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1:1-4)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요 11:1-4)

믿는자 들에게도 나쁜일은 일어납니다. 병이 들기도 하고 고난이 찾아 옵니다. 그러나 믿는자들과 세상 사람들을 구별하는 것은 믿는자 들에게는 이런 어려움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기회로 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고 우리 주님께서 우리가 그렇게 승리하도록 도와 주신 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도대체 내가 고통을 받아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것이라면 도대체 하나님께서 좀 심하신 것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심술 이라도 있으신 것인가? 오해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시길 나자로가 병든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니 성경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나의 고난을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해 이용 하시나? 그런 하나님이신가? 쉽게 오해할 수 있는 본문이 오늘의 본문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나자로의 병듬에 관한 본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원래 창조 하셨을 때는 병들지 않는 존재요 죽지 않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죄가 우리에게 들어오고서 인간은 죽게되는 유한한 존재로 바뀝니다. 인간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다스리라고 만드신 만물도 유한한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지닌 존재로 창조 되었던 본 모습을 죄로 인해 잃어 버리게 되었고 그 결과로 우리에게 죽음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할 수 없는 죄된 존재가 되자 죽음이 들어오고 고통이 들어오고 질병과 연약함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 우리가 병들고 쇠약해 지며 죽는 유한한 존재로 바뀐것이라면 그렇다면 반대로 우리의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생명의 근원이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다시 말하면 본문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는 말씀은 나자로의 연약함을 이용해 영광을 나타내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자로와 우리에게 우리의 모든 문제의 근원을 해결할 솔루션인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이라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지금 우리에게 우리가 처한 모든 문제들의 근원을 해결할 방법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는 것이요, 그리고 유일한 하나님의 영광의 회복의 길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신 아들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을 읽으면서 깨닫는 것은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또 수많은 문제를 만날때마다 해결책을 칮지만 정작 정말로 중요한 이 보든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주님을 찾는 사람은 많지만 정작 정말로 중요한 주님의 영광 하나님의 영광이 나에게 다시 임하는 것보다 지금 당면한 문제 해결에만 집착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언제나 인생은 같은 문제의 반복입니다. 종류만 다를 뿐 언제나 문제에 치여 삽니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나의 문제가 해결이 되는것이 아니라 이런 문제안에서 나의 삶 속에서 주님의 영광이 임하실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 드리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들 잘 아시는 대로 우리 주님께서는 나사로가 병이 위중할 때 나사로를 찾아 가시지 않았습니다. 나사로가 완전히 죽어 며칠이 자나서야  나사로를 찾아가시고 나사로를 다시 부르심으로 살려 내셨습니다.

주님께서 왜 기다리셨을까? 생각해 보면 나사로가 아직 살아 있을 때에는 나사로도 역시 자신의 병 나음에만 집중하고 정말로 자신이 집중해야 할 문제인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임하고 자신이 새롭게 되는 새로운 생명을 받는 일을 상상도 못하고 또 구하지도 못했을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러니까 나사로가 완전히 죽어서야 주님께서 일 하실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진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는 것입니다. 나사로가 살아있으면 온전히 주님께서 일하실 수 있도록 주인의 자리를 내어 주지 않았을 지 모르니까요.

정리 하자면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을 높이기 위해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우리를 위한 우리의 본질적인 문제의 솔루션, 처방인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는 것은 온전히 우리의 인생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마치 나사로가 죽어서야 주님께서 살리실 수 있으셨듯 우리도 우리의 주님께 대한 전인격적인 순종이 있어야 만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에게 다시 임하시는 우리의 근본이 변화하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찾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것은 우리의 모든것을 가지고 구해야 하는 절대절명의 것인것입니다. 우리의 전부를 드리는 것으로도 부족한 그런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또 우리가 생각할 것은 이런 우리의 순종과 주님의 하나님의 영광으로 역사 하심은 우리의 죽고 사는것 뿐 아니라 얼마든지 우리의 모든 문제가운데 또 우리의 삶가운데  드러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문제가 해결되고 안되고의 수준이 아니라 그 문제 가운데 내 가 나의 인격이 전적으로 주님께 순종해 순간 순간마다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고 경험해 가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삶가운데 언제나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임재하심을 의식하며 코람데오의 삶을 산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 언제나 나의 삶가운데 임하는 삶을 사는 길인 것입니다.

나사로가 죽었던 일은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다시 살아나는 것이야 말로 영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사로에게 임하셔서 나사로의 생명의 문제가 해결되는 동시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나사로에게도 하나님의 영광이 임했던 자로의 영광이 임했습니다. 나사로가 초대 교회에 얼마나 큰 일을 하게 되었는지는 전승이 자세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믿는자들 에게도 어려움이 찾아 옵니다. 이 죄된 세상에 사는 우리 모두에게는 누구에게나 어려움이 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는자들 에게는 이 어려움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할 기회가 꼭 주어집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렇게 하십니다. 나사로를 부르러 주님이 오시던 길은 평안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을 죽이겠다고 덤비던 유대인들을 피해 죽음을 각오하고 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만큼 주님께서 나사로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시길 원하신 것입니다. 또 이와 똑같이 주님께서는 자신이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들, 우리 믿는 자들에게 똑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주시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이 무어보다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정말로 진심으로 주님의 전력을 다해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다시 전해 주시고 싶어 하십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앞서 주님의 이름가운데 드러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삶을 사시기를  저와 모든 믿는 자녀들에게 축원드립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고 우리가 정말로 바라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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