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를 사랑하는 법

0712 2020

원수를 사랑하는 법

(눅 6:27)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눅 6:28)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눅 6:29)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눅 6:30)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눅 6:31)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2015년 8월 21일 네덜란드에서 건장한 미국인 세청년이 과연 파리로 가는 열차를 타느냐 마느냐를 놓고 옥신각신하고 있었습니다.

이 청년들은 미군 육군과 공군소속으로 훈련을 마치고 또 첫번째 파병을 마친 아주 어릴 때부터 친구사이인 청년들로 첫번째 휴가를 같이 보내고자 유럽배낭여행을 같이 온 것이었습니다.

옥신각신을 하다 그중 스펜서 스톤 일병의 아무래도 파리행 열차를 타야할 것 같다는 주장에 끌려 세 명 모두 15시 17분발 파리행 열차를 타게 됩니다.

그런데, 이 세 청년들이 까맣게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었는데 그들이 타기로 한 같은 열차에는 모든 승객들을 죽이고 자기도 죽겠다고 서약한 이슬람 과격분자 테러리스트 아이윱 엘 카자니가 수백발의 실탄과 자동소총과 권총으로 무장한 채로 동승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테러리스트가 화장실에서 무장을 마치고 나올 때 한 용감한 한 시민이 이를 막아섰지만 권총에 어깨를 관통하는 부상을 당하고 사경을 헤메게 됩니다. 열차에는 무고한 시민들 오백명이 타고 있었고 이 테러리스트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적어도 사람의 눈으로 보면 아무도 이 테러 리스트를 막을 수 없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과격분자 무슬림들과의 교제를 통해 또 유튜브를 통해 완전히 쇠뇌된 테러리스트 카자니의 의지는 차돌과 같이 굳었고 자신의 생명을 버려가면서 까지도 자기 스스로의 성스러운 전쟁을 치르기 위해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 가려는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주장을 위해 남의 생명도 짓 밟겠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생각이지만 우리 모두 기억하는 대로 이 과격 분자 무슬림들은 이런 말도 안되는 일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영향을 깊게 받은 카자니 역시 이 말도 안되는 일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AK-47 돌격 소총을 단단히 고쳐 쥔채로 돌진 하고 있었고 자신을 가로 막은 한 승객을 향해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겼던 것입니다.

하지만, 카자니가 발사한 총소리를 듣는 순간 승객들이 비명을 지르며 테러리스트로부터 도망을 갈 때 그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스톤 일병은 이 상황과는 전혀 다른 목소리를 듣습니다.

‘스톤! 지금이다! 가라!’

반대편에서는 돌격소총을 겨냥한 채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테러리스트가 있었지만 스톤은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이 순간을 위해 그 동안 훈련을 견뎌 온 것처럼 아니 이 순간을 위해 그 동안의 삶을 통해 준비해 오던 것처럼 스톤 일병은 주저없이 총구 앞에 몸을 날려 야수와 같이 돌진해 오던 카자니를 막았습니다.

스톤이 돌격소총을 빼았자 카자니는 칼을 휘둘렀고 이 칼에 스톤의 손가락이 거의 잘려나갈 정도로 베어졌지만 스톤과 그의 친구들은 이에 주저하지 않고 이 테러리스트를 제압하는데 성공합니다.

거의 죽을 뻔한 오백명의 생명이 살아난 것은 파리행 열차를 탈까 말까 고민하던 스톤 일병과 그의 친구들을 강권함으로 이끌어 열차에 타게 하신 부정할 수 없는 하나님의 손길을 인함이었습니다. 만약 스톤일병과 그 친구들이 이 열차를 타지 않았었다면 하고 생각해 보면 오백명 전부가 아니었다면 적어도 수 백명의 생명이 사라졌을 뻔 한 정말 아찔한 사건 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또 주목할 만한 한가지는 스톤 일병과 그 친구들이 테러리스트를 제압하는데서 멈추고 이 사람의 생명을 해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이윱 엘 카자니라는 이 테러리스트는 사람들을 죽이고 스스로 죽으려고 이 열차에 올라탔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스톤과 친구들을 통해 이자의 계획을 무너 뜨리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자의 목숨을 빼앗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죽었어야 했을 이 사람이 죽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것은 카자니가 살아서 자기의 생을 되돌이킬 수 있는 다른 한 번의 기회를 가지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상에 속아 남도 죽이고 자기도 죽일 뻔한 그 엄청난 죄를 저지를 뻔한 일을 진심으로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람을 미워하고 죽여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거짓된 사상과 가르침에 완전히 속아서 수백명을 죽이고 자기도 죽이려고 했던 한 어리석은 영혼의 질주를 멈추게 해 줬던 스톤과 그 친구들이야 말로! 사실은 거짓에 속아 자신을 죽이려고 질주하던 카자니를 정신차리게 해준 고마운 사람들이었다는 것,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원수를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혀서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

