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언약으로 사는 삶

  • 본문 고린도 후서 3:6-11
    •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은 살리는 것이니라
    •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 하물며 의 직분은 더욱 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으로 말미암아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할렐루야

오늘의 설교를 준비하면서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큰 감동을 주시면서 깨닫게 하신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한마음 교회 교인들로 인해 정말로 기뻐하신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당연히 사랑하시고 기뻐하시지만 하나님께서 이번에 주신 감동은 아주 특별했는데 그것은 아마도 어려운 가운데도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로 발걸음을 옮긴 성도들 한 분 한 분을 하나님께서 귀하게 보시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성도의 모임이고, 성도의 연합된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 교회이며

이 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입니다.

사도행전 7장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애굽을 떠나 광야로 출애굽 했던 이스라엘 민족을 광야교회로 최초의 교회로 기록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의 큰 희생을 감수하였기 때문에 성경은 광야에 나와 출애굽의 여정에 오른 이스라엘 민족을 최초의 교회로 기록하고 계시다는 것, 우리는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한마음 교회의 성도는 오늘 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

또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코비드 사태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심령가운데 있는 신실함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쁨이 될 수 있음을 감사하고 기뻐하고 또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주인이 되셔서 우리의 경배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배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예배의 시간을 붙들어

우리의 최선을 다해 말씀에 집중함으로

하나님께 경배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구약의 언약과 신약의 언약을 구분합니다. 둘 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지만, 하나는 완전하고 다른 하나는 불완전한 것으로 말씀하시고, 하나는 율법 조문으로 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영으로 이뤄진 것으로 오늘의 본문은 말씀하십니다.

그 중 하나인 율법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에게 전해졌고 다른 하나인 성령은 우리 주님을 통해 복음을 인해 믿음으로 우리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의 결론은 놀랍게도 하나는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다른 하나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 직설적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의 본문이 말씀하시는 오래된 언약이란 율법을 통해 맺어진 구약의 언약을 말씀하십니다

구약의 언약은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율법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과 하나님사이에 이뤄진 언약이라는 것입니다. 이 율법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여정에 시내산에서 모세가 하나님께 받은 것입니다. 얼마나 복된 일 입니까?

하지만 모세가 하나님께 울법을 받고 있는 바로 그 시각, 성경은 이스라엘 민족이 황금 송아지를 만들고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는 것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이 이스라엘의 배도를 보고 모세는 분노한 나머지 하나님께서 율법을 새겨 주신 돌판을 던져 부셔 버립니다. 이에 이스라엘민족이 모세 앞에 엎드려 회개하고 다시는 우상숭배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함으로 모세가 두 번째 돌판을 하나님께 받으러 시내산으로 다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도 이 이스라엘의 배도를 보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진멸 하시겠다고 분노하셨습니다. 성경은 이를 보고 분노하시는 하나님을 이처럼 기록하고 계십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출 32:9)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출 32:10)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그러나 모세는 범죄한 이스라엘을 위해 대신 하나님께 최선을 다해 용서를 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간구를 들으시고 두번째로 돌판에 새겨진 언약을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이스라엘 민족으로 대표되는 인간이 모세가 하나님께 율법을 받으러 간 사이에, 그 사십일을 참지 못해서 자신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의 큰 죄에 빠졌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먼저 인간이 하나님이 누구이신 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인간이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그 흉한 황소의 형상으로 우상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이라고 했겠습니까? 그리고 아무리 모세가 충실히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전한다 했던 들 그 역시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전하고 하나님이 누구이신 지 전하는데 부족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마태 복음에서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모세가 하나님의 위대한 선지자요 하나님의 종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뜻을 인간들에게 완벽하게 전할 수 있었겠으며 또 인간들이 아무리 열심히 하나님의 뜻을 듣고 따르려 했던 들 불완전하고 죄 된 인간들에게 그것이 가능했겠습니까? 영이신 하나님을 육에 속한 인간들이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애초에 구약의 율법은 또 율법으로 인해 하나님이 이스라엘민족과 맺은 구약의 언약은 한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율법과 언약은 그 자체로는 완벽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언약의 또다른 당사자인 인간의 불완전함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한계 때문에 구약의 언약은, 율법은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으로 이끌 수 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오늘의 본문이 잘 지적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기는 의문은 과연 구약의 언약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인가 하는것입니다?

절대로 그럴 수 가 없습니다.

