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의 동행 II

빌립보서 3장 12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빌립보서 3장 13절: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빌립보서 3장 14절: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지난 주일에 하나님과의 동행에 대해 말씀을 나눴습니다.

동행이라는 것은 같이 가는 것이고 또 가는 방향이 같은 것을 뜻하는 것도 말씀을 나눴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친구나 가족과 산책을 가거나 등산을 하거나 할 기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면 같은 길을 같이 걸어가며, 이야기를 나누며, 같은 방향을 쳐다보고 걷는 그 교제의 시간이 얼마나 기쁩니까?

그 시간동안 얼마나 서로에 대해 더 알게 되며 또 서로가 가지고 있는 염려와 근심과 기쁨을 나누며 서로가 얼마나 더 가까와 집니까?

그러니 우리가 친구와 가족과 같이 가도 이리 기쁜데 우리가 주님과 같이 동행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실 기회만 되면 우리는 주님과 동행을 해야 하고 그래서 주님을 더 알고 주님을 더 깊이 알고 주님을 더 따르게 되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우리가 인정해야 할 것은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가야할 믿음의 길에서 어긋나기 쉬운 연약한 자들이고

하나님의 뜻 보다 내 뜻을 앞세우기 좋아하는 완악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심지어는 믿음의 길을 가고 주님을 붙들고 있을 때도 주님의 뜻과 다른 길로 갈 때가 있는 그런 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런 사실은 지난 주에 나눈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너무 잘 나타났습니다.

이 제자들이 엠마오로 가는 시각 예루살렘에서는 주님의 부활이 일어났었고

이 제자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주님의 부활이 일어난 예루살렘을 떠나 도망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의 뜻과 반대의 길을 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제자들 앞에 주님이 나타나시고 눈이 가리워져 주님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이 제자들과 길을 같이 걸어가 주시며

제자들에게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이 제자들이,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들이, 주님의 뜻을 잘 따르고 주님안에서 잘되고 복 아 영생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 이십니다.

주님의 뜻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주님의 뜻과 반대로 도망가던 제자들에게

바른 복음의 길을 가르쳐 주시고자 주님안에 있는 생명을 나눠 주시고자 리가 갈 길을 우리의 인생의 목적을 깨달을 수 있게 하시고자

주님의 뜻보다는 자신의 안전을 선택한 이 제자들 앞에 친히 나타나시고 같이 걸어 주시고 가르쳐 주시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정리해서 생각해 보면

주님께서 우리와 동행해 주시는 이유는 리가 주님의 뜻을 몰라서 엉뚱한 길을 가고 있어서 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올바른 길로 돌아가길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와 같이 동행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성육신 하신 것처럼 복음이 들어와서 믿는 제자가 되었음에도 주님의 뜻과는 반대의 길을 가는 우리들을 일깨우기 위해서 주님께서 우리와 동행을 하시고 가르쳐 주시고 먹이시고 축복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과 이런 동행을 경험한 제자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3)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그렇습니다 님과의 동행을 통해 깨달음이 들어가니, 마음이 뜨거워 집니다

복음에 대한 깨달음이 생기고, 인생의 목표가 생긴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깨달음이 들어간 순간 “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눅 24:31)

성경은 말씀하시길 주님께서 그들 앞에서 사라지신 것입니다.

이제 주님의 뜻을 알 만해지니 주님이 그들 앞에서 모습을 감추십니다.

조금 더 같이 길을 가시면 더 좋을 것도 같은데 주님께서는 그들 앞에서 모습을 감추셨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이 매우 중요합니다.

일생의 어느 순간은 주님께서 아기에게 젖을 주듯, 아이에게 밥을 떠먹여 주시 듯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의 심령에 은혜와 성령의 불이 타게 하시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마치 내 옆에 바로 계시던 주님이 저 멀리 사라져 버리신 것 같은 때가 옵니다.

물론 그 때도 주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은혜를 주시고 또 우리를 인도해 주시지만

주님의 음성이 말씀이 나를 온전히 사로잡고 있었던 것 같은 그 강렬한 기쁨과 깨달음의 상태와는 다른

고요하고 잠잠하며 마치 주님의 음성만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고 나 혼자 길을 가는 것 같은 때가 옵니다.

