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순종의 삶

본문: 삼상 15:22)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기도 하시겠습니다.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고 끝까지 사랑하시는 우리 아버지, 오늘 저희에게 성령의 은혜를 허락하사 당신의 사랑이 어떠하신 것인지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은혜가 얼마나 크시고 완벽한 것인지 오늘 선포되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길을 가다 보면 너무나 당연히 행해야 하는 것이지만 또 너무나도 쉽게 잘못된 이해를 가지고 나의 신앙에 적용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순종일 것입니다.

많은 경우 순종을 나의 뜻이 아니라 마치 하나님을 위해 내가 원하는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내가 따라주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해는 아주 정확한 이해는 아닙니다.

이런 식의 이해는 하나님을 위해 내가 희생을 했으니 하나님께서 상을 당연히 상을 주셔야 한다고 생각하는 하나님과 거래를 하는 더 잘못된 생각으로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조심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순종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이루어지기를 나도 원하기 때문에 혹시라도 내가 지금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 다른 것을 원하고 있을 지라도 기꺼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내 생각에는 하나님의 뜻보다 내 생각하는 것이 내가 지금 보기에는 더 맞을 수 있고 더 옳아 보이더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이뤄지는 것이 나에게 훨씬 큰 영광이요 기쁨이기 때문에 기꺼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마가복음에 말씀 하시길 (마가 14:36) …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위해 이건 내가 포기하겠습니다 하는 자세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이건 내가 해줄까 하는 자세가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이 말씀의 우리 주님께서는 분명하게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구원의 뜻을 아셨고 그 뜻을 위해서라면 지금 주님께서 모든 인류를 대신해 모든 인생의 죄를 지고 죽어야 하는 십자가의 저주의 잔을 피하시고 싶은 마음보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 싶으신 마음이 더 크셨기 때문에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신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맞을 것입니다.

성경은 이사야서에서 이렇게 말씀 하시고 계십니다 “(이사야 55:8,9)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나의 뜻 보다 높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낮고 낮은 나의 욕망을 다르는 것 보다 높고 아름다우며 영광되고 기쁜 일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높은 길을 따라 갈때만이 진정한 기쁨과 내 안에서 새로운 생명이 넘쳐남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은 하나님의 뜻을 듣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먼저 선행되어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본문인 사무엘 상 15장 22절 말씀에서 순종하다라고 사용된 단어는 히브리어로 샤마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듣다라는 뜻에서 나와 순종하다라는 뜻의 말이 된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듣고 순종했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듣다라는 뜻으로 사용된 단어는 콰샾이라는 단어로 몸을 기울여 집중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정말로 듣기 원해서 말씀하시는 쪽을 향해 몸을 기울여 말씀에 집중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길 원하시고 그것도 집중해서 듣길 원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기쁨을 느끼고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고 운동하는 것을 깨닫길 원하시는 것이고 그리고 그렇게 듣게 된 하나님의 뜻을 따르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게 순종의 과정입니다.

정말로 귀한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로 인해 기뻐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시길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 즉 세상 무엇보다 높고 영광스러우며 우리의 생명의 원천이 되시는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우리에게 신령한 복과 또한 세상의 형통함이 주어지게 하십니다.

성경은 여호수와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수아 1:7)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여호수아 1:8)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그러니까 순종은 우리가 지존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으로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고 순종의 목적이 복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자녀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형통의 복을 주시는 조건이 되므로 더더욱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만복의 근원이 됨에도 그렇게 성경에서는 순종을 행한 사람보다 순종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입니까? 그렇게 좋은 순종을 왜 이들은 거부하고 불순종의 길, 죄악의 길로 들어선 것입니까? 그것은, 순종은 우리가 하느냐 마느냐의 단순한 문제라기 보다는 과연 우리가 어떻게 순종할 수 있는 가의 문제 즉 순종이 과연 죄인인 인간에게 가능한 것인가? 본질적인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신명기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신명기9:24) 내가 너희를 알던 날부터 오므로 너희가 항상 여호와를 거역하였느니라” 그렇습니다 죄 많은 인간에게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은 아마도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인간의 연약함을 언제나 공격하는 우리의 원수 사탄까지 생각하면 하나님의 거룩함에 순종하는 인간은 잘 그려지지 않는 그림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고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가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불가능한 인간의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 서만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희소식은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길 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절대로 불가능이지만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런 인간의 구원을 당신의 기분에 따라 정하시거나 목적이 없이 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구원을 창세전에 분명한 목적을 가지시고 우리 한명 한명을 위해 계획하셨습니다.

로마서는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로마서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로마서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렇습니다 나는 완벽하신 하나님의 예정하심과 완전한 하나님의 은혜로 나에게 주어진 구원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에베소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에베소서 2:8)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죽음을 향해 달려가던 나의 삶이 생명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은혜로 깨달으므로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죽음을 향해 가던 나의 삶이 방향이 완전하게 180도 U턴하여서 진정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듭난 삶의 실체입니다.

