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수 목사의 대천덕 신부 비판에 대해서

요 근래 대천덕 신부님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정동수 목사님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저는 2001 년 미국으로 오기전까지 성공회에서 믿음 생활을 했었고 인본적이고 좌파적인 성공회의 분위기안에서 괴로와 하던중 성경을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따라야 한다고 신본주의 신학을 강조하시던 대천덕 신부님의 영향을 많이 받은터라 정동수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을 조금 놀라움으로 들었습니다.

듣고서도 적지 않게 놀랐는데 일단 첫째, 정동수 목사님의 좌파 비판 특히 성공회 대학내에 자리잡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좌파학자들에 대한 비판이 성공회 내부인이 아님에도 아주 날카롭고 정확한데 놀랐고 두번째로는, 그런데 이 좌파 학자들의 근원과 영향을 준 인물로 대천덕 신부님을 특정해 비판하는데 매우 놀랐습니다.

정동수 목사님은 여기서 더 나아가 대천덕 신부님의 영성운동 혹은 성령운동에 대해 비성경적이라고 비판을 하시면서 카톨릭과의 관계를 의심 하셨는데 예수님과 혹은 하나님의 신성에 대해서도 부정에 가까운 의심을 하는 현대 카톨릭 신학과 좌파 신학의 영향 밑에서도 삼위의 하나님을 믿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의 기반위에서 그 믿음으로 카톨릭과 성공회안에서 소외당하면서도 말씀을 전하시는 성공회와 카톨릭안의 소위 성령파 신부님들에 대한 믿는자로서의 이해가 약하게 느껴지는 것은 매우 아쉬운 부분이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여러 논의의 가능성이 있고 또 저도 이런 비판을 가능하게하는 컨텍스트가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일단 여기에서 다루지는 않기로 하겠습니다.

정말 제가 문제가 된다고 느낀 부분은 두 지점입니다.

첫째는 과연 대천덕 신부님이 미가엘 신학교의 학장을 할 때에 이재정신부들에게 좌파 사상적인 영향을 주었는가? 하는 부분이 있겠고

두째는 과연 대천덕 신부님이 주장하던 희년의 토지개념이 과연 죄파들이 주장하는 토지 공개념과 같은것으로 이해 될 수 있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먼저 첫 번째, 정동수 목사님은 대천덕 신부님이 젊을 때 노조운동을 하는 등 좌파적인 활동을 했던 백그라운드가 의심스러운 사람이라는 주장을 하셨는데 대천덕 신부님이 이런 노조 활동을 하고 또 사회 운동에 빠져 있으셨던 것은 대천덕 신부님의 고백을 통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다만 이런 활동들은 대신부님께서 하나님께 돌아오신 후 하나님을 따르는 삶을 사시면서 폐기처분한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저는 이 때 대신부님은 그 시대 미국의 지식인들에게 크게 영향을 주었던 헨리조지의 사상에 영행을 받게 되디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사상적인 부분을 이야기 하자면 대천덕 신부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근본주의에 가까운 신학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하나님믿고 주님을 따르는 믿는자들은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이해를 지니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근본적인 신앙은 이미 인본적인 사상의 지배를 강하게 받던 성공회 특히 성직자들사이에서 전혀 환영받지 못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로 양보하지 못하는 대천덕신부님의 개인적인 기질에 더해져 갈등이 심화되다 결국에는 미가엘 신학원으로부터 쫓겨나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따르면서 살아가는 기도의 실험실로 만들어진것이 강원도 태백의 예수원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정말 많은 믿음의 간증들이 있음은 많은 분들이 증언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정동수 목사님이 생각하시듯 미가엘 신학원을 통해 대천덕 신부님이 사회주의적인 영향을 끼친것이 아니고 이미 인본적이던 성공회의 주교를 위시한 성직자들과 대천덕 신부님의 근본적인 신학과 개인적으로 타협하지 않는 기질이 부딪혀 신학원에서 쫓겨나신것이 오히려 대신부님의 신앙을 증거하는 일화라는 것입니다.

둘 째로 토지 공개념과 대 신부님이 주장하시던 희년과의 오해가 있는데, 대 신부님은 앞서 말씀 드린대로 하나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는 근본적인 신학을 가지고 계셨지만 그렇다고 극단적인 문자주의 신학을 가지고 계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법이 구약에 선포되었지만 그것은 지금도 살아 운동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법인데 과연 현대 상황에 맞게 이것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을 갖고 계셨고 그런 연장선에서 토지세를 이용한 가능성을 헨리조지의 토지세에서 가능성을 찾으신것 입니다.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니라라는 레위기의 말씀을 자주 인용하셔서 토지의 사유제를 부정하는 토지 공개념과 오해를 받기도 하셨지만 오히려 대신부님의 사상은 이와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소유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것과 소유할 수 없는것에 대한 구별을 강조해야 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서 오히려 진정한 자본주의, 소유를 극대로 발전시키는 발전의 자본주의가 이뤄진다는 그것도 정의로운 발전이 가능하다는 이해를 하고 계신것이었고 이런 이해를 가능하게 하신 것이 바로 헨리조지의 경제 사상이었다는 것입니다.

개념으로만 말하면 뜬 구름 잡는 소리지만, 헨리조지의 토지법에 매우 가까운 예가 현대에 실행되고 있는곳이 바로 텍사스 입니다. 텍사스는 일년에 삼프로가 넘는 강한 부동산세를 부과하지만 그외의 세금들 사업세 상속세 등등 세금이 없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토지에만 세금을 부과하고 나머지 세금을 폐기 하자는 헨리 조지의 토지세, 싱글택스의 핵심입니다. 

그러니까 공공성을 강조해야할 토지에 대해서만 세금을 받아 공공재로의 성격을 강화하고 개인의 사업활동 경제활동에 대한 규제는 제로에 가깝게 없애서 모든 사람들의 경제활동을 방해하지 않고 권리보장을 해 준다는 것이 텍사스에서는 실행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제도를 대천덕 신부님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신 것인데 공산주의 사회주의와는 전혀 거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정동수 목사님의 깊은 사회주의자들의 활동에 대한 이해가 있어서 믿는자들을 깨우고 있는데에 감사를 드립니다. 

하지만 대천덕 신부님과 성공회내의 좌파 목회자들과의 관계에 대한 목사님의 이해는 위의 두가지 지점에서 사실과 다르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어설픈 글이지만 이해에 도움이 되시기를 바라며 

살아계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목사님과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과 함께 하시기를 기도 합니다.

요약:

대천덕 시분님은 미가엘 신학교에서 인본적인 신학을 경도된 목회자들의 갈등으로 인해 쫓겨 나셨다. 미가엘 신학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근본주의적인 신학을 강조하던 결과였다. 그러므로 이재정등 좌파 목회자들에게 영향을 주었을 개연성이 현저히 낮다.

대천덕 신부님이 주장하시던 토지제도는 현대 텍사스에서 실행하는 토지제도와 거의 흡사한 현대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제도이다. 공기와 토지등 인간이 만들지 아니한 것은 공공재로의 세금을 부과해 보호하고 그 외에 인간의 노력이 들어간 사업은 전혀 정부가 간여하지 않는 어떤의미로의 순순한 자본주의를 주장한 것이다. 그러므로 대천덕 신부의 사상을 공산주의 사회주의로 몰아가는 것은 무리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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