모세가 첫번째 율법의 돌판을 깨어버린 후에 다시 시내산에 올라 하나님을 뵙고 두 번째 돌판을 받을 때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출33:21)여호와께서 또 이르시기를 보라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출33:22)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출33:23)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이 사건 후에 하나님의 영광을 목격한 모세의 얼굴이 하나님의 영광이 비춰졌으므로 거룩한 빛이 나게 됩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출 34:29)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출 34:30)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이 사건은 하나님과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이 얼마나 거룩한 것인가를 보여주시는 좋은 예입니다. 인간인 모세는 빛이 나는 거룩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가까이 한 모세는 이렇게 빛이 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거룩하신 하나님을 접한 자는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성경은 또 말씀하십니다

(출29:37) 너는 이레 동안 제단을 위하여 속죄하여 거룩하게 하라 그리하면 지극히 거룩한 제단이 되리니 제단에 접촉하는 모든 것이 거룩하리라

(출 30:29)그것들을 지극히 거룩한 것으로 구별하라 만나라 하였으며 이것에 접촉하는 것은 모두 거룩하리라

제단이나 거룩한 성물에 접촉한 모든 것이 거룩하여 진다고 하 시는데 하물며 하나님을 만난 모세에게 변화가 없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하나님을 만나서 대화했던 모세의 얼굴의 광채로 드러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언약도 거룩한 것이요 고귀한 것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기록하시듯 불완전한 인간에게 비춰진 거룩함은 영원할 수 없었고 시간이 흐르매 그 광채가 사라졌다고 성경은 적고 있습니다. 그러니 마찬가지로 성경이 지금까지 밝히고 있는 율법으로 맺어진 구약의 언약의 큰 두가지의 문제점을 우리는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첫째는 언약을 받아 지켜야 할 인간들이 하나님의 뜻도 완전히 알 수 없고 율법도 완전히 지킬 수 없는 불완전한 인간들이었다는 것

두 째는 역시 하나님의 율법을 전하고 가르쳐야 했던 인간 모세 역시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비추어진 얼굴의 광채가 결국에는 사라지는 완전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완전한 구원을 이루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인해 맺어지는 새로운 언약은 이런 구약의 언약과는 완전히 달랐는데

오늘의 본문은 이 차이를 구약의 율법은 죽이는 율법, 신약의 새로운 언약은 살리는 언약으로 말씀 하신다는 것입니다.

고후 3:6)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은 살리는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은 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이 불완전해서가 아니라 율법은 완전하지만, 율법을 지켜야 할 인간이 불완전하고, 율법을 전해주고 가르치는 사람이 불완전해서, 결과적으로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의 율법은 받았지만 결국에는 죽게 되는 것입니다 – 다른 말로 하자면 율법이 우리를 살리지는 못하는, 결과적으로는 우리를 죽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구원의 희망이 과연 있는것입니까?

있습니다

사실 구약도 그렇고 신약에서는 정말 눈에 띄는 단어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영입니다. 구약의 수많은 이적과 기사뒤에 하나님의 영의 역사하심이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이 하나님의 영 또는 영으로 불리던 이 초월적인 존재의 정체가 신약에 들어오면서 정체를 드러내시는데 그 분의 이름이 성령 또는 그리스도의 영 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령은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자들 모두에게 허락하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 하시길

(행 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하셨고

또,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라고 로마서는 적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뒤집어서 보면 이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는 누구에게나 그리스도의 영이 반드시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그리스도의 영이 하나님의 영이시고’ 이 분이 바로 삼위의 한 분이신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이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를 살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적고 있는 바는

(롬 8: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 8:2)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성령이 우리 안에 임하시면 성령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흘러 넘치도록 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성령의 생명의 힘이 바로 우리로 하여금 죽음으로 몰아가는 죄의 힘을 이기시고 우리로 써는 감당할 수 없었던 죄의 문제에서 우리를 해방하사 우리로 죄를 이기게 하시고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우리를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하시는 성령님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영, 하나님의 영, 바로 하나님 자신이시라는 것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의 언약과 신약의 언약이 어떻게 차이가 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 하나님의 영으로 맺어진 새 언약은 영원히 죽어야 했던 우리의 가운데 성령 하나님께서 거하시면서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이 거룩한 생명을 우리에게 넘쳐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또 이렇게 기록하십니다.

(롬 8:11)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바로 이 예수를 살리신 부활의 영이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우리안에 거하시는 성령이신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과 같은 성령을 받은 우리가 살아나는 것이 올바른 일이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므로,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직접 인도하시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전에는 육신이 인도하는 삶, 내가 나를 책임져야 하는 삶, 그래서 힘들고 또 실패하는 삶을 살았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영이 인도하시는 삶, 하나님의 뜻을 알고 사는 삶,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계속 생명을 넘치도록 부어 주시는 삶,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또 다른 삼위의 하나님 성령이 내 안에 거하는 삶을 살게 되는 완전히 다른 삶, 생명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으로 살게 되는 다른 삶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지 본문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으로 말미암아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이 말씀은 우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누리게 된 이 삶이 더 이상 이보다 영광될 수 없는 현존하는 최고의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율법도 영광스러웠던 것입니다 세상 무엇 보다도 거룩하고 영광스러웠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 예수그리스도, 우리의 하나님을 직접 우리 안에 성령으로 모시게 된 성령의 언약은 구약의 언약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좋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성경이 제시하는 인생의 답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늘 넘어지고 실패하던 것은, 우리가 육으로 행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육의 생각을 따랐고, 우리의 육의 습관을 따랐고, 우리의 육의 정욕을 따랐기 때문에, 우리가 늘 넘어지고 실패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성령께서 우리를

넘어지면 일으켜 주시고, 성령께서 갈 길을 알려주시고, 성령께서 능력을 주시고, 성령이 위로해 주시고, 성령이 치유해 주시고, 성령께서 생명을 부어 주시는 성령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 성령이 그리스도의 영이요, 하나님의 영이요, 삼위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하나님을 우리 안에 모시고 사는,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큰 영광과 능력은 없습니다.

