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하나님께 우리의 결핍을 채워 주십사 기도하는 것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기도는 인간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려 하는 기복의 기도와 분명히 구분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결핍을 채워 주십사 기도하는 기도중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기도는 주 기도문에 나옵니다. 바로 “오늘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하는 기도 입니다.

주기도문은 기도중에 가장 중요한 기도입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우리 주님이 직접 가르쳐주신 하나님이 주신 기도이기 때문에 어떠한 다른 기도도 주기도문 앞에서지 못합니다.

그리고 주기도문은 단순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길 구하는 기도, 성도가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가장 거룩한 기도 가장 원대한 기도 가장 높은 기도 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 기도는 인간이 감히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온 세상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를 간구하는 기도, 하나님의 이름이 이 기도를 통해 거룩히 여김을 받게되는 기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는 기도, 그런 기도가 바로 이 주기도문입니다.

어마어마한 기도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중요하고 거룩한 기도문에 인간의 필요를 채워 주십사 하는 “오늘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하는 기도가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거룩과 나라와 뜻을 구하는 그 원대한 기도가 끝나자 마자 바로 뒤에 이 기도가 나옵니다.

이것은 느끼기에 따라서 잘못 배치된 것이 아닌가? 생각도 해 보게 되는 배치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여기서 두가지 생각중에 하나를 택해야만 하게 된 것입니다.

먼저 이 기도문이 주기도문에서 잘못배치된 것이라고 생각 하던지

아니면 이 기도문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주 기도문에 그리고 그것도 바로 이 장소에 배치된 분명한 이유가 있던지.

하나님을 정말로 믿는 분들이시라면 성자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이 기도문이 잘못된 것일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아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하나님께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이 기도는 아주 분명하고 중요한 이유로 주기도문에 들어오게 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거대 담론의 시대입니다.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인류의 정의와 평화 그리고 번영을 이야기합니다. 우리 스스로도 이런 거대한 담론들을 다루고 일견 소비하는데 거리낌이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런 거대 담론을 다루는데 있어서 전문가와 아마추어를 나루는 지점이 분명히 있는데 그것은 일반인은 인류의 정의와 평화와 번영을 이야기하고 그게 좋다는데에서 끝납니다. 너무나 큰 주제이기 때문에 그 이상 진도를 나갈 수가 없습니다. 정의 평화? 좋네 하고 끝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들, 학자들 정치가들 철학자들은 다릅니다

그들은 이 거대담론을 이야기하고 인류의 정의와 평화와 번영을 누리려면 우리가 해야 하는 일들, 방법을 제시합니다. 이것이 전문가와 일반인의 차이입니다.

그렇다면 주기도문도 똑같은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을것입니다.

인간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렇게 기도를 하고 이 기도가 좋은 기도다 생각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할 능력도 하나님의 나라가 이곳에 임하게 할 권능도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이곳에서도 이루어 지게 할 수 있는 지혜도 없습니다.

그저 이 기도가 좋은기도다 막연히 느낄뿐 입니다. 인간의 한계가 그런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이 큰 기도를 이루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을 그 뒤에 이어서 가르치십니다. 거대담론을 위한 방법을 전문가가 풀어주듯이 우리 주님께서 하나님의 거룩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게 하기 위해 우리가 실천해야할 것들을 보여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거룩이 넘쳐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세상에 임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행해야 할 것은

먼저 가난과 결핍에서 탈출하고

나에게 잘못한 자들을 용서하고

죄악에서 탈출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반대로 우리가 가난하고 우리가 이웃을 용서하지 못하고 우리가 죄가운데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드러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가난과 결핍을 벗어나고 나에게 죄지은 자들을 용서하며 죄악의 수렁에서 벗어난다면 하나님의 거룩이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나타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방법론 가운데 첫번이 바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하는 구하는 기도라는 것 우리는 분명하게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거룩을 하나님의 나라를 하나님의 끗을 이루기 위한 첫 걸음 입니다, 첫 단추입니다.

첫 단추를 잘못 채우면 잘되는 일이 없듯 신앙 생활의 첫 단추를 잘 채워야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깨닫고 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구해야 채워질 수 있는 결핍의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이 없이는 채워지지가 않는 본질상 부족한 자들입니다.

물질도 나의 영도 하나님 없이는 채워지지가 않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 간구함으로 채우는 것, 그것이 구하는 기도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뤄나가는 첫 걸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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