우리가 믿음의 삶을 살아갈 때 주님과의 직접적인 동행이 중요하 듯

멀리 계시는 듯한 주님을 향해 나아가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이렇게 멀리 보이는 주님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우리의 믿음의 삶에 있어서 훨씬 중요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주님의 은혜와 성령의 불에 불타듯이 기쁜 삶을 누렸어도

만약 우리가 중간에 믿음의 삶에서 벗어나 천국 영생의 축복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다면?

우리가 그동안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병을 치유하고 기적을 일으켰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너무나 어려운 삶을 지나가고 고난의 과정을 거치고

그 가운데 또 주님의 음성은 희미하게만 들리는 것 같은 고난의 인생을 지나간다 하더라도

결국에 주님께서 약속하신 천국 영생의 삶에 참여하게 된다면

우리의 모든 삶이 주님안에서 영광되고 복되고 은혜로운 삶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바로 이렇게 주님의 말씀은 세밀하게 들리고 나는 주님의 음성에 집중해 따라가야 할 때를 많이 기록해 주시고 계십니다.

아브라함이 바로 그런 대표적인 예입니다.

성경이 아브라함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구절 중에 이를 잘 기록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 히브리 11:8

아브라함이 “…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창세기 12:1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 지 못했습니다.

어디로 하나님이 자기를 이끄시는 지 도대체 동서남북 중 어디를 향해 가라고 하시는 것인지 전혀 알 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아브라함 이 하나님 말씀을 순종해서 나아갈 때 하나님이 갈 방향을 이리저리 말씀해 주신 것도 아닙니다.

그저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만을 붙들고서 나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 창세기 12:2,3 하시는 약속을 주십니다.

이 약속만을 붙들고

“…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창세기 12:1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 나아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원래 살던 곳은 갈데아 우르 라는 곳입니다.

이 갈데아 우르라는 말은 약탈이라는 뜻을 지닌 말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살던 곳이 강도들이 살던 곳이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모르고 약탈을 업으로 살던 자들이 있는곳을 떠나라가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을 떠나 하나님의 약속으로 향해 가라가 하나님의 명령이었던 것입니다.

이 명령에 순종하면 약속을 이루어 주신다는 것을 믿고 아브라함은 길을 떠난 것입니다.

우상숭배를 버린 것입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지만 이 여정의 끝에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다는 그 믿음을 가지고 나아 간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거룩한 사람이라기 보다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따라가는 삶을 살면서 전쟁을 많이 치룬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조카 룻과 그 가족들을 구하기 위해 소돔과 단의 왕들과 전쟁을 벌이고 승리한 사람입니다.

그 왕들로부터 전략물도 빼앗아올 만큼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싸용하신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살렘왕 멩기세덱을 통해 하나님께 빼앗은 것의 십일조를 바쳐 하나님을 높이던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아브라함이 이 갈바를 알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의 약속만을 붙들고 앞으로 나아간 그의 믿음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동행을 거친 후에 찾아오는 주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데 주님이 주신 약속만을 붙들고 희미한 주님의 음성을 의지해 갈 길을 가야만 하는 주님과의 동행의 높은 단계 이기 때문입니다.

이 단계를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의 신앙 생활은 어려워집니다.

주님이 나를 버린신 것 처럼 생각이 되거나 나의 삶과 상관이 없으신 것처럼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렇게 느낀다면 그것은 우리가 주님과의 동행이 어떠한 것인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175세를 살았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을 약 여섯 번을 만났는데 이것은 대충 삼 십년에 한번쯤 하나님을 뵌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 말씀 붙들고 아브라함이 삼 십년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시면

어쩌면 우리가 아브라함보다 훨씬 더 많이 주님을 만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기로 결단하게 한 주님과의 만남 외에도 우리는 주님을 더 만났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우리는 한 번은 주님을 만난 사람들이고 더 만난 사람들 아닙니까?