요한 복음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3: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

이 말씀은 우리가 거듭나면, 주님을 믿으면, 하나님 나라를 주님을 생명을 볼 수 있다는 것. 우리의 순종과 믿음의 대상이신 살아계신 하나님, 주님을 발견하게 되고 우리의 삶이 완전한 흑암속에서 살던, 목표가 없는 삶 죽음과 같은 삶에서 변하여 광명의 빛, 생명의 빛을 바라보게 되는 것을 우리가 거듭나게 되는 것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듭남으로 암흑에서 광명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나아가게 되면 우리가 거룩한 기쁨으로 충만하게 되고 우리를 옭아매던 죄를 향한 혐오가 시작되게 됩니다. 감각이 없이 무심코 저지르던 작은 죄에도 민감해지고 죄가 싫어 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말랐던 눈물이 돌아오고 회개와 기쁨의 눈물도 흘리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 10:20)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21)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주님의 보혈의 뿌리셨으니 우리가 양심의 악, 즉 우리의 죄를 깨닫게 되고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길 원하게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죄인이었던 우리가 죄를 떠나고 싶어 지게 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시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따라가는 순종은 죄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회개와 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은 죄의 반대방향에 계시기 때문에 죄로부터 돌이키는 것이 주님을 따라가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헬라어로 메타노이아입니다. 메타노이아는 돌이키다를 뜻합니다. 이것은 마치 길을 벗어났을 때 다시 옳은 길로 돌아가는 것과 같은 것을 이야기 합니다.

죄는 헬라어로 하마르티아입니다. 이것은 과녁을 벗어난 그러니까 목표에 어긋난 삶을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의 목표이자 길이자 주인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잃어버리고 궤도를 어긋난 삶을 사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어긋난 삶의 궤도를 되돌려 주님을 향한 궤도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삶을 180도 U턴 해서 죽음에서 주님으로 삶의 방향을 완전히 트는 것이고 회개는 내 삶이 궤도를 이탈할 때마다 궤도를 수정해 주님의 길로 돌아가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주선을 달을 향해 쏘아 올릴 때 우주선이 끊임없이 궤도 수정을 하면서 달을 향해 나아가듯이 우리도 끊임없이 나의 삶의 방향을 좀더 주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으로 수정하면서 나아가는 것이 회개이고 그리고 순종은 언제나 이 회개를 계속해 가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주님의 보혈의 권세로 용서하심을 입어 원죄의 문제를 해결했지만 그래서 온전히 순결함을 입어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죄인이 아니지마는 하나님의 순결한 자녀들이 되었지마는 아직도 우리의 육에 남아 있는 죄의 문제가 있습니다.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로마서 7: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로마서 7: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로마서 7:20)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주님을 알고 믿게 된 후로 선을 행하길 원하고 악을 행하길 원하지 않지만 연약한 육신과 사탄의 모략은 우리를 끊임없이 넘어지게 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회개로 순종으로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해 가야 합니다. 사고 바울이 자신의 육에 남아있는 죄를 고백하시는 데 우리는 말할 필요도 없이 똑 같은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지 않겠습니까?

아직도 남아있는 이 죄의 문제는 영적인 싸움이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넘어 트리려는 사탄의 모략으로 인한 것이기도 합니다. 베드로 전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전서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그렇습니다 지금도 마귀는 믿는자들을 넘어 뜨리고 실족하게 하고 파괴하기 위해 쉬지도 않고 우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넘어졌을 때 회개로 이끄시는 것은 역시 우리의 구원을 예정하신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역사로 우리의 양심에 찔림을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죄를 보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다시 하나님께로 주님께로 나아오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넘어졌다 일어나는 이 회개와 순종의 과정을 하나님께로, 주님께로 더더욱 가깝게 이끄시는 기회로 사용하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순종할 때 즉 회개할 때 죄에서부터 다시 일어서 하나님의 이끄심을 따를 때 우리가 하나님과 연합해 우리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한마음으로 하나님의 목적하신 바를 향해 나아가는 연합의 연습을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가 죄로 다시 넘어진 것을 사용하시는 방법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는 모든 계획이 있으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의 길로 들어선 다음에도 우리의 연약함을 악한 사탄이 노릴 것과 우리가 실족할 것을 너무나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회개로 죄로부터 돌이켜 생명의 빛 광명의 주님께로 우리의 삶을 돌이켜 나아갈 수 있는 회개의 길, 순종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우리가 회개로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우리에게 죄에서 돌이킬 또다른 기회를 허락하신 것이 회개와 순종의 의미는 아닙니다. 더 크고 더 원대한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계획은 믿음으로 구원의 길로 들어간 후에 우리가 하나님과 한 마음으로 죄악을 대적하며 생명을 향해 나아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자녀들이 한마음이 되는 것은, 창조주와 피조물이 한마음이 되는 것은 기적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나의 뜻이 되고 나의 뜻이 하나님의 뜻이 되는 연합의 기적이 우리가 주님께 진심으로 순종할 때 진심으로 나의 죄성을 미워하고 생명을 사모하게 될 때 우리 안에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 하시기위해 또 우리를 하나님과 연합하게 하시기 위해 우리를 조금 더 하나님과 가깝게 하게 하시기 위해 모든 기회를 사용하십니다.

우리가 실족했을 때에나 우리가 하나님안에서 은혜로 충만했을 때에나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진정한 생명 되시는 주님께로 더욱더 나아갈 기회를 주십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절대로 다시 일어설 수 없는 죄 많은 인간들에게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것도 은혜이고 회개할 수 있는 것도 은혜입니다. 이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의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우리가 넘어졌을 때도, 실족했을 때도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회복의 길은 열려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두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아 아는 자들입니다.

우리의 죄는 사하여 졌고 이제는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고 죄를 미워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나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합하여 한마음이 되는 것을 무엇보다 기뻐하는 하나님과의 연합을 사모하는 거룩한 성도가 된 것입니다.

우리 한마음교회의 모든 성도분들은 이 하나님과의 연합을 사모하는 마음이 더더욱 자라서 이 세상 무엇보다 하나님께 순종과 회개로 더 더욱 가깝게 나아가는 경건과 성화의 과정을 사랑하시는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축언 드립니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과 인간에게 허락된 가장 큰 영광이 이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 거대한 축복과 은혜를 우리 한마음 교회에 오신 모든 성도분들께 넘치도록 부어지는 축복이 있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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