즉 우리의 원수들에게 선행을 행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스톤일병과 그 친구들의 예를 생각해 보면 오늘의 본문의 말씀은 단순히 우리가 아무리 원수가 못되게 굴어도 그저 나이스하게 대해줘라라는 말씀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나이스하게 말하고 젠틀하게 원수를 대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원수가 자신의 삶을 돌이켜 진리의 빛가운데로 나올 수 있도록 진리가운데로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도 인도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원수가 바라는 대로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을 따라가거나 그들이 못되게 굴어도 참아 주거나 모욕을 주어도 인내하는 것 보다는 우리를 적대시하고 대적하는 자들도 진리의 빛으로 나아오도록 회개의 길로 나아올 수 있도록 진리의 빛을 비춰 주는 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히려 우리의 원수들이 그들이 원하고 이루고자 하는 일들, 만약 그 일이 바르지 못하다면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게 하고 그들의 계획이 뜻 대로 이루지 못하게 막아서는 것이 우리의 할 일 일 수 도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스톤 일병 일행이 그저 자기 목숨을 살리고자 테러리스트 카자니가 하자는 대로 협력을 했었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랬다면 과연 스톤 일행은 목숨을 부지 할 수 있었을 것이며 과연 얼마나 되는 승객이 살 수 있었을 것입니까? 아니 몇 명이나 과연 살 수 있었겠습니까? 그랬다면 하나님의 뜻이 이 사건을 통해 드러날 수 있었겠습니까? 전혀 그럴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반대로 이 테러리스트의 계획을 막고, 빼앗고자 하는 생명을 살리고, 죽고자 덤비는 테러리스트가 죽지 못하도록 그의 손발을 묶어 버리는 것은 과격했을지는 몰라도 분명히 하나님의 뜻을 어두운 세상에 드러내는 일이요 하나님의 진리의 비춰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생명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 이십니다. 그래서 절대 절명의 순간에도 승객들의 목숨을 구하고 또 테러리스트의 목숨까지도 살려준 스톤 일행의 행위는 더욱 크게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일이 되었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기 때문이고 그렇게 생명을 살려줬을 때 그가 조금이라도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느 경우에도 선한일의 기준은 하나님의 생명의 법이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이 기준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 것이 가장 중요한 잣대입니다.

우리가 지금 명심해야 할 것은 지금의 세상은 원수를 사랑하는 것 또 이웃을 사랑하는 것의 기준을 하나님의 법이 아니라 인간의 법으로 바꾸어 쓰는 악한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태아를 죽이는 낙태도 여자의 몸을 위한 권리로 여인들을 사랑하는 박애의 정신으로 치장하는 시대입니다. 이제 갓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 하나님께서 선물해 주신 그 귀한 생명을 살해하는 낙태를 그 살인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또 소수자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동성끼리 사랑하는 동성애를 찬양하고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세상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입니다.

세상이 험하고 혼란한데 사람이 살다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낙태도 그렇고 동성애에도 사람은 빠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연약한 게 인간입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이런 죄인인 우리 모두를 용서해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구원자 하나님 곧 우리의 주님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진짜 문제는, 진짜로 큰 죄는,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죄를 하나님의 법이 아닌 인간의 법으로 합리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죄를 저지르면서도 죄인줄도 모르고 자기가 하는 일이 그 죄가 자신이 보기에는 정말 옳다고 믿게 되니까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조차도 박탈당할 수 있게 되니까 말입니다.

바로 테러리스트 카자니가 이런 자들의 하나이었습니다. 자기가 사람을 몰살시키는 큰 범죄를 저지르려 하면서도 자신이 큰 정의를 행하는 것이라 속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행하고자 하는 큰 범죄가 성스러운 것이라고 스스로 정의하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카자니와 같이 하나님이 금하시는 살인과 음란에 빠져 있으면서도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고 아니 오히려 자기들이 세상을 선도하는 앞서가는 멋진 인간들이라 착각하는 자들이 흘러 넘치는 것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고 이 세대의 참람한 죄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세대를 향해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최대의 사랑은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으로 돌아오도록 정신 차리도록 하나님의 이름으로 경고를 해주고 진리의 법인 복음을 어떤 식으로든 전해주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일 것입니다.

우리가 다시금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 아는 진리를 세상은 전혀 짐작도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인간의 생각이 최고로 높고 최고로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착각을 진리라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지극히 높고 지극히 옳으신 하나님의 뜻과 법이 존재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말입니다 때로는 우리도 스톤 일병처럼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나 이렇게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을 가르치고 경고하고 훈계하면서 살 수는 없겠지만 때때로 우리에게 영으로 말씀하실 때 우리의 심령가운데 강한 울림을 주실 때, ‘바로 지금이다’라고 말씀하실 때는 우리는 주저 없이 뛰어 들어가 복음을 전할 수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행할 수 있는 가장 귀한 사랑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법을 기준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 갈 길 모르고 헤메고 있는 우리의 이웃들에게 또 우리의 가족들에게 또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진정한 사랑을 하는 사랑의 길인 것입니다.

그 길이 우리에게 영광이 돌아오는 길은 아닐지라도 우리 이웃을 살리는 길이고 우리의 가족을 살리는 길이고 우리의 원수도 살리는 길이기 때문에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길이고 또 나의 생각보다 높고 깊고 넒으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일이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는 그런 하나님의 뜻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길인 것입니다.

내가 뺨을 맞는 한이 있더라도 복음을 전하고 내 겉옷을 뺏겨도 복음을 전하고 어떠한 경우에도 나도 또한 저들도 진리를 붙들수 있도록 돌진하는 것 그것이 바로 누가 복음에서 말씀하시는 원수를 사랑하는 법입니다. 그 만큼 우리가 전하는 영원한 생명의 복음은 귀중한 것이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고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언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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