우리 중에 많은 분들은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약속의 땅 미국으로 오신 분들인 것이며

그 가운데 주님을 만났고 또 그 가운데 주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이제 우리가 살아가야 할 남은 여생도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주님과의 동행의 삶이며 주님의 뜻을 따르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주님과의 동행하는 삶을 바울 사도처럼 잘 말씀해 주신 분은 또 없습니다.

성경은 기록하기를

빌립보서 3장 12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빌립보서 3장 13절: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빌립보서 3장 14절: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그렇습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주님을 만난 그 사건을 주님께 사로잡혔다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자신을 사로잡으신 그 사로잡힘을 다시 얻기 위해서 전력질주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 다시 사로 잡히는 것이 바울 사도가 바라보고 뛰는 푯대요 목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럴 때 천국의 상급이 주어진다는 진리를 바울은 분명히 알고 뛰어 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 모두도 주님께 부르심을 받아 주님을 만나 뵌 주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뵈었던 그 기억이 생생하던 희미하던 우리는 주님을 만나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오늘 주님의 전에서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모인 사람들입니다.

오늘 그런 우리가 말씀을 통해 깨달아야 할 것은

주님과의 동행은 두 단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약속을 선물을 주시기 위해 우리와 친히 동행하시며 우리를 인도해 주시며 양육하시는 때가 있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약속을 주신후에 우리로 본토친척 아비집을 떠나 주님의 약속을 향해 나아가도록 인도하시는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때는 우리가 소돔의 왕들과 전쟁을 벌여야 할 때이기도 하며

그 때는 주님의 뜻에 순종해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든 우리의 가장 소중한 것을 주님께 바쳐야 할 때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모든 여정의 끝에 하나님의 약속이 기다리고 우리는 그 약속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주님과의 동행의 두 번째 단계를 지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을 이미 만났고 주님의 약속을 받았으며 주님의 약속을 향해 달려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럴 때

하늘의 상급이 주어지는 것임을 믿으시길 축원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이 길을 가게 하시는 이유가 다 우리로 하여금 바울사도가 말씀하신 부르심의 상을 주시고자 함임을 믿으시길 축원드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약속을 주실 때

우리가 믿음의 삶을 완수할 능력과 힘까지도 다 주셨음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그러한 믿음과 능력과 힘을 허락하셨으므로

우리는 우리가 처음 주님을 만났던 그 날 우리가 주님께 사로잡히던 그 날을 기억하며

영원히 주님께 사로 잡히기 위해, 주님과 영원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

아브라함이 소돔왕들과 전쟁을 했 듯 세상의 거짓과 악함과 싸우며

바울 사도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해 달려 갔듯이

우리도 주님의 약속을 잡으려고 달려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 믿음의 여정을 거칠 때 우리가 주님과의 동행의 더 높은 단계를 지나갈 때

주님께서는 이 과정에서의 축복도 주시는 것을 믿으시 길 축원 드립니다.

아브라함은 이 믿음의 길을 가면서 소돔왕을 이길 만큼 능력을 허락받았고 바울 사도는 복음의 힘으로 로마제국을 무너뜨리셨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주님께 받은 약속이 다 이루어지기도 전에 이 세상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과 같이 믿음으로 주님과의 동행의 길을 계속해 나간다면

우리가 영원한 생명의 약속을 향해 나아갈 때 필요한 모든 능력을 주님께서 허락해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여정의 길이 쉽지만은 않기에 우리에게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고

우리가 사는 지금의 세상이 악한 세상이므로 주님의 자녀들에게 더 큰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고

그렇게 하시는 것이 사랑이 많으신 우리 주님의 본성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믿음으로 바울과 아브라함이 지나간 주님과의 동행의 길을 존 받아 우리도 그들과 같이 이 믿음의 길을 걸어 가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끝까지 이 길을 걸어 주님이 약속하신 천국의 상급을 모두가 얻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또한 이 길을 지나갈 때 필요한 모든 능력도 주님께서 허락하여 주시길 원하고

또 우리가 받은 이 모든 축복을 하나도 땅에 떨어뜨리지 아니하고

다 넘치도록 사용해 주님께 더 큰 능력을 받아 더 크게 사용되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각자각자 세상을 승리하는 주님의 믿음의 자녀로써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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