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속한 생각을 붙들고 가십시오 – Hold on to the heavenly thoughts

에베소서 2-1_10

  1. 그는 (예수 그리스도)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인간은 생각하는 대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중요한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중요한 사람이 되고 자신이 사랑받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랑받고 살게 됩니다. 원대한 꿈을 가진 사람은 위대한 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에게는 짐승과 구별되는 매우 독특한 점들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인간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생각의 힘은 매우 강력합니다

생각이 나의 선택을 이끌고 나의 선택은 나의 삶이 어떤 삶이 되도록 하는가? 결정합니다

문제는 험한 세상을 살게 되면서 상처와 나쁜 생각들이 들어오면서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선하고 긍정적인 생각 나는 잘될 거야 나는 사랑하고 사랑받기에 합당한 사람이야 저 친구는 너무 좋아, 나는 내 친구들을 사랑해 등의 좋은 생각들이 조금씩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대신 악하고 부정적인 생각들, 이게 되겠어? 너 같은 게 어떻게 사랑을 받아? 난 안돼, 내가 이렇게 된 건 저 사람 탓이야 등의 나쁜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내 생각을 지배하게 되면 내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일들도 감당하지 못하고내가 당연히 받을 대접도 받는 것을 어려워하고 내가 잘되는 길이 아니라 내가 못되는 패망의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잠언 14:14) 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굽은 자는 자기 행위로 보응이 가득하겠고 선한 사람도 자기의 행위로 그러하리라’

마음이 굽은 자들은 굽은 마음에 따라 굽은 행위를 하고 그에 대한 보응을 받는다면 마음이 선한 사람들은 선한 행동들을 하고 그에 따라 상을 받는다고 해석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세상 누구도 좋은 생각만 100프로 하는 사람 없고 나쁜 생각만 100프로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안에서는 좋은 생각과 나쁜 생각 긍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이 서로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생각이 이기면 나의 인생도 긍정적이 되는 것이고 부정적인 생각이 이기면 내 인생이 부정적이 되는 겁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정말 심해지면 인생이 아주 망가지거나 심지어는 생명을 해하거나 자살까지도 하게 되는 최악의 결과까지도 가져오게 됩니다.

요한복음 13장 2절을 보면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하십니다.

그러니까 가룟 유다에게 예수님을 배반할 생각을 사단이 넣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다의 이런 생각을 사탄이 가지고 놀다 유다의 속사람에 사탄이 들어갑니다. 사단이 유다를 지배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유다는 가롯 유다는 은화 삼십 냥에 예수님을 팔고, 유다는 그 죄에 괴로워하다 높은 나무에 목을 매달아 죽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비참한 인생을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유다의 인생이 이렇게 망가진 것이 바로 유다의 잘못된 생각이 그 원인이 된다고 성경이 기록하는 것 우리는 유의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마귀는 가롯 유다의 경우 에서와 같이 부정적인 사고를 주어 인간을 실패하게 만듭니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나의 인생과 관계와 건강과 심지어는 나의 생명까지도 망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런 우리 안의 부정적인 생각과 긍정적인 생각에 대해서 아주 독특하고 세상 무엇보다도 더 훨씬 더 깊이 있는 성찰을 제공해 줍니다.

그것이 바로 죄와 구원의 문제이고 옛사람과 새사람의 문제입니다.

로마서 8:6 은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육신이라고 하면 우리의 옛사람을 말씀하시고 우리의 죄성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죄성을 가진 우리의 육신이 죄된 생각을 하고 이 생각을 마귀가 가지고 놀다 보면 생각이 죄가 되고,이 죄가 자라면 나의 영이 죽고 때로는 정말로 나의 생명이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야고보서는 이렇게 적고 계십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욕심이 바로 육신의 죄 된 생각이고 그 생각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영이 죽던지 내가 죽든지 나의 생명이 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 죽음이 바로 인간에게 필수불가결의 죄의 결과라고 적고 계신 것입니다.

로마서 삼장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이렇게 보면 사실 성경보다 인간에 대해서 더 부정적으로 기록하는 책이 없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완전한 타락과 인간의 죄로 인한 완전한 사망을 이야기하시기 때문입니다.