그러니 주의 이름을 부르는,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이제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당연히 나의 육이 아니라 성령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의 육이 아니라 성령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경은 이 성령을 그리스도의 영, 하나님의 영으로 말씀하신다는 것을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그리스도가 누구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아니십니까?

그러므로 성령이 기뻐하시는 삶은 바로 말씀의 삶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말씀을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주의할 것은 말씀의 삶을 살 때 율법의 삶을 살 듯이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말씀의 삶은, 무엇보다 성령의 인도하시는 음성을 듣는 듣고자 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이 삶은 지금 나에게 주시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메세지가 무엇인가? 묵상하는 묵상의 삶을 말하는 것이고 또 성경이 말씀하시고 성령이 말씀 하시는대로 살아가고자 최선을 다하는 실천의 삶인 것입니다.

즉 성령의 삶은 내가 이걸 했다 못했다 로 자로 재듯이 나의 삶을 평가하는 평가의 삶이 아니라 과연 내가 지금 성령님과, 주님과 동행하고 있는가? 나의 주님이 성령의 목소리로 나에게 끊임없이 말씀 하실 수 있도록 마음을 열고 주님을 모시고 나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순종하는 동행의 삶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령의 삶은 열매를 맺는 삶입니다

말씀은 기록하기를

(갈 5:23)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갈 5:23)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이끄시는 성령은 살아계신 생명의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과 동행하는 말씀과 기도의 삶, 성령의 임재를 느끼고 성령과 동행하는 동행의 삶을 산다면 우리의 삶 속에 성령의 열매가 맺히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나의 삶속에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성령의 삶을 살고 있는것입니다.

비록 이 열매의 크기가 아직은 작을지라도 우리의 삶 속에 이 열매들이 보이면 새로운 언약의 삶을 우리가 살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 열매의 크기가 아직 작다고 우리가 절대로 실망해서는 안되는데 그 이유는 이 열매들은 내가 지금까지 살던 삶과 다른 삶을 지금 살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고! 육신의 방향으로 가던 나를 돌이키신 분이 성령 하나님 이시기 때문이고

육신의 방향에서 성령의 방향으로 내 삶이 돌아섰다는 것은! 이미 나의 인생을 관통하는 죄의 권세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권세로 씻어 주셨다는 증거 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마태복음에서 “17…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오직 주의 보혈의 권세로 죄의 권세에서 풀려난 사람들 만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는줄을 깨달으시기를 축언 합니다. 그리고 이 작은 열매들이 주님과 같이 동행하는 동행의 삶을 살때 거룩한 가속도가 붙어 결국 위대한 하나님의 포도원을 이루게 될 것임을 믿으시기를 축언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사 5:1)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노래하신 그 포도원이 바로 성령의 인도를 받는 성도들의 삶의 모습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 민족은 이들을 극상품 포도나무로 심으신 하나님의 기대와는 다르게 들포도를 내었지만 주님의 보혈로 죄사함을 받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그리스도의 신부 된 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하나님의 포도원을 이루어 내게 되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자리에 하나님을 경배하시기 위해 오신 우리 모두는,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모혈로 죄가 사해진 자들이요, 성령 하나님을 내 안에 모시고 사는 거룩한 성도요, 성령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우리를 이끄시는 대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하나님 앞에 경배와 찬양을 드림으로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위하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성자 하나님을 피 흘리게 하셔서 우리의 죄를 씻으시고, 그리스도의 영, 하나님의 영, 성령 하나님을 보내시어 우리에게 생명과 능력을 부어 주시고 우리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이 말씀하시는 새로운 언약의 삶을 사는 삶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이제 육을 따라 사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을 따라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포도원이요 우리가 하나님의 극상품 포도나무들입니다.

내가 잘나서 가 아니라 우리 주 하나님의 피 흘리심으로 성령 하나님의 우리 안에 내주하심과 인도하심으로 우리의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으로, 아름다운 것으로, 향기로운 것으로 하나님이 바꾸셨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경배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오늘 나를 나보다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영원히 죽어 마땅한 이 죄인을 사랑하사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피를 흘리시고 고통받으시고 또 승천하신 후에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신 것을 믿음으로 믿어 영으로 깨닫기를 원합니다.

또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선물로 다시 주신 나의 새로워진 인생을

당신의 자녀들로 하여금 마음껏 누리도록

악한 마귀 사탄이 장난치지 못하도록

주님께서 보혈의 역사로 우리의 삶을 다시 씻어 주시고

내 삶을 이제 성령께서 마음껏 역사하시고 주관하시고 이끌어 가시도록,

이제는 우리가 우리 삶의 주인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의 주인 되심을 깨닫고

이제는 성령께서 나의 삶을 이끌어 가야 하심을 깨달을 수 있도록  

기도하시겠습니다.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