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週小常 3

음악을 듣는 내 자신이 엄청 까다로와진걸 느낀다.

음악을 듣는 귀가 높아져서가 아니라 나이가 드니 시끄러운 음악이 싫어졌고 가사에 비속어를 쓰거나 음란 폭력을 묘사하는 단어를 사용하면 거부감이 일어나서이고 (물론 그럼에도 좋아하는 몇몇 곡들은 아직도 있으니….완전히 취향이 일관적인것도 아니다)

또 현대에 들어서 기술의 발전으로 음악은 좋지만 음질은 나쁜 즐겨듣던 몇몇 고전들을 듣기가 고역이 되 버린 까닭이다.

그러다 보니 끝까지 다 들은 음반이 요즘에는 손에 정말 꼽을 정도다 그리고 이렇게 까탈스럽게 음악을 듣는 나를 보면 정서가 정말 메말라 가는구나 하며 한탄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럼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에 다 청취를 한 앨범들도 있다. 그런 곡들은 대부분 비교적 조용하고 시끄럽다해도 강약의 대조와 절제가 있으며 곡을 관통하는 정서가 차분하고 안정적인 곡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삐아졸라의 땅고는 예외일 것 같지만 그러나 삐아졸라의 열정은 그 뜨거움과 인생의 쓴맛의 조화가 곡 가운데 절대적으로 일관되니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다.

여하튼 음악을 듣는 투정이 엄청 심해진 내가 요 근래 끝까지 다 들은 정말 몇안되는 앨범중 하나가 Pat Metheny 의 Beyond the Missouri Sky다…

그 중 첫 곡인 Waltz for Ruth 은 정말 왠지 모르게 마음을 만져주는 듯한 기분이 든다 감상적이지만 신파적이지 않고 기교가 넘치지만 치기어린 자랑이 없고 투명할 수 있지만 적당히 베일에 가린듯한 사운드가 메말라버린 내 가슴에도 뭐가 쿵하는 감상을 준다

이 앨범의 신기한 점이 Pat의 투명한 기타소리를 커튼치듯 감싸주는 저음의 콘트라 베이스 사운드다. 콘트라 베이스를 연주한 사람은 Charlie Haden인데 베이스 연주로는 유명한 사람인것 같다.

이미 자기연주의 세계가 확고히 완성된 사람을 불러서 협연을 하는것은 위험이 따른다.

아마도 이 연주자는 자기를 받쳐주는 연주 따위는 하지 않을지 모르기 때문이고, 그 이유로 나는 Chick Corea의 Crystal Silence를 Gary Burton의 앨범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건 Gary Burton의 연주가 아니면 생각할 수 없는 앨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유는 반대로 자신이 이 완결된 연주자를 위한 배려있는 연주를 할 수 없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인데…

Pat 과 Charlie는 이 두가지면에서 다 일반적인 기준을 벗어난 연주를 보여준다 하겠다 뭐 원래 베이스라는 악기가 남을 위해 깔아주는 연주를 하는 악기라 그렇다고 하면 할 말은 없는데 그렇다고 해도 나 같은 음악의 문외한이 들어도 베이스 연주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기타의 얇은 사운드가 채울 수 없는 빈 곳들을 정말 야무지게 베이스음으로 채워준다 이런걸 앙상블이라고 하는거겠지… 이 둘은 분명하게 구별되지만 그럼에도 정말 조화 스럽다.

이런 기회를 인생에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은 참 행복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물론 이런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렇다고 누구나 여기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먼저 부부관계가 이렇게 한 쪽의 부족한 점을 서로 채워주는 관계인 사람들이 행복하다 이들은 사는게 음악이요 예술이다, 그런 경지가 가능한것이 부부의 관계다

그리고 또 친구 관계가 이럴 수 있을것 같다 그런 친구를 경험해 봤는가하면? 가능성만 본걸로 하겠다 ㅎ 하지만 Pat Matheny 도 Chrlie Haden 도 어떤면에서는 이런 친구 사이가 아닐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이 나의 가슴의 빈자리를, 나의 모자란 부분을 채워 주실 수 있다는 것이다.

파스칼이 이런 말을 했다 “모든 인간에게는 오직 하나님만이 채울수 있는 하나님이 만드신 공간이 있다.” 그 공간이 있는곳이 나의 가슴속 영혼이다. 이곳이 채워지지 않으면 인생은 너무나 허무해지고 견딜 수 없는 우울이 찾아온다. (그런데도 요즘 이 영혼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가는데 무서운 일이다….)

그런데 나의 이 빈 공간을 채워 주시는 주님이야 말로 나의 가장 돟은 친구가 아닐까? 그래서인지 요한 복음에서도 예수님은 우리를 불러 친구라고 해 주셨고…

결론은 그렇다.

어떤 경우에도 서로간에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는 관계가 보이는것이 아름답다! 그게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릴 정도로 잘 표현이 되면 예술이다! 그런의미에서 Pat Metheny 와 Charlie Haden 은 경지에 올라선것 같다. 존경받아 마땅한 연주를 들려준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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