의인이 하나도 없다는 이야기는 인간의 힘으로 구원에 이를 자가 하나도 없다는 이야기이고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 라는 말씀은 인간의 지혜로 스스로 하나님을 찾거나 구원받는 사람도 없다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선한 생각조차도 인간에게는 불가능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우리에게 절망적인 말씀을 하는 성경이 어떻게 우리에게 복음 즉 복된 소식이 되겠습니까?

우리가 성경을 유심히 잘 읽어야 하는 것은 성경은 인간이 스스로는 절대 구원받을 수 없다고 했지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고는 안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절대로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인간에겐 절대로 불가능한 것이 완전히 가능한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구원은

첫째,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고 둘째, 우리 인간이 구원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즉 우리가 죄인임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우리에게 하나님, 즉 구원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며 우리를 구원해 주실 하나님을 찾는다면 인간의 구원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정말로 기쁜 소식은 절대로 구원의 가능성이 없는 죄인들인 이 인간들을 하나님은 절대로 구원하시고 싶어 하신다는 것입니다

요한 복음은 이렇게 기록하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의 본문은 두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첫번째는 우리가 누구인가? 이고
두번째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하셨는가? 입니다.

그리고 이 두가지를 살피면 우리가 어떻게 나의 구원을 확신할 수 있는가? 와 우리가 앞으로 어떤 생각을 붙들고 살아갈 것인가? 에 대한 큰 그림이 그려지는 것입니다.

먼저 오늘의 본문은 우리를 죽었던 자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정말 다행인 것은, 말씀이 우리를 보고 죽어 있는 자들이라고 하지 않으시고 죽었던 자들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그렇다면 옛날에는 죽었지만, 지금은 살았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죽었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물론 앞서 언급한 대로, 우리의 죄의 결과로 우리가 죽었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지만, 여기서 말씀하시는 죽음은 육신의 죽음이 아닌 영적인 죽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의 교인들 모두들 살아서 바울 사도의 편지를 읽고 있으니 여기서 말씀하시는 죽음은 영적인 죽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우리의 영적인 죽음은 우리가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여,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랐었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이 세상 풍조에 욕심을 내고, 즉 세상이 우리가 가길 원하는 곳에 가고, 세상이 우리가 듣길 원하는 것을 듣고, 세상이 우리가 말하기 원하는 것을 말했다는 것입니다.

또 이 욕심에, 즉 세상이 원하는 것에, 우리의 마음 한 켠을 내주고, 계속해서 이 세상에 찌든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아서, 결국 사탄이 내 삶을 좌지우지하게 만들어, 영적인 죽음에 이르렀었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적인 생각이, 나의 영을 죽게 만들었다는 말씀이신 것입니다.

사실 지금의 세상 풍조만 보아도 말씀이 왜 그렇게 세상풍조를 경계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남자를 여자라고 부르고, 여자를 남자라고 부르고, 남자를 여자로 바꾸고, 여자를 남자로 바꾸고, 남자가 남자와 여자와 여자가 결혼을 하게하고 그러는 것을 잘하는 일이라고 인정해 줘야 한다고 하며 여기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탄압합니다

교회가 모이는 것을 막고, 태아를 죽이는 일을 더 쉽게 하고, 그러는 것을 도덕적인 일이라고 강론합니다.

그러니 이런 세상풍조를 따라가던 우리들이라면, 불순종의 아들들, 본질상 진노의 자녀, 즉 하나님의 구원과 거리가 먼 자들이었다 라고밖에 생각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확실하게 영이 죽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오늘의 본문은 우리를 하나님이 다시 살리신 자들이라고 기록하고 계십니다.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그러니까 나의 죄로 죽은 우리를 하나님이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나는 스스로 나의 죽은 영을 살릴 수 없지만, 하나님은 죽은 나의 영을 살리실 수 있는데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죽은 나를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나는 죽었는데 죽을 수밖에 없는데 하나님은 죽은 나를 살리셨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죽은 나를 살리시기만 하셨다면 이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한 번 타락해서 죽었던 내가 두 번 타락하지 않으라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살려놨어도 죄를 이길 방법이 없다면 결국엔 다시 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 희생으로 우리 대신 피를 흘리게 하셔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우리의 죄값을 치루시게 하시고, 주님께서 우리의 죄값을 목숨으로 치루심으로 우리는 주님의 소유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영원하신 주님께 주님의 피 값으로 팔려가므로, 우리가 영원히 주님의 소유가 되고, 우리가 지었던 죄, 짓고 있는 죄, 우리가 지을 미래의 죄까지 모두다 용서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죄의 문제가 우리가 주님의 소유가 되므로 한 번에 영원히 해결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값을 치루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그리스도를 살리시는 데, 이제는 그리스도께 속하게 된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주님께서 피 값으로 치루시고 우리를 사시고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에서 예수와 같이 우리 죄와 같이 죽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시는 데,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 하시 매, 이제는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그리스도에게 속하게 된 우리들도 같이 살리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셨을 때 죽었던 우리의 영도 같이 살아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육신의 부활이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에 속한 우리의 영적인 부활은 결국에는 우리의 육신의 부활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는 말씀 하시길 (로마서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하신 것입니다.

