 우리의 찬단을 흐리는 극심한 괴변으로 법벅이 된 정치적 올바름과 옳지 않은 이데올로기의 침범이 그심한 상황입니다.

정말로 경계심을 가지고 주님앞에서 나의 구원을 나의 회개를 부르짖어야 할 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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