또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님과 함께 우리를 살리신 그 의미는, 승천하사 하나님 우편에 좌정하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수의 것이 된 우리도 같이 앉아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주님께 속한 자들이 되었으므로 주님이 계신 곳이 우리가 속한 곳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육신이 아직 부활을 거치지 않아 우리의 몸은 아직이 땅 위에 있지만

주님의 것이 된 우리의 영은 하늘보좌에 앉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육절에서 말씀 하시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그리스도와 ‘6.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앉아 계시는 보좌에 감히 같이 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이고, 그것이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음부에서 죽은 나의 영을, 살리시고, 하늘 보좌에 주님안에서 같이 앉히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속했던 나의 옛사람은 완전히 죽고, 하늘에 속한 새사람만이 사는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완전한 사고의 전환을 가져옵니다.

죄를 이기지 못해 죽어버릴 수밖에 없는 나의 구원을, 하나님께서 간절히 바라시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나 대신 피를 흘리고 대신 죽게 하시고, 그 희생으로 나를 사게 하시고, 그래서 내가 주님안에 속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과 맞바꾼, 나를 하나님의 양자로 삼으시고, 이제는 주님의 보좌에 주님안에 속한 나를 같이 앉히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제 영원한 주님안에 속하게 되므로 영원히 나의 죄와 죽음의 문제가 해결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실 때부터 우리를 주님과 연합하게 하셔서, 영원히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고, 하나님의 그 모든 계획을 주님안에서 완벽하게 성취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된 것입니다.

죽어버린 시체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안에서 하늘에 속하게 된 우리는, 점점 더 세상이 아니라 하늘을 향해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점점 더 거짓되고 부정적이고 죄 된 세상의 사고방식을 떠나, 긍정적이고 복되고 선하며 아름답고 영원한 천국의 사고방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안에서 성도의 연합으로 이뤄진 교회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늘 증거하시는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의 ‘(고전1: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하신 말씀은 이 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진리가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한 믿음도, 주님의 연합안에 거하면, 믿음이 연약함으로 내가 넘어질지라도, 하나님께서 주님과 함께 계속 일으켜 주심으로 주저앉아 있던 연약한 믿음이 하늘에 닿을 정도로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세상적 생각에서, 천국의 생각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한마음 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이제부터는 육신의 눈이 아니라 복음의 눈으로, 믿음의 눈으로 우리의 교회와 나의 삶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육신의 눈으로는 아주 작고 연약한 교회이고 나의 삶이 너무나 평범하고 어쩌면 연약한 인생일지라도, 복음의 눈과 믿음의 눈으로 보면 한마음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너무나 귀하고 위대한 교회이며, 나는 하나님께서 주님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천국의 보좌에 앉히신 하나님의 아들인 것입니다.

바로 이 차이가 영원의 차이입니다.

우리가 육신의 눈으로, 세상의 생각으로 세상을 산다면 그 끝은 너무나 확실하게 죽음이 되는 것이지만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천국의 생각으로 세상을 산다면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사, 천국보좌에 앉히사 영원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아들의 삶을 살게 되고 또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영광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내 발로 스스로 교회에 나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부르셔서, 그 부르심에 대한 응답으로, 오늘 주일을 지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성도의 연합에 나아오게 된 것을 깨 달아야 하고, 그리고 나의 인생도, 하나님의 아들로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대답임을 깨 달아야 할 것입니다.

혹시, 우리의 인생가운데 어려움과 연약함이 있을지라도, 그것은 우리를 주님 안에서 우리를 다시 일으키시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의 예정함 이심을 우리 모두는 깨 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제 영원에 속한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그 약속을